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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김초엽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2019)]
일 년 전, 2019년의 겨울은 평온했다.
그렇게 적는다. 적는 순간, 일 년의 일들이 오래된 앨범의 빛바랜 사진들처럼 아련하게 지나간다.
며칠 예정된 가게의 휴업이 갑작스럽게 폐업으로 결정되자 졸지에 실직자가 되었다. 건물을 새로 증축해서 open한다지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 얼마나 걸릴지는 오리무중이었다.
가게를 접은 지 이년 사이에 다시 구직을 하려니 마음이 쓰라렸다. 별로 춥지 않은 겨울 날씨였음에도 시린 바람에 어깨를 웅크리고 다녔다. 뭘 해도 마음은 뒤숭숭하고 자존감은 떨어졌다. 자꾸만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습관적으로 날마다 몇 시간씩 산길을 헤매고 다녔고, 많은 책들이 배달되어왔다.
그중에 한 권, 이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문을 한 것도 나고, 읽은 것도 나인데 왜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한국소설은 매번 선택하는 분야이지만 작가도 낯설고 더더군다나 과학도가 쓴 sf 물의 소설을.(함께 불려온 작가 군을 보면 전혀 예상 못 할 이유도 없다. 한동안 소홀했던 소설 읽기를 실업의 시간 동안 해보자는 의욕으로 젊은 작가들의 책을 일주일 단위로 뭉텅뭉텅 들이던 시절이었다. 읽어치운 책들도 뭉텅뭉텅 책상 위에 쌓여있다)
그 시간이 일 년이 된 것이다.
나아지겠지, 나아질 거야, 주문만 걸고 지나온 일 년이다.
많은 삶들이 피폐해지고 많은 일상들이 박탈당했지만 그동안 쉽게 누린 그저 그런 하루하루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있을 때 고마움을 모르고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인 줄 알았던 당연한 것들의 부재 앞에서 지난겨울의 막막함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특별한 2020년을 보내고 나니 지난겨울은 얼마나 평온하고 여유가 넘쳤던 가 싶다. 그렇게 단 한 발자국 앞도 알지 못하는 미래, 상상하지 못한 미래의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에 있었다. 책을 다시 소환해본다. 우리들의 시절도 그렇게 소환된다면 좋을 텐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어본다.
순례자들은 누구를 사랑했을까. 그들은 남미에, 서부 미국에, 인도에, 모두 흩어져서 살겠지. 그들은 아주 다채로운 모습으로 여러 방식의 삶을 살겠지. 하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이건 순례자들은 그들에게서 단 하나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냈겠지.
그리고 그들이 맞서는 세계를 보겠지. 우리의 원죄. 우리를 너무 사랑했던 릴리가 만든 또 다른 세계. 가장 아름다운 마을과 가장 비참한 시초지의 간극. 그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함께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순례자들은 알게 되겠지.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을 거야.
편지를 쓰는 지금도 나는 계속 생각해. 우리 이전의 순례자들은 지구를 조금이라도 바꾸어놓았을까? 그곳은 올리브가 갔던 수백 년 전만큼이나 여전히 비탄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까? 분명 세계 곳곳에는 순례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 그들은, 릴리와 올리브의 후손들은 세계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직접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어. 궁금해서 더 기다릴 수가 없었지. [p53]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로 시작된다.(순례자 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떠오르고 파울로코엘리의 순례자 이미지가 중첩된다)
릴리와 올리브의 후손인 데이지는 자신이 속한 마을에서는 자각하지 못하고 살 수 있었던 유전적 장애를 지구에 와서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의 마무리는 저렇다.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우리는 말한다. 장애와 다름은 죄가 아니라고, 그러기에 차별은 부당하다고. 과연 그런가, 내 안에 내게 묻는다. 연민에 기대는 동정심은 아닌가. 장애인 누구거나, 장애우 누구가 아닌 사람 친구 데이지가 행복한 세상은 내가 행복하기도 한 세상이다. 똑. 같. 다.
