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아무것도

 

 

 폐품 리어카 위 바랜 통기타 한 채 실려간다

 

 한시절 누군가의 노래

 심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

 

 아랑곳없이 바퀴는 구른다

 길이 덜컹일 때마다 악보에 없는 엇박의 탄식이 새어나온다

 

 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

 영원이 아니어라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

 

 다만 흉터였으니

 어설픈 흉터를 후벼대는 무딘 칼이었으니

 

 칼이 실려간다 버려진 것들의 리어카 위에

 나를 실어보낸 당신이 오래오래 아프면 좋겠다

                            박소란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중에서

 

 

 박소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남 마산에서 자랐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9[문학수첩]으로 등단했다.

 

 박...

 처음 만나는 그녀의 시를 창비 시선 386으로 읽는다.

 이 땅에서, 창비에서 시집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검증의 절차를 거쳐 왔다는 것이리라.

 내게만 생소한 이름이지 그쪽 세계에서는 이미 오래된 시인일지도 모른다. 등단 6년만의 첫 시집의 연륜을 통기타 한채라는 표현에서 읽는다.

 한 시절 누군가의 집이었고 심장 가까운 곳에서 한과 정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지만 이제는 버려진 통기타, 흉터로 남은, 칼로 남은 한 시절의 상징...... 버려지는 것이 어디 통기타뿐이겠는가.

 누군가에게나 한채였을 노래들, 이제는 치기어린 시절의 쓸데없는 짓이 되어버린 쓸모없는 엇박의 탄식들, 그녀를 통해 만난다.

 ‘나를 실어보낸 당신이 오래오래 아프면 좋겠다

 이 마지막 행은 시집을 세상에 내보내는 시인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아서 쉰 두 편의 시들 중 꽤 많은 시들은 오래오래 아프다. 이를테면

 

 삼양동 시절 내내 삼계탕집 인부로 지낸 어머니

 

 아궁이 불길처럼 뜨겁던 어느 여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까무룩 꺼져가는 숨을 가누며 남긴

 마지막 말

 얘야 뚝배기가, 뚝배기가 너무 무겁구나

 

 그후로 종종 아무 삼계탕집에 앉아 끼니를 맞을 때

 펄펄한 뚝배기 안을 들여다볼 때면

 오오 어머니

 거기서 무얼 하세요 도대체

 

 자그마한 몸에 웬 얄궂은 것들을 그리도 가득 싣고서

 눈빛도 표정도 없이 아무런 소식도 없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느른히 익은 살점은 마냥 먹음직스러워

 대책 없이 나는 살이 오를 듯한데

 

 어찌 된 일인가요

 삼키고 또 삼켜도 질긴 허기는 가시질 않는데

                                     배가 고파요-전문

 

 직업상 이러저러한 뚝배기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가스 불 위에서 쩍 갈라지는 낭패의 연속이다 '배가 고파요'는 열두 화구에서 맹렬한 기세로 끓고 있는 뚝배기를 옮기다 팔을 스친 것 같다. 강렬한 뜨거움 다음에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쓰라림이다, 흉터다. '삼키고 또 삼켜도 질긴 허기는 가시질 않는데'

 

 

 불현듯 슬프다

 너무 오래 울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어느 곳 어느 때 아주 사소한 흐느낌조차

 

 울기 위해 집으로 달려간, 그때는 스무살

 수업을 마치고 과제를 제출하고 사려 깊은 학생이 되어

 조금씩 꼬깃해져가는 표정을 가방 깊숙이 밀어넣고 가까스로

 열어젖힌 싸구려 자취방은 더없이 고요해

 너무 낮고 너무 어두워 울음은

 다름 아닌 거기에 살고 있음을 알았다

 

 마음이 타들어갈 때마다 기꺼이 방문을 열어준

 나의 울음, 엄마가 죽던 밤에도

 사랑이 더운 손을 뿌리치던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그 방에 있었다 볕이 들지 않는 방

 아릿한 곰팡내가 명치를 꾹꾹 누르는 방

 울음의 방으로 숨어들수록 울음은 아프고

 어찌 된 영문인지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증발하는 물기처럼 어느새 울음은

 

