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바다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28
황은아 글 그림 / 마루벌 / 2001년 11월
절판


아빠와 함께 지하철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

"아빠,수족관에 가면 고래도 있어?" 라고 묻는걸 보니 수족관에 놀러가는 모양이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곳엔 마치 바다처럼 푸른 물이 넘실거린다.

"아빠, 내 짝은 물고기처럼 눈 뜨고 잔다. 정말이야."

아이의 눈높이로는 아버지도, 주위 어른들도 모두 다리 부분밖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눈 감고도 안 잘수 있다며 시범을 보이는 아이.
재잘재잘 거리며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만든 세계를 그린다.


그때 아이의 눈에 푸른 바다 속을 떠 다니는 물고기들이 보인다. 마치 여행을 가는 것 같은 모습을 아빠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아이.

눈을 감고 있는 아이에겐 사람많고 복잡한 지하철 안이 자신만의 세상이다. 창 밖엔 형형색색의 예쁜 물고기들이 지나가고 문 틈으로는 물이 살짝 새어 나온다. 아이는 물고기들이 어디로 가는지가 몹시 궁금해진다.

그래서 마침내 물고기들을 따라가 보기로 결심한다. 문 틈으로 조금씩 들어오던 바닷물은 지하철 안을 꽉 메우기 시작했고, 덕분에 아이는 쉽게 헤엄쳐 갈수 있게 됐다.

이젠 눈을 감지 않아도 상상을 할수 있는걸까? 눈을 뜬 아이는 해파리를 발견하고 같이 고래를 찾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아이에겐 고래가 가장 만나고 싶은 동물인가 보다.

마침내 고래를 발견한 아이! 아이는 아빠에게 "고래 보러 가자!" 고 하고, 아빠랑 고래 중 누가 더 큰지 물어본다. 그동안 아이에게 가장 큰 사람은 아빠였나보다.

아빠가 더 크다고 생각한 듯한 아이의 질문이 참으로 귀엽다. 아빠는 딸의 질문에 뭐라고 답해줬을까?

어른들에게 지하철은 교통수단 일 뿐인데, 아이의 눈엔 수족관으로 변신하는게 재미있고 신기했다. 아이에게 지하철은 수족관 뿐 아니라 모든것으로도 변신할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 일 것이다. 독특한 그림과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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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2 - 그 이어지는 이야기
사회평론 편집부 엮음 / 사회평론 / 2010년 7월
품절


김 변호사는 이를 "범죄영화의 한 장면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꼬집었다. 또 이건희 전 회장의 어록은 삼성 안에서 '헌법'으로 간주된다. 김 변호사도 삼성에 입사해 3개월간의 입문교육을 받았을 당시 1주일 내내 이건희 전 회장의 육성 어록을 청취했다.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결정을 내릴 때 적용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였다. 이건희의 이익이 그것이다. 삼성의 이익과 이건희의 이익이 충돌할 때면, 늘 이건희의 이익이 우선이었다. 구조본 팀장들이 기업경영자가 아니라 이건희의 가신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래서다."
-41쪽

경향은 이어 "기자들은 이 일이 있은 뒤 치열한 내부 토론을 벌였고, 그 결과 진실보도와 공정논평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는 언론의 원칙을 재확인했다"며 "앞으로 정치권력은 물론 대기업과 관련된 기사에서 보다 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댈 것" 이라고 밝혔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는데 인색하지 않되, 그른 것을 그르다고 비판하는 것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94쪽