'스펙트럼'
내가 아는 그 스펙트럼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네이버 국어사전을 검색했더니 [1, 가시광선, 자외선, 적외선 따위가 분광기로 분해되었을 때의 성분. 파장에 따라 굴절률이 다르므로 분산을 일으키는데, 이것들은 파장의 순서로 배열된다. 스펙트럼 띠의 상태에 따라 연속ㆍ휘선(輝線) ㆍ 대상(帶狀) 스펙트럼으로, 또는 방출ㆍ흡수 스펙트럼으로 분류한다. 여러 가지 원자나 분자에서 나오는 빛이나 엑스선... 2, 조성(組成)이 복잡한 현상이나 물질을 단순 성분으로 분해하고, 성질을 특징짓는 양의 크고 작은 순으로 배열한 성분. 음향 스펙트럼, 자기 스펙트럼, 질량 스펙트럼, 에너지 스펙트럼 따위가 있다. 3, 한 함수를 합(合) 또는 적분의 형으로 분해한 것. 또는 선형 연산자의 고유치.]라 뜬다.
벌써, 어질어질하다.
마지막 탈출 때 할머니가 협곡에서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뭉치의 종이뿐이었다. 할머니의 말대로 종이 위의 색채들은 마치 누군가 수백 종의 물감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다채로웠다.
“이건 루이가 나를 기록하고 관찰한 일기였어. 일종의 연구노트라고나 할까. 내가 그들을 관찰하고 탐색한 것처럼 루이에게도 나는 연구 대상이었던 셈이지. 어쩌면 그들은 내가 아주 먼 곳에서 온, 도구가 없어 무력한 학자임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할머니는 나에게 루이가 쓴 기록의 내용을 읽어주셨다. 지구에 돌아온 이후로 할머니는 여생을 색채 언어의 해석에만 몰두했다. 내용의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여가며 알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평범한 관찰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중 잊히지 않는 한 문장만큼은 지금도 떠오른다.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p95~96]
놀랍게도 '스펙트럼'은 색채 언어였다. 60년 가까이 입으로 쓰는 우리말도 몇 가지에 불과한 내 언어영역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노래를 못하면 음치, 박자를 못 맞추면 박치, 길을 못 찾으면 길치, 방향을 못 찾으면 방향치, 색채 감각이 없으면 색치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못하는 똥손에다 저 모든 것들의 치의 합인 몸치癡인 나는.
'공생 가설'
수만 년 전부터 인류와 공생해온 어떤 이질적인 존재들이 있다고 말이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내로 들어와 핵과 별도로 DNA를 가진 채로 수십억 년의 공생을 시작한 것처럼, 별개로 출발한 두 종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 공생하는 일은 흔하다. 인간은 수많은 체내 미생물과도 공생한다. 사람들은 외부에서 유래한 그들을 이질적 타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인간의 일부이다.
하지만 만약 공생의 대상이 지구상의 생물이 아니라면 어떻까? 지구에서도 유래하지 않은 것, 수만 년 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지구 밖의 어느 행성에서 온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뇌에 자리 잡았고, 우리의 유년기를 지배했고, 우리를 윤리적 주체로 가르쳐왔다면, 인간을 비 인간 동물과 구분하는 명백한 특질들이 사실은 인간 밖에서 온 것들이라면.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군요.”
수빈의 가설을 들은 연구팀장이 말했다.[p128~129]
사람들은 왜 그렇게 류드밀라의 세계에 열광하고 환호했을까. 왜 사람들은 루드밀라의 세계를 보며 눈물을 흘렸을까. 왜 사람들은 그녀의 그림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세계에 대한 향수를, 오래된 그리움을 느꼈을까. 인류 역사상 수많은 가상 세계가 창조되었지만 왜 오직 류드밀라의 행성만이 독보적이고 강렬한 흔적을 세계 곳곳에 남겼을까.