 거기에 살 수 없음을 알았다

 한마디 인사도 없이 떠나갔음을

 어디로 갔나 울음은

 울음의 빈자리를 몹시 뒤척이던 나는

 

 후미진 골목 끝

 자취방은 헐리고 추진 스무살도 멀리 달아났으니

 어디로, 말수가 적어 겉돌기만 하던 나의 울음은

                                  울음의 방-전문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닿는 꼭대기

 

 그러니 모두

 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주소-전문

 

 시인은 지금은 어디에 주소를 두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종점 곁에 산다. 이 도시에 올라왔을 때 살기 시작했던 곳으로 그때도 종점이었는데 여전히 종점인 이곳으로 돌고 돌아서 제자리로 왔다. 지금은 아파트도 여러 개 있고 공원도 여러 개나 있는 그럴싸한 중산층의 동네처럼 화장을 했지만 여전히 숨차게 퍽퍽한 깔끄막 길들은 울음의 방마다 후미진 골목으로 놓여있고 새벽마다 허둥지둥 뛰어 올라탔던 버스들은 부릉부릉 매연을 쏟아놓아 미세먼지 농도에도 아랑곳 않는 꼬깃꼬깃해져가는 동네다. 나처럼 뒤척이는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하루를, 고단한 하루를 각자의 울음의 방으로 돌아가 마감한다. 이제는 울지 않을지라도 늘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하루의 끝마다 이제 서른 몇 해를 산 젊은 시인에게서 위로와 놀람을 동시에 받는다.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가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 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다음에-전문

 

 

 따뜻하고 쓸쓸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일일연속극같은, 그러나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같은 맛있는 시집이다. 길어도 읽기를 중간에 멈출 수 없는 매력있는 시편들이 가득하다.

 여기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필사하면서 읽었던,  '너무 깊은 오해', '나의 고양이가 되어주렴', '감', '참 따뜻한 주머니', '노인', '화장실이 없는 집', '통속적 하루', '망명', '지익' 등등.

 그리고 지금 우리들의 정서적 주소지를 묻는 시가 있다. 눈으로 몇 번을 읽고 어디서 끊어야 할지 가늠한 다음에 소리내어 읽으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우리가 자주, 꼭 읽어야 할 한 편, "심장에 가까운 말" 이 시집은 이 한 편의 시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고 어설픈 나도 감히 말하고 싶어지는 '용산을 추억함'. 역설적이게도 악몽 같은 이 사건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라도 기억해야 하는데 잊고 산다. 2009년 1월 20일의 용산을. 

 

용산을 추억함

 

  폐수종의 애인을 사랑했네 중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용산 우체국까지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한강로 거리를 쿨럭이며 걸었네 재개발지구 언저리 함부로 사생된 먼지처럼 풀풀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시의 몸 구석구석에선 고질의 수포음이 새어나왔네 엑스선이 짙게 드리워진 마천루 사이 위태롭게 선 담벼락들은 저마다 붉은 객담을 쏟아내고 그 아래 무거운 날개를 들썩이던 익명의 새들은 남김없이 철거되었네 핏기 없는 몇그루 은행나무만이 간신히 버텨 서 있었네 지난 계절 채 여물지 못한 은행알들이 대진여관 냉골에 앉아 깔깔거리던 우리의 얼굴들이 보도블록 위로 황망히 으깨어져갔네 빈 거리를 머리에 이고 잠든 밤이면 자주 가위에 눌렸네 홀로 남겨진 애인이 흉만(胸滿)의 몸을 이끌고 남일당 망루에 올라 오 기어이 날개를 빼앗긴 한 마리 새처럼 찬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꿈이 머릿속을 낭자하게 물들였네 상복을 입은 먹구름떼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네 깨진 유리창 너머 파편 같은 눈발이 점점이 가슴팍에 박혀왔네 한숨으로 피워낸 시간 앞에 제를 올리듯 길고 긴 편지를 썼으나 아무도 돌아올 줄 모르고 봄은 답장이 없었네 애인을, 잃어버린 애인만을 나는 사랑했네

 

 

 오늘은 5.1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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