김변호사의 책에는 취재거리가 널려있다. 삼성 뿐만 아니라 검찰과 법원,정치권, 언론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부패와 부실이 망라돼 있다. 경향신문이 최근 김 변호사의 책 소개기사를 삭제해 논란을 빚었는데 이 신문의 기자들이 성명에서 "왜 이명박은 조지면서 삼성은 조지지 못하느냐"고 항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사실 김 변호사의 문제제기를 방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신문과 모든 기자들에게 해당한다. -132~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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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가르쳐 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 지음, 최성현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먹거리 안전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면서 유기농법이 점차 퍼지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농약의 달콤한 유혹은 쉽사리 뿌리치기 힘든 것임엔 분명하다. 농산물을 해충으로 부터 막아줘 생산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약을 뿌리는 농부들의 건강마저 해치는걸 생각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우리는 '기적의 사과'를 만든 기무라 아키노리 씨에게서 찾을수 있다. 병충해가 많아 비료와 농약을 많이 사용해야만 하는 사과 농사에서 그가 이룩한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한 험난한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간 끝에 결국 무농약 사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재배, 곧 자연의 힘을 빌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무에서 유를 낳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농부의 참 기쁨이다. 나는 이런 농사를 짓는 게 행복하다. 전에는 농약이 무서워 얼굴을 가리고 일했지만, 농약을 쓰지 않는 지금, 우리 가족은 웃으면서 즐겁게 일을 한다."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도 않고 무지했던 기무라씨는 무턱대고 자연재배 에 뛰어들게 된다.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했으니 실패는 당연했다. 참고할 책도, 누군가의 조언도 없이 그저 몸으로 부딪치며 싸워야 했던 기무라 씨.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던 그에게 9년 동안의 실패는 큰 타격일수밖에 없었다. 9년 이라는 시간동안 매번 실패를 맛봐야 했고 그로인한 극심한 가난은 가족을 힘겹게 했다. 그동안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아내와 가족이 있었기에 계속 도전할수 있었지만, 지옥과도 같은 세월을 더이상 견디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모진 결심을 하고 산에 올라갔는데, 마치 신의 계시처럼 그의 눈에 푸르른 사과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알고보니 참나무 였지만 머릿속에 사과나무가 가득 들어있어서 그렇게 보였다. 죽음의 순간 그가 본 것은 단순한 참나무가 아니라 그의 삶을 구해줄 기회였다. 산에서 만난 참나무는 자신의 사과나무와는 달리 늠름하게 뻗어있고 잎도 무성했다. 무엇보다 달랐던 건 푹신푹신하고 촉촉한 나무 주변의 땅 이었다.박테리아와 균이 건강하게 살아있는 땅과 주변 자연 환경을 보면서 그는 마침내 해답을 찾는다.  

그 날 이후로 기무라씨는 과수원의 풀을 깍지 않았다. 잡초는 무조건 없애야 한다는게 정석이었지만, 산 처럼 풀을 그대로 놔 두자 지열이 낮아지고 흙이 마르는 것을 막아줘 병충해의 공격으로 인한 병이 적어졌다. 과수원엔 산토끼,담비,족제비,들쥐,지렁이가 많이 생겨 이웃들은 과수원을 방치한다고 수군댔지만, 오히려 기무라의 과수원은 살아나고 있었다. 벌레를 관찰하고 사과나무에게 말을 걸며 정성을 쏟았떤 효과는 결국 흰 사과 꽃이 10년만에 피면서 보상받게 된다. 그를 극한으로 몰아갔던 자연 농법, 가족의 건강을 위하고 소비자에게 안전한 사과를 먹이고 싶었던 마음이 마침내 성과로 나타난게 된 것이다.  

농약을 줄이는 것과 전혀 사용하지 않는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처음엔 2~3년이면 괘도에 오를것이라 생각했지만 무려 10년이나 실패했다. 8월말에 잎이 하나도 남지 않고 9월엔 봄에 필어야 할 꽃이 핀 현상은 어떤 책에도 실려있지 않았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며 계속 실패만 했다. 맏딸은 "우리 아버지는 사과를 키운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기른 사과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라고 할 정도의 실패였다.  