“우리에게 그들이 머물렀기 때문이겠죠.”
한나가 말했다.
수빈은 그것이 그들의 존재에 대한 결정적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뇌에 자리 잡은 그들의 흔적, 막연한고 추상적이지만 끝내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 우리를 가르치고 돌보았던 존재들에 관한 희미한 그리움.
류드밀라의 행성을 보며 사람들이 그리워한 것은 행성 그 자체가 아니라 유년기에 우리를 떠난 그들의 존재일지도 모른다.[p140~141]
'공생 가설'은 이해할 수 없는 과학적 용어들 덕분에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흥미진진했다. 7살 이전의 기억이 사라지는 상상력이 만들어 내는 가설, 첫 기억이 돌 무렵이라고 생각하는 내 기억은 조작된 것인가ㅎ 그럴지도. 나중에 어른들의 얘기로 상상하기를 좋아하던 어린아이가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가 창의적이다. 작가는 그런 루드밀라의 세계를 확장해서 단지 '가설'일 뿐인 하나의 상상력을 한 편의 소설로 완성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인류가 고작해야 달이나 화성에 발을 내디디고 태양계 밖으로는 무인 탐사선만 날려 보내던 시기를 지나, 진정한 의미에서 우주 곳곳을 개척하게 된 계기가 바로 워프 항법의 발명이었다.
우주선은 비록 빛의 속도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동하는 우주선을 둘러싼 공간을 왜곡하는 워프 버블을 만들어서 빛보다 빠르게 다른 은하로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에서 가까운 항성계의 자원이 많거나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행성들부터 개척이 시작되었다.
“딥프리징은 인류의 우주 개척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었어. 아무리 공간 왜곡을 통해서 성간 거리를 줄이더라도 우주선이 지구에서 출발해 다른 항성계에 도달하는 데는 여전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가까운 항성계는 수 광년에 불과하다지만 그런 곳엔 인류에게 유용한 행성이 얼마 없었고, 먼 곳은 수백 광년부터 수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었으니 워프 항법을 이용해도 몇 년이 넘게 걸렸지. 굳이 그 시간을 다 버티자면 못할 것도 없었겠지만, 창밖 풍경이라곤 삭막한 검은 우주뿐이고 즐길 거리 하나도 없는 우주선에서 멀쩡하게 정신을 유지할 수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겠나? 그래서 아주 진보한 인체 동결 수면 기술이 요구되었던 거라네. 잠든 채로 우주의 곳곳에 많은 사람을 보낼 수 있도록.[p156~157]
“이제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거라네. 내가 여전히 동결 중인지. 사실 이 모든 것이 몹시 추운 곳에서 꾸는 꿈은 아닌지.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정말로 나를 영원히 떠난 게 맞는지. 그들이 떠난 이후로 100년이 넘게 흘렀다면 어째서 나는 아직도 동결과 각성을 반복할 수 있는지. 왜 매번 죽지 않고 다시 깨어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얼마나 많이 세상이 변했는지.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다시 만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럼에도 잠들어 있는 동안에 왜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왜 나는 여전히 떠날 수 없는지······.”
안나가 빙긋 웃었다.
“한번 생각해 보게.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는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 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안나 씨"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셔도 소용은"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p180~182]
안나는 곧 파편이 없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이제 그녀를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안나의 셔틀은 점점 속도를 높이며 지구로부터 멀어져 갔다. 남자는 조종실 버튼에서 손을 놓았다. 문득 남자는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먼 곳의 별들은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서 작고 오래된 셔틀 하나만이 멈춘 공간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남자는 노인이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p187~188]
표제작이기도 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일 년 전의 문장들이 낯설어져서 이번에 다시 읽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자신이 갈 곳을 정확히 알고 그 길을 가려는 의지는 부럽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우린 늘 불확실한 미래에 가여운 존재로 흔들리고 흔들리지 않은가.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도착할지도 모를 목적지를 가진 사람만이 저런 결연함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결정에 도달하기까지의 긴 시간의 족적이 남긴 결과인지도.
