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만든 사람들
살바도르 플라센시아 지음, 송은주 옮김 / 이레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펼쳐들고 읽는다. 그러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난감해한다. 이 책을 계속 읽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 하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읽기 시작하자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한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푹 빠져 읽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 책. 굉장히 재밌잖아!"

책에 구멍이 뚫려있는가 하면 까맣게 색이 칠해져 있어 글자를 볼수없게 만든다. 문단은 페이지 끝까지 인쇄돼있는데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있어 독자는 그 뒷이야기를 들을수 없다. 어떻게보면 독자를 우롱하는것 같다고 느낄만큼 불친절하고 당황스럽다. 보통 우리가 읽는 책 지면과는 확연히 다른, 그야말로 3차원적인 소설이다. 그래서 익숙해지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읽으니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작가가 보여주는 놀라운 세계에 몰입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종이 인간이 만들어지면서 부터다. 안토니오는 살아있는 종이 인간을 만들게 되고 그 중 한명이 메르세드 데 파펠 이다. 그녀는 사랑을 찾아 떠나게 되지만 종이 인간의 사랑은 꽤나 슬프다.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인간 남자들은 하나같이 몸에 상처를 입게 돼 떠나게 되니 메르세드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을까. 사랑은 모든 장애를 넘어선다고 하지만, 종이에 베인 상처가 얼마나 따끔거리고 아픈지를 떠올린다면 떠나간 남자들을 탓할순 없다. 사랑했기 때문에 연인을 떠나보내야했던 메르세드의 아픔이 절절히 느껴진다.

그리고 아내가 떠나버려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페데리코가 있다. 그는 어느날 부터 토성이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들으면 헛소리라고 치부할만한 말인데 그는 토성의 존재를 실제로 느끼고 두려워한다. 심지어 토성이 자신을 조롱하고 비웃는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는 우주에 있는 토성을 어떻게 느끼는걸까. 토성이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그를 비웃고 감시할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토성의 존재는 작가로 밝혀진다. 페데리코와 책 속 모든 세계를 창조한 작가는 당연히 모든 인물들을 주의깊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말을 하는지는 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거니까. 페데리코가 작가의 존재를 느낄만큼 예민하다고 해도 그건 어쩔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페데리코는 토성, 즉 작가와의 한판 대결을 준비한다.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쫒아다니는 토성을 무찌르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이미 페데리코는 작가가 손을 쓸수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만약 페데리코라면, 나의 일상 전부를 다른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소름이 돋을 것이다. 특히 야뇨증을 갖고있는 페데리코와 같다면 더더욱 그럴것이다. 내가 침대에 오줌을 싼 모습을 누가 본다면 수치스러울 테니까. 그 뿐인가. 밥먹거나 일할때에도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야한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페데리코와 마을 사람들이 토성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단체를 결성하고 방어책을 준비하는 과정을 말이다. 집을 납으로 만들면 괜찮다고 해 온 마을 곳곳이 납집이 됐고 결국 사람들이 납 중독이 된건 안타까웠지만 그만큼 절실했을 것이다. 집 밖을 나설땐 머릿속 생각을 비우는 등 토성을 상대로 무모한 싸움을 건 그들. 누가봐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토성이 이길 확률이 99.9999%였으니까.

하지만 이게 웬걸. 무적이었던 토성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볼 정신이 없었다. 그에게도 자신이 사는 세상이 있었고 혼란스러운 일을 겪어야 했으니 말이다. 페데리코가 아내를 잃었듯이 토성인 작가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고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책 속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아파하고 슬퍼했다. 이 싸움의 결말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이 책,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처음의 어색함과 지루함을 견뎌낸다면,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수 있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볼수 있을 것이다. 내겐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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