하지만 기무라씨는 실패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아진다고 말한다. 아내에게도 "흘린 땀에는 허사가 없어. 반드시 언젠가는 돌아온다." 라고 했다. 그런 인내심과 믿음이 기적의 사과를 만들었고, 그가 걸어온 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 자연농법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농약이 없으면 절대 할수 없던 사과로 이룬 기적이기에 더 값진 것 같다. 무비료,무농약을 내건 그의 농사법은 이제 가족의 건강,안전한 먹거리를 넘어 지구의 생태계를 걱정하기에 이른다. 지구를 살리는 길에 자연농법이 있음을 알기에, 그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강연도 하며 널리 퍼트리려고 한다. 그런 노력이 점점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세계에서 일본은 비료와 농약 사용량이 가장 많은 나라라고 한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두번째는 바로 한국 이다. 이제 우리도 친환경적인 농사법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연계는 스스로 활동하면서 균형을 이룬다. 인간은 그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밖에 할 것이 없다.' 라는 기무라씨의 말 대로 자연을 그대로 놔 둔채로 인간의 먹거리를 얻는 방법,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수 있는 길을 택해야만 한다. 더이상 늦추기에는 지금 지구는 많이 병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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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식생활 - 아이의 식습관이 달라지는 과학적 해법의 모든 것
EBS <아이의 밥상> 제작팀 엮음 / 지식채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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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와 시장엔 먹을것이 넘쳐나고 풍요롭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 먹일만한것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니면 음식의 성분은 그대로인데 유독 요즘 부모들이 까다롭게 구는 걸까? 확실히 전보다 음식의 중요성, 유해 물질에 대한 정보가 많기 때문에 불안감이 커지는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데 무조건 주지 않는것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아이들은 단맛에 유독 열광한다. 신생아들은 쓴맛과 신맛보단 단맛에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이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수 있겠다. 하지만 단맛을 좋아한다고 자꾸 내버려두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건 뻔하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단맛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무엇보다 간식을 줄여야 한다. 과자, 음료수 등에는 강한 단맛이 포함되어 있고 아이들을 유혹한다. 특히 딸기,바나나맛 우유에는 화학제품들이 더 많이 들어있어 아이들에게 해롭다. 1/10이 설탕이라 단맛 중독을 가져올수 있고, 밥맛도 떨어지게 한다. 저자는 이런 식품 첨가물의 중독이 단맛 중독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아이들의 식습관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푸드 브리지 라는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아이들은 새로운 음식, 특히 채소에 일단 거부감부터 가지기 때문에 편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고쳐야 한다. 음식과 친해지게 만들면서 서서히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이 책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실험을 바탕으로 요즘 아이들의 식생활을 보여준다. 아마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밥, 간식 문제로 속앓이를 해오고 있을 것이다. 그저 못 먹게 하면 아이의 반발심과 욕구가 더 커져 역효과가 날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많은 부모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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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비로소이다 -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너머의 역사책 3
임상혁 지음 / 너머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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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노비로소이다'라는 제목을 보니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본 재미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할머니들이 집안 대대로 내려온 문서를 자랑했는데 알고보니 노비 문서였던 것.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재미를 더해서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본 이들 중에 "내 조상도 노비인데" 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 이다. 저자도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조상이 노비였던 분은 손들어 보세요"라고 물었다는데 다들 웃기만 하고 손 올리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노비의 수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혹은 3분의 2까지 보는 학자들도 있다는걸 감안하면 놀라운 반응이다. 그런데 나 조차도 내 조상이 노비라는 가능성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알수 있는 방법도 없고 말이다.

그러고보면 그 당시에 노비로 태어나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여러 책들과 영상을 통해서 노비의 삶이 어떤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었고 한번 노비는 영원히 그 굴레를 벗어날수 없었다. 또 부모 한명이 노비라면 자손들도 대대로 노비의 신분이 됐으니 재능과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할수있는 일은 한정되었을 것이다.(종친과 같은 존귀한 혈통은 노비와 피가 섞여도 자손이 천해지지 않고, 노비 자식을 양인으로 올려주는 제도도 있긴 했다.) 또 주인이 노비를 죽이는건 큰 잘못이 아니나 노비가 주인을 죽이는건 참형에 처했으니 처지가 어떠했는지 짐작할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비들은 양인이 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고 이로 인한 '노비 소송'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결정된 계급제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천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할 방법이 소송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586년에 벌어진 이지도와 다물사리의 소송은 일반적인 '노비 소송'과는 다른 양상을 띄었다.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라 주장하고, 다물사리는 자신이 노비라며 다투었던 것. 보통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가장 관심이 가고 흥미로운 소송이 아닐수 없다.