이번에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미 시도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토록 시각적 이미지가 뚜렷한 작품이었다. '안나'역은 세상의 풍파를 겪어서 점점 아름다워지는 배우 윤여정씨가 맡으면 어떨까 싶은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이미지로 읽었다.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인데 내게 세상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으로 읽혀서 혼자서 실소를 깨물곤 했다. 그렇게 빨리, 휙~ 지나가서 무얼 만나게 될까.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그 길을 걷는 나를 만나게 될까?
'감정의 물성'
“널 이해 못 하겠어.”
보현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발목이 잡혀 있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녀를 억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우울체’가 그녀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 주는가?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테이블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보현은 말을 이어갔다.
“어떤 문제들은 피할 수가 없어, 고체보다는 기체에 가깝지. 무정형의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짓눌려. 나는 감정에 통제받는 존재일까? 아니면 지배하는 존재일까? 나는 허공중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래. 네 말대로 이것들은 그냥 플라시보이거나, 집단 환각일 거야. 나도 알아.”
보현은 우울체를 손으로 한 번 쥐었다가 탁자에 놓았다. 우울체는 단단하고 푸르며 묘한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동그랗고 작은 물체였다.
“하지만 고통의 입자들은 산산이 흩어져 내 폐 속으로 들어오겠지. 이 환각이 끝나면.”
우울체 하나가 탁자 위를 굴러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게 더 나은 결론일까.”
나는 시선을 피했고 그 순간 보현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어지는 진동 소리가 짧은 비명 같았다. 잠시 뒤 그녀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달칵 닫혔다. 휴대폰의 진동이 멈췄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허공을 가득 채운 침묵이 느껴졌다.
보현을 무슨 말로 위로해야 했을까? 나는 순간 보현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언어도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가슴속에서 빠져나가버린 듯 싸늘했고, 나는 그게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감각임을 알았다.
그제야 어설프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버린 향수의 냄새.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 오래된 벽지의 얼룩. 탁자의 뒤틀린 나뭇결. 현관문의 차가운 질감. 바닥을 구르다 멈춰버린 푸른색의 자갈. 그리고 다시, 정적.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가.
나는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떨구었다.(p.216~218)
'관내분실'
엄마는 지민을 출산한 이후에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많은 산모들이 출산 직후에 산후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한다. 대개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아이가 자라고 손이 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때로는 약물 처방과 상담을 통해 해결된다. 그러나 엄마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엄마를 방치했다. 원래부터 예민한 성격이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엄마의 병은 점차 심각해졌다. 지민과의 관계를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된 건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지민은 엄마의 집착이 싫었고 자신을 소유물처럼 통제하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엄마의 병이 원인이었는지 아니면 틀어진 두 사람의 관계가 엄마를 더 약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선행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은하와 지민이 어느 날부터 서로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p240]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인덱스를 가진 엄마.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춤을 추고, 선과 선 사이에 존재하는 이름과 목소리와 형상을 가진 엄마.
