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가 기른 감나무 사계절 아동문고 64
이상권 지음, 김성민 그림 / 사계절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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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아이들은 동물은 동물원에만 사는줄 안다. 그래서인지 내가 어렸을때 봤던 야생 동물들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듣는다. 그때마다 백년이 지난것도 아니고 단지 몇십년이 흘렀을 뿐인데, 나의 어린시절과 요즘 아이들의 환경이 너무도 달라졌음을 느낀다. 조금 씁쓸하고 서글프다. 그리고 멸종되어져가는 동물들을 떠올리면 안타깝고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인간과 동물이 함께 공존하며 산다는건 우리에겐 무리였던걸까. 아니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걸까.

TV뉴스에서 심심치않게 보게 되는 '멧돼지 도심 출현' 사건. 그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곳이 바로 우리 동네다. 그래서 그 뉴스를 놀라운 해프닝으로만 치부할수가 없다. 시민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멧돼지의 출현이 위험하고 막아야 되는 거지만, 멧돼지들이 산을 등지고 도심으로 내려온 까닭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그들의 살 터전을 없애고 먹을 음식을 부족하게 만든건 바로 인간이니까. 오죽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산에서 내려왔을까 싶었다.

자연의 풀내음이 한껏 나는 [멧돼지가 기른 감나무]를 읽으며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간것 같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이 같은 경험을 책으로밖에 접할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어른들이 좀 더 환경을 생각했다면 요즘 아이들이 실제로 접하며 성장할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계속 일었지만 모처럼 좋은 책을 봤다는 즐거움은 무척 컸다. 시우라는 아이가 겪는 다섯편의 이야기는 시골 냄새가 나고 정겨운 옛날 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작가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사실감도 더해진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 한마디로 알찬 책이다.

[외눈박이 암탉]은 할머니와 외눈박이 암탉의 이야기이다. 두 눈으로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에 외눈박이 암닭은 후손을 많이 거느리며 장수 했다. 병아리 시절부터 남달랐던 외눈박이는 어디에도 끼지못하는 외톨이였지만 특출난 머리를 가지고 살아남았다. 닭장 안에 있어도 살쾡이에게 잡아 먹히는 판국에, 외눈박이는 밖에서 살았는데도 잡아먹히지 않았다. 뛰어난 위장술 덕분이었다. 그제서야 다른 닭들도 외눈박이를 따라하게 됐고 닭 피해는 더 생기지 않아 시우네 가족에게 큰 소득을 안겨주었다. 한마디로 복덩이 인것이다. 그런 외눈박이가 죽었을때 할머니는 닭을 삶아 먹었다. 시우는 그런 할머니가 이해할수 없었지만 할머니는 집에서 키우는 닭은 사람에게 먹히는게 순리라고 했다. 그렇게 외눈박이와 할머니는 하나가 된 것이다.

징그럽게 생긴 애벌레를 보고 겁을 잔뜩 먹은 시우를 다룬 [주황색 뿔을 가진 괴물]은 입가에 웃음을 짓게 만든다. 내 아이들도 어렸을땐 벌레만 보면 도망갔는데 주황색 뿔이 나는 애벌레를 본다면 아마 기겁을 할것이다. 하지만 그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시우의 두려움은 한번에 싹 시게 된다.

[멧돼지가 기른 감나무]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뜸돌양반으로 불린 멧돼지는 식량을 찾아 마을 근처로 내려왔고 수남이 아재 고구마밭을 뒤지게 된다. 하지만 수남이 아재는 그런 멧돼지를 내쫒지 않는다. 오히려 음식까지 내어준다. 처음엔 경계하던 뜸돌양반도 다른 인간과 다른 수남이 아재때문에, 돌봐야 할 가족이 있기에 계속 산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멧돼지를 더이상 두고볼수 없었다. 사람들의 성황에 수남이 아재는 사냥꾼 친구를 불러왔고, 이는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을 예고한다. 가슴이 아파온다.

[집토끼가 기른 산토끼]에선 집토끼의 젖을 먹고 자랐지만 본능대로 야생으로 돌아간 산토끼의 이야기이다. 누구보다 총명하고 영특했던 산토끼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밀렵꾼들과 사냥개를 골탕먹인다. '토끼몰이'는 토끼의 안전을 위협했는데, 이건 선생님이 소풍 날 학생들을 동원해 산토끼를 잡게 하는 일종의 행사였다. 선생들의 술안주를 위해 학생들이 토끼를 잡아 죽이는건 너무 가혹해 보였다. 지금이라면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일 것이다.

