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인슈타인의 편지 - 천재 과학자의 은밀한 고백
장 자크 그리프 지음, 하정희 옮김 / 거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으로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지만 그로 인해 원자폭탄을 만든 주범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학자. 정돈되지 않는 흰 머리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는 체 게바라처럼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어졌다. 하지만 유명한 고전 소설처럼,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고 모르는 이가 없지만 생애와 가치관과 그가 이룬 성과들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부터도 우주,과학,물리,수학엔 문외한이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인 E=mc²가 왜 놀라운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무명의 젊은 과학자가 학계를 시끄럽게 만들고 유명인이 되게 만든 여러 논문들과 이론은 이 책에 자세히 소개되어짐에도 솔직히 머리가 아픈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평생 궁금해했던 우주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끊임없는 호기심은 왜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과학자로 존경받는지를 알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비난을 그가 어떻게 생각했고 해명하는지를 들으면서 아인슈타인이기 이전에 유태인,독일인 등 여러 조국을 가진 인간의 고뇌도 느낄수 있었다. 시대는 그를 단순한 과학자로 만들지 않고, 복잡하고 설명이 필요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에게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어했고 때론 위험에도 처하게 했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중들 앞에서 아인슈타인은 여타 과학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책의 처음은 페기라는 여학생이 그에게 다가와 "당신이 만든 원자폭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라는 비난을 하면서 시작된다. 이런 안타까운 오해들을 풀어주기 위해 그는 장문의 편지를 쓰는데 어린시절의 이야기부터 꺼내든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인 아인슈타인은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삼촌곁에서 전기는 왜 생기는지, 나침반은 어째서 한쪽을 가르키는지 등에 궁금증이 일었다. 삼촌은 어린 조카의 충실한 친구이자 호기심을 채워주는 선생님 이었지만, 모든 답을 주진 못했다. 그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창의성을 길러주는 대신 주입식 교육을 했고, 당연히 아인슈타인은 따분할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업에 방해가 된다며 퇴학을 당했지만 실상은 선생님들께 고분고분하지 않았던게 큰 이유였다.
그 길로 독일의 국적을 포기하고 스위스 국적을 따는데, 이런 그의 성향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루한 수업을 듣는 대신, 공간과 시간에 대해 친구들과 생각을 교환하는게 더 이로웠던 것이다. 아버지가 원하는 기술자 대신 불가사의한 우주와 밝혀지지 않은 세상의 비밀을 찾고 연구에 몰두하는 길을 택했는데 생각보다 순탄치는 않았다. 원했던 물리학과의 조교 자리를 얻지 못해 수십군데의 연구소와 대학에 지원을 했지만 모두 탈락하고, 결국엔 적은 음김을 받고 임시 교사를 해야했다. 그리고 연방특허사무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는데 그땐 혼자의 몸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의 사랑과 결혼 생활에 대핸 잘 알지 못했는데, 그는 여타 천재들이 그렇듯 가정에 헌신하고 자상한 남편은 아니었다. 동거 시절 낳은 아이는 입양보내야 했고 그때문에 죄책감때문에 결혼한 아내 밀레바에겐 사랑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함께 해야 했다. 밀레바를 신경질적으로 묘사한걸 보면 아들들 때문에 헤어지지 않은 모양인데, 첫사랑과 재회하면서 이 마저도 깨지게 된다. 첫사랑과의 결혼생활도 연인의 느낌보단 편한 친구처럼 여겼다고 하니 솔직하지만 아내 입장에선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남편을 이해하는 부인을 보면서 이렇게 한 분야에서 천재적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곁에는 많은걸 인내하고 자신의 모습을 지우는 배우자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그런 그가 처음부터 혜성처럼 나타나 학계의 환영을 받은건 아니었다. 그의 이론은 우주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을 혁신적으로 바꿔 놓았지만 스물 여섯이라는 나이와 말단 공무원이라는 직함은 도발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수십년간 물리학을 공부해온 교수들 앞에 새파랗게 젊은 무명 과학자가, 그것도 현재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가 상대성 이론을 들고 나왔으니 어쩌면 예상되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로렌츠 교수와 푸앵카레의 생각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어나며 비판까지 듣게 된다. '특허사무소 직원이 엉뚱한 이론을 내놓다' 라는 등의 신문 기사가 이를 보여주는데, 다행히도 점차 그의 이론이 증명되면서 받아들여진다.
그는 일을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국적도 취득하고 점차 영향력을 높여가게 되는데 어둡게 드리워지는 전운의 그림자는 그를 연구에만 몰두하지 못하게 했다. 어린 시절부터 평화를 사랑했던 그는 당연히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 선언문도 만들고 정당을 창당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 당시 썼던 글에서 전쟁을 옹호하는 이들을 어리석은 동물이라 칭하고 뻔뻔하다고 비난한다. 나는 평화로운 섬을 꿈꾸네. 현명하고 선한 사람만이 살고 있는 섬을. 그러한 곳에서라면 나는 기꺼이 그 곳의 열렬한 애국자가 되겠네. 라고도 말한다.
자신이 세운 방정식이 틀림을 깨닫고 다시 연구를 시작한 그는 '아름답다'고 표현할만큼 새 이론을 발표하고 논문을 썼지만, 세상은 그가 보여주는 우주의 모습 대신 전쟁에 관심을 기울였고 동료들은 폭탄과 비행기와 잠수함을 만들었다. 모든 관심이 전쟁에 향한 것에 개탄했고, 수소폭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반유태주의 확산에 불안감을 느꼈지만 전쟁을 향해 가는 시간의 추를 막을순 없었다. 그 소용돌이에서 아인슈타인 또한 자유로울수 없었는데 반대파들에 의해 암살 위험을 받는 일등을 겪는다.
사람들은 이 글에서 설명한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 독일인들은 나를 독일 학자로 규정하고 영국인들은 나를 스위스 유태인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나를 증요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에는 정반대로 독일에서는 내가 스위스 출신의 유태인으로 규정하고 영국에서는 독일 학자로 규정할 것입니다. 라고 했던 농담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한다.
전쟁의 적대적인 분위기는 여러 국적을 가진 그를 적대시하기에 바빴다. 다시 독일 국적을 취득하고 모든 비난에 대응했지만 그때마다 돌아가는건 폭언과 질책이었다. 그가 한 말 때문에 독일 나치스에게 저항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기도 하고,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쓴 편지로 인해 졸지에 원자 폭탄을 옹호한 사람으로도 비춰졌다. 정작 그는 우라늄과 알파선과 중성자에 대한 연구는 한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가 아니었더라도 폭탄에 대한 연구는 지속돼고 결국 일본 땅에 떨어졌을 테지만 사람들은 아인슈타인 이라는 손쉬운 표적을 찾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전에 서명한 평화주의 탄원서만 보더라도 그가 평화를 원했던 것을 알수 있지만, 세상의 편견은 깨지지 않고 있다. 오로지 자연과 우주의 신비로운 비밀을 알길 원했던 아인슈타인. 그에게 드리워진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는게 바로 우리가 할 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