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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불명 야샤르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세상에 야샤르보다 더 기구하고 서글프고 안타까운 주인공이 또 있을까 싶다. 정부기관의 나태하고 무능력한 일처리로 인해 죽은 사람이 됐다가 살아있는 사람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그를 보고있자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불쌍한 마음이 저 가슴 밑바닥에서 저절로 샘솟게 된다.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이 공무원들의 손에 의해 발생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야샤르가 받게되니 그의 삶은 믿을수 없을만큼 버라이어티 하다.
아버지와 함께 동사무소에 갔다가 자신이 전쟁에서 전사했다는 말도안되는 통보를 받게 된 그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지 상상해 본다. 상식이 있고 맑은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단박에 잘못된것을 알고 고쳐줄텐데 공무원은 절대로 고쳐줄수가 없다 라고 말을 한다. 여기 이렇게 야샤르가 멀쩡하게 살아있는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만하고 오만한 공무원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해가며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닌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죄의식과 동정심이 생기지 않는걸까.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급박하지 않은걸까. 덕분에 이 일을 계기로 야샤르의 기구한 삶은 시작된다.
야샤르는 죽은 사람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수 없다. 덕분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유산도 상속받지 못한다. 하지만 정부는 그에게 군대로 오라는 통보를 하고 아버지의 빚을 갚아야 하는 의무를 떠맡기게 된다. 자신들이 그를 죽음사람 취급할땐 언제고 이제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취급해 그에게서 이득을 취하려고 하니 정말 기가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야샤르가 정부에게 도움을 요청할땐 봐도 못본척, 들어도 못들은척 하던 정부가 막상 자신들이 필요할땐 그에게 국민의 의무를 지우게 되니 이 무슨 해괴한 망발인가. 게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군대에 가고 빚을 갚은 야샤르에게 정부가 준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단물을 쏙 빼먹자마자 당신은 죽은 사람이니 전역할수도 없고 유산을 상속받을수도 없다 라고 잘라 말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정말 빌어먹을,옘병할 이라는 욕지기가 저절로 올라오게 만드는 그들의 모습에 뒷목이 뻐근해 온다. 야샤르의 걸출한 입담과 풍자섞인 이야기에 신나게 웃다가도 그가 당한 일들을 떠올리면 깔끔하게 웃을수가 없다. 뒤로 갈수록 재밌다기 보단 씁쓸하고 서글퍼진다. 한 개인의 인생을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과 정부는 여전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보다 더 힘든일이 이 오만불손한 공무원들을 상대해서 이기는게 아닐까 싶다. 만약 그가 전사했다는 엉터리 기록만 아니었더라도 야샤르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는 사람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감옥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며 행복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물론 간혹 공무원들을 만나 속터지는 일은 당했을 테지만 말이다.
고쳐야 할 문제가 눈앞에 버젓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본척 하는 거만한 정부는 자신들만의 편의를 위해 한 국민이 겪고있는 부당한 일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그 피해를 호소한다고 해도 거대하고 오만한 정부는 꿈쩍하지도 않고 있다. 덕분에 이번에도 재수없게 걸려들었구나 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고 속타는 상황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고 고생을 하는건 온전히 국민야샤르의 몫으로 남게된다. 국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막중한 의무감으로 눈을 빛내면서 업무를 하기는 커녕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는데 모든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 공무원들이 있는한 말이다.
이 책을 풍자가 담긴 속터지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알고있다. 몇달전에 한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어이없는 사건을 본적이 있었다. 한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 였는데 1년간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일할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입국하게 되었지만 어느날 그가 불법외국인 이라는 이유로 추방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알고봤더니 한 공무원이 그를 데이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법근로자로 잘못 등록을 했다는 것이다. 1년간 합법적으로 일할수 있었던 이 외국인 노동자는 한 공무원의 실수와 그것을 바로잡아줄수 없다라고 말하는 대표의 입장때문에 추방당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를 도와주고 있는 한 시민은 이런일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고있지만 그 피해를 보상받기는 무척 힘들다며 안타까워 했다. 공무원의 실수로 주민등록증을 발급 못받은 야샤르와 공무원의 실수로 추방당하게 된 외국인 노동자의 사정이 왜이리도 같아 보이는걸까. 분명 고칠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화가나면서도 씁쓸함을 느낀다. 대체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규칙에 의해 혜택을 받는건 국민이 아니라 무능력하고 게으른 공무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