[호랑할매 여우 목도리]는 현재 남한에서 멸종된 것으로 보고된 여우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여우에게 갖는 편견은 너무도 컸기에 마구잡이로 잡아들였고, 결국 여우의 씨가 말라버렸다. 여자로 변신해 사람들을 홀리고, 기절을 하면 간만 쏙 빼먹는다는 말은 아이들에게 큰 공포심을 심어주었다. 시우 또한 어른들의 말과 여우를 직접 보고 혼쭐이 난 경험때문에 많이 두려워했다. 하지만 여우 사냥꾼 아저씨와 함께 산을 누비며 여우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나중엔 영특한 이 동물이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여우를 더 이상 볼수 없었다. 그저 한 마리라도 남아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만 있을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멸종하는 동물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말이다.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산과 들에서 흔히 볼수있던 야생 동물들을 도감에서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동화책 속에서 만나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더이상 멧돼지가 도심에 출현해야 할 일도, 동물들이 다니는 길을 중간에 잘라 도로를 만드는 무식하고 이기적인 일도 없었으면 한다. 너무 큰 바램인가. 그래도 노력하다 보면 인간과 동물이 조화롭게 사는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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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사람들
살바도르 플라센시아 지음, 송은주 옮김 / 이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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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쳐들고 읽는다. 그러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난감해한다. 이 책을 계속 읽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 하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읽기 시작하자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한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푹 빠져 읽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 책. 굉장히 재밌잖아!"

책에 구멍이 뚫려있는가 하면 까맣게 색이 칠해져 있어 글자를 볼수없게 만든다. 문단은 페이지 끝까지 인쇄돼있는데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있어 독자는 그 뒷이야기를 들을수 없다. 어떻게보면 독자를 우롱하는것 같다고 느낄만큼 불친절하고 당황스럽다. 보통 우리가 읽는 책 지면과는 확연히 다른, 그야말로 3차원적인 소설이다. 그래서 익숙해지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읽으니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작가가 보여주는 놀라운 세계에 몰입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종이 인간이 만들어지면서 부터다. 안토니오는 살아있는 종이 인간을 만들게 되고 그 중 한명이 메르세드 데 파펠 이다. 그녀는 사랑을 찾아 떠나게 되지만 종이 인간의 사랑은 꽤나 슬프다.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인간 남자들은 하나같이 몸에 상처를 입게 돼 떠나게 되니 메르세드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을까. 사랑은 모든 장애를 넘어선다고 하지만, 종이에 베인 상처가 얼마나 따끔거리고 아픈지를 떠올린다면 떠나간 남자들을 탓할순 없다. 사랑했기 때문에 연인을 떠나보내야했던 메르세드의 아픔이 절절히 느껴진다.

그리고 아내가 떠나버려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페데리코가 있다. 그는 어느날 부터 토성이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들으면 헛소리라고 치부할만한 말인데 그는 토성의 존재를 실제로 느끼고 두려워한다. 심지어 토성이 자신을 조롱하고 비웃는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는 우주에 있는 토성을 어떻게 느끼는걸까. 토성이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그를 비웃고 감시할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토성의 존재는 작가로 밝혀진다. 페데리코와 책 속 모든 세계를 창조한 작가는 당연히 모든 인물들을 주의깊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말을 하는지는 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거니까. 페데리코가 작가의 존재를 느낄만큼 예민하다고 해도 그건 어쩔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페데리코는 토성, 즉 작가와의 한판 대결을 준비한다.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쫒아다니는 토성을 무찌르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이미 페데리코는 작가가 손을 쓸수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만약 페데리코라면, 나의 일상 전부를 다른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소름이 돋을 것이다. 특히 야뇨증을 갖고있는 페데리코와 같다면 더더욱 그럴것이다. 내가 침대에 오줌을 싼 모습을 누가 본다면 수치스러울 테니까. 그 뿐인가. 밥먹거나 일할때에도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야한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페데리코와 마을 사람들이 토성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단체를 결성하고 방어책을 준비하는 과정을 말이다. 집을 납으로 만들면 괜찮다고 해 온 마을 곳곳이 납집이 됐고 결국 사람들이 납 중독이 된건 안타까웠지만 그만큼 절실했을 것이다. 집 밖을 나설땐 머릿속 생각을 비우는 등 토성을 상대로 무모한 싸움을 건 그들. 누가봐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토성이 이길 확률이 99.9999%였으니까.