저자는 이들의 소송을 시작으로 조선시대의 소송 과정등을 광범위하게 풀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발생한 여러 사건들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정립된 재판 절차에 따라 소송이 진행되고 엄격한 법의 적용으로 판결이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우리가 사극을 통해서 본건 주로 일방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의 재판과는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법률에 의거한 재판을 지향했다는 점은 분명했다. (현재의 재판이 완벽하지 않다는걸 고려하면 그 당시의 재판을 '원님 재판 하듯'이라고 표현하는건 옳지 않다.)  

조선 시대의 판결문은 재판의 모든 과정이 다 기재되어 있어 판결의 정당성과 공정성이 확보되는 면도 있었다. 또 거래에 있어서 문서를 중요시했고, 송관이 당사자와 일정한 관계에 있으면 배제했고,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이 구별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소장을 제출한 후에 당사자가 피고를 직접 데려가야 처결을 받을수 있다는 것이다. 피고가 순순히 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수 있는데, 그래서 여러번의 실랑이가 있은 후에야 출석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민사와 형사를 확실히 구분했기 때문이다. 민사소송은 절차 진행이 당사자에게 맡겨져 있는것이라 여겨 공권력을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여러번 나오지 않으면 형리를 보내 강제로 끌고 오지만 말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안면이 있으면 많은 정보를 얻거나 힘을 받았고, 뇌물을 줘서 판결을 유리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 지방에서 수령의 판결에 불복하면 다음에 오는 수령에게 다시 소를 제기하거나 관찰사에게 호소할수도 있다. 하지만 항소에 승복하지 못할 때는 사안에 따라 사헌부에 상소하기도 했다. 또 세번의 소송을 거쳐 승소한 사건은 수리하지 않는다 라는 '삼도득신법'이 있었는데 불공정한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법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때론 제 구실을 못한다는건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이다.  

이제 다시 이지도와 다물사리의 사건으로 넘어가본다. 처음엔 이상한 소송이라 생각했던 것이 당사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해가 됐다. 일단 당시의 시대 배경과 법을 알아야 하는데, 부부가 둘다 노비이면 어머니쪽 주인에게 속하게 된다. 반면 이지도가 주장하는 것 처럼 다물사리가 양인이라면 남편쪽 주인, 즉 이지도에게 다물사리와 자식들이 속하게 된다. 그래서 다물사리는 "저는 백성이 아니라 성균관의 계집종" 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지도나 성균관이나 똑같이 노비의 삶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해도 상관없을 듯 한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사노비 보다는 공노비가 낫고, 사노비 중에서도 외거노비가가 양역노비보다 구속이 덜 했던 것이다. 다물사리는 자식들을 공노비로 살게하려고 자신을 노비라 주장한 것이다. 이런 사정이 담긴 소송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시대 배경과 제도를 알수 있다. 더불어 노비로서의 힘겨운 삶도 말이다.

이지도와 다물사리의 판결의 긴 과정도 그러했지만 책 속에 소개된 소송들을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재판에 대한 오해를 많이 풀수 있었다. 그동안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고 연구가 활발히 시작된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잘못된 편견을 갖는것도 무리가 아니다. 특히 이 책처럼 판결 과정과 법이 정립되는 것을 알려준 적이 거의 없고, 주로 흥미위주의 사건들을 소개하는 책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소송은 법관의 자의에 이루어져서 공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리고 소송 이라는 것도 현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적고, 형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솔직히 이 책을 집어든 이유도 드라마 [추노]이후 관심이 높아진 노비의 삶을 알고싶고, 기록된 문서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접할수 있을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겸손한 저자의 '머리말'을 시작으로(저자와 은사들의 저작을 표절한 책이 나왔고 그 일 이후로 책 출판을 결심했다고 하는데, 표절 당사자의 책이 궁금해진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본 이 책은 조선시대의 재판이 심리가 철저하고 법적용이 정교하다는것을 알게 해주었고 그것은 내게 큰 수확이었다. 이 책을 만나고 읽기 참 잘 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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