지민은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지민을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두려웠을까. 그렇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엄마.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씨. 지민은 본 적 없는 그녀의 과거를 이제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를 용서하거나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한때 그녀가 누구였건, 지민과 관계 맺었던 엄마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준 적이 없는 형편없는 엄마였다. 살아 있는 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p266, 267]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정말로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건 단지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느 쪽을 믿고 싶은 걸까?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지민은 한 발짝 다가섰다. 시선을 비스듬히 피하던 은하가 마침내 지민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지민은 알 수 있었다.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 [p271]
얼마 전에 티브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게 되었다. 지금은 떠나고 없는 그룹 '거북이'의 '터틀맨'을 AI로 복원시켜 완전체 그룹 '거북이'의 재현 무대를. 노래를 듣는 동안 다시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던 어머니와 형님의 눈물 앞에서 덩달아 속수무책으로 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노래를 좋아했고 황망한 그의 죽음이 안타까웠기에 감정이 고양되었는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를 수집한 도서관이 있다. (그거 괜찮네.) 마인드와 접속하면 떠난 이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는데 엄마의 인덱스가 도서관 내에서 분실되어 엄마의 마인드는 만날 수가 없다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단편은 묵직한 감동이었다. 애증이 교차하는 엄마를 향한 화해와 이해는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첨단화된 우주의 세계에도 진행형의 감동을 전할 것 같다. 노래하는 터틀맨을 다시 만나는 것처럼. 그렇다면 나는 엄마를, 아버지를, 둘째 오빠를 만나고 싶을까? 그들을 만날 수 있을 만큼의 그들의 생애를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
그날 밤 가윤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생각했다. 재경 이모는 심해에서, 마침내 자신이 찾아 헤매던 목적지에 도달했을까.
심해를 유유자적 유영하는 재경 이모를 상상하는 것은 우주에 있는 이모를 상상하는 것보다 차라리 쉬웠다. 심해로 내려간 재경 이모. 그건 너무 아득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아무렇게나 그려도 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이모는 새로 단 아가미로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따라 헤엄치겠지. 그러면서 지상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한심한 일들을 마음껏 비웃고 있을 것이다. 가윤은 그곳의 깊은 어둠이 우주와도 닮아 있으리라고, 그래서 이모는 망설임 없이 바닷속으로 떠났으리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가윤은 아직 한 가지가 궁금했다. 이모는, 우주의 저편을 보지 못한 것을 그래도 조금은 아쉬워할까?(P.313~314)
캡슐을 조망 모드로 전환하자 격벽이 걷히고 캡슐 끝 구역의 조망대가 드러났다. 검은 육각 프레임 너머로 새로운 우주가 보였다. 터널 너머의 우주였다. 가윤은 휘청거리며 벽면의 손잡이를 잡았다. 벽을 밀며 조망대로 다가갔다.
별들과 뿌옇게 흩어진 성운이 보였다. 더 많은 별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수도 없이 보았던 저쪽 우주와 별다를 바도 없었다.
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 굳이 거기까지 가서 볼 필요는 없다니까. 재경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목숨을 걸고 올 만큼 대단한 광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윤은 이 우주에 와야만 했다. 이 우주를 보고 싶었다. 가윤은 조망대에 서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까지 천천히 우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언젠가 자신의 우주 영웅을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 저편의 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것이다.(P.318~319)
내게 영웅은 누구일까? 영웅은 없었지만 다양한 분야의 롤모델은 있다. 경험상 롤모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전환점이나 고비가 왔을 때 그를 보며 방향을 찾을 수 있고. 다시 걸을 힘을 얻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기에 어느 순간, 실망하기도 한다. 롤모델의 잘못은 아니다. 상대방은 자신이 롤모델로 선택되기를 원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냥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 목표를 정할 때 닮고 싶은 특정인을 지정하는 것이다. 우주인이라는 설정이 다르긴 하지만 닮고 싶었던 '덕후'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 사람이었다.
여기 실린 일곱 편 전체가 SF 소설이지만, 주인공들은 낯설지 않다. 그들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주인공들처럼 힘이 세거나, 특출나거나 비범하지도 않다. 장애를 가진 소녀였고, 외로운 할머니였고, 과학자였고, 비혼모다. 그들은 바로 우리였다. 이렇게 길게 끄적거리고, 옮기고, 공을 들이는 이유도 그 안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를 롤 모델로 삼을 많은 우리들 때문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어떤 상상력의 결정체를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감정의 물성'도 놀라운데 그보다 확장 시킨 상상력이라니.
아, 무엇보다 빛보다 빠르게 이 바이러스의 시절이 지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