하지만 이게 웬걸. 무적이었던 토성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볼 정신이 없었다. 그에게도 자신이 사는 세상이 있었고 혼란스러운 일을 겪어야 했으니 말이다. 페데리코가 아내를 잃었듯이 토성인 작가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고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책 속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아파하고 슬퍼했다. 이 싸움의 결말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이 책,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처음의 어색함과 지루함을 견뎌낸다면,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수 있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볼수 있을 것이다. 내겐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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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무어 4 - 가면의 섬 율리시스 무어 4
율리시스 무어.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지음, 이현경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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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가 연상되는 이 책은 「해리포터」시리즈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수 있는 책이다. 율리시스 무어라는 비밀의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 아이의 모험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들만큼 흥미진진하고 독특한 이야기를 선사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건 책의 디자인 때문이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의 눈길도 확 사로잡는, 호기심을 이끌어 내서 신나는 모험 이야기에 내가 직접 참여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제이슨과 줄리아, 그리고 릭은 이번 4권에서도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하면서 율리시스의 비밀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 있을것 같은 진실은 수많은 방해 공작과 뜻하지 않는 인물의 등장으로 아슬 아슬하게 비켜 나간다. 이제 결말까지는 2권이 남았는데 과연 작가는 이 수수께끼 같은 율리시스 무어를 어떻게 등장 시키고 보여줄까?! 벌써부터 그 결말이 궁금해져 안달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이 모험을 끝마친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까를 상상해보니 더 흥미진진 해진다.

이번권에선 빌라 아르고와 18세기 베네치아를 넘나드는 여행이 계속 진행되어 더 빠르고 숨가빴던것 같다.  악당 오블리비아 뉴턴과 조금은 코믹한 만프레드는 세 아이들을 위협하고 아이들은 그들을 피해 피터를 찾아야 하니 정말 긴장을 늦출수가 없다. 게다가 이 모든 이야기와 장소가 실제로 존재할것만 같게 만드는 작가의 글솜씨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시간의 문을 찾고 그 비밀을 알기위한 아이들의 여정, 그리고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으로 점점 더 템포가 빨라지고 있는 「율리시스 무어」4권은 확실히 이전 책들보다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삐걱대던 세 아이들이 수많은 위험을 이겨냄으로써 더 지혜로워지고 용기로 가득차 있고 서로를 배려하고 신뢰하게 되는 모습은 웬지 흐믓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점점 더 비밀에 접근해가는 아이들의 모험을 계속해서 따라가 보고싶다. 기쁜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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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집을 찾아서 한젬마의 한반도 미술 창고 뒤지기 2
한젬마 지음 / 샘터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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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 나라의 그림과 화가들에 대해 너무도 무심하고 소홀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주변 가까이에 이렇게 좋은 작품들이 넘쳐났는데 난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한채 그저 남의 나라 것에만 열광한것 같아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물론 우리 나라 작품을 무조건 좋아하라는건 아닐것이다. 하지만 무관심으로 인해 멋진 작품들을 모르는건 나한테도 분명 손해라고 생각한다.

한젬마가 소개한 우리나라의 화가들과 작품들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화들을 대할때면 웬지 감동해야만 할것 같은 일종의 의무감과 부담감이 들었는데 이 책에선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 좋았다. 왜냐하면 이 책에 소개된 화가 대부분이 내가 처음으로 접해본 사람들 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접한 그 작품들을 아무런 설명없이,어떠한 잣대도 없이 그저 내 느낌만으로 받아들일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값진 경험이었다.

그림은 (물론 모든 창작물이 그러하듯이) 화가의 모든 세계관이 반영되어있다. 따라서 화가가 어떠한 생활을 했고 어떠한 정신과 목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알면 그 작품이 새로워 보인다. 미처 내 눈에 띄지 않았던 부분들이 서서히 드러난다고나 할까. 내가 알고있는 유명한 화가들의 재미있는 일화들과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일들, 그리고 화가가 살았던 집을 알게되면서 화가의 작품들이 더 가깝게 다가옴을 느낀다.

한국 화가들의 그림은 이 땅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에 서양의 작품들과는 다른 감동이 있었다. 이 땅의 하늘, 이 땅의 자연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언젠가 한번은 이 화가들의 생가와 박물관을 다녀봐야 겠단 결심이 섰다. 그러기 위해선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확실히 서양의 유명한 화가들의 생가와 그들을 위한 박물관은 잘 보존되어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그 나라의 국민들이 자랑스러워 한다. 하지만 유독 우리 나라에서 화가들은 거의 대부분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고 그들을 지원해주는 시스템도 없거나 빈약한 실정이다. 화가들 뿐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과 위인들의 생가등이 자본에 의해 훼손되고 제대로 보전이 안되는걸 보면 더더욱 안타깝다.

직접 발로 뛰며 책을 집필한 한젬마의 글을 읽다보면 우리 나라 화가들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느껴진다. 물론 이 책은 작품에 대한 깊이있는 지식을 전달하진 않는다. 오히려 한젬마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기대하고 이 책을 본 사람은 좀 실망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정보를 달달 외우는 것 보다는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우리나라 화가들의 삶을 따라가 보는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너무도 몰랐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나라 화가들에게 깊은 애정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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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불명 야샤르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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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야샤르보다 더 기구하고 서글프고 안타까운 주인공이 또 있을까 싶다. 정부기관의 나태하고 무능력한 일처리로 인해 죽은 사람이 됐다가 살아있는 사람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그를 보고있자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불쌍한 마음이 저 가슴 밑바닥에서 저절로 샘솟게 된다.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이 공무원들의 손에 의해 발생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야샤르가 받게되니 그의 삶은 믿을수 없을만큼 버라이어티 하다.

아버지와 함께 동사무소에 갔다가 자신이 전쟁에서 전사했다는 말도안되는 통보를 받게 된 그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지 상상해 본다. 상식이 있고 맑은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단박에 잘못된것을 알고 고쳐줄텐데 공무원은 절대로 고쳐줄수가 없다 라고 말을 한다. 여기 이렇게 야샤르가 멀쩡하게 살아있는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만하고 오만한 공무원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해가며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닌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죄의식과 동정심이 생기지 않는걸까.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급박하지 않은걸까. 덕분에 이 일을 계기로 야샤르의 기구한 삶은 시작된다.

야샤르는 죽은 사람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수 없다. 덕분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유산도 상속받지 못한다. 하지만 정부는 그에게 군대로 오라는 통보를 하고 아버지의 빚을 갚아야 하는 의무를 떠맡기게 된다. 자신들이 그를 죽음사람 취급할땐 언제고 이제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취급해 그에게서 이득을 취하려고 하니 정말 기가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야샤르가 정부에게 도움을 요청할땐 봐도 못본척, 들어도 못들은척 하던 정부가 막상 자신들이 필요할땐 그에게 국민의 의무를 지우게 되니 이 무슨 해괴한 망발인가. 게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군대에 가고 빚을 갚은 야샤르에게 정부가 준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단물을 쏙 빼먹자마자 당신은 죽은 사람이니 전역할수도 없고 유산을 상속받을수도 없다 라고 잘라 말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정말 빌어먹을,옘병할 이라는 욕지기가 저절로 올라오게 만드는 그들의 모습에 뒷목이 뻐근해 온다. 야샤르의 걸출한 입담과 풍자섞인 이야기에 신나게 웃다가도 그가 당한 일들을 떠올리면 깔끔하게 웃을수가 없다. 뒤로 갈수록 재밌다기 보단 씁쓸하고 서글퍼진다. 한 개인의 인생을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과 정부는 여전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보다 더 힘든일이 이 오만불손한 공무원들을 상대해서 이기는게 아닐까 싶다. 만약 그가 전사했다는 엉터리 기록만 아니었더라도 야샤르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는 사람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감옥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며 행복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물론 간혹 공무원들을 만나 속터지는 일은 당했을 테지만 말이다.

고쳐야 할 문제가 눈앞에 버젓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본척 하는 거만한 정부는 자신들만의 편의를 위해 한 국민이 겪고있는 부당한 일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그 피해를 호소한다고 해도 거대하고 오만한 정부는 꿈쩍하지도 않고 있다. 덕분에 이번에도 재수없게 걸려들었구나 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고 속타는 상황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고 고생을 하는건 온전히 국민야샤르의 몫으로 남게된다. 국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막중한 의무감으로 눈을 빛내면서 업무를 하기는 커녕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는데 모든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 공무원들이 있는한 말이다.

이 책을 풍자가 담긴 속터지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알고있다. 몇달전에 한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어이없는 사건을 본적이 있었다. 한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 였는데 1년간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일할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입국하게 되었지만 어느날 그가 불법외국인 이라는 이유로 추방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알고봤더니 한 공무원이 그를 데이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법근로자로 잘못 등록을 했다는 것이다. 1년간 합법적으로 일할수 있었던 이 외국인 노동자는 한 공무원의 실수와 그것을 바로잡아줄수 없다라고 말하는 대표의 입장때문에 추방당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를 도와주고 있는 한 시민은 이런일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고있지만 그 피해를 보상받기는 무척 힘들다며 안타까워 했다. 공무원의 실수로 주민등록증을 발급 못받은 야샤르와 공무원의 실수로 추방당하게 된 외국인 노동자의 사정이 왜이리도 같아 보이는걸까. 분명 고칠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화가나면서도 씁쓸함을 느낀다. 대체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규칙에 의해 혜택을 받는건 국민이 아니라 무능력하고 게으른 공무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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