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비로소이다 -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너머의 역사책 3
임상혁 지음 / 너머북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노비로소이다'라는 제목을 보니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본 재미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할머니들이 집안 대대로 내려온 문서를 자랑했는데 알고보니 노비 문서였던 것.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재미를 더해서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본 이들 중에 "내 조상도 노비인데" 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 이다. 저자도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조상이 노비였던 분은 손들어 보세요"라고 물었다는데 다들 웃기만 하고 손 올리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노비의 수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혹은 3분의 2까지 보는 학자들도 있다는걸 감안하면 놀라운 반응이다. 그런데 나 조차도 내 조상이 노비라는 가능성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알수 있는 방법도 없고 말이다.

그러고보면 그 당시에 노비로 태어나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여러 책들과 영상을 통해서 노비의 삶이 어떤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었고 한번 노비는 영원히 그 굴레를 벗어날수 없었다. 또 부모 한명이 노비라면 자손들도 대대로 노비의 신분이 됐으니 재능과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할수있는 일은 한정되었을 것이다.(종친과 같은 존귀한 혈통은 노비와 피가 섞여도 자손이 천해지지 않고, 노비 자식을 양인으로 올려주는 제도도 있긴 했다.) 또 주인이 노비를 죽이는건 큰 잘못이 아니나 노비가 주인을 죽이는건 참형에 처했으니 처지가 어떠했는지 짐작할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비들은 양인이 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고 이로 인한 '노비 소송'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결정된 계급제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천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할 방법이 소송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586년에 벌어진 이지도와 다물사리의 소송은 일반적인 '노비 소송'과는 다른 양상을 띄었다.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라 주장하고, 다물사리는 자신이 노비라며 다투었던 것. 보통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가장 관심이 가고 흥미로운 소송이 아닐수 없다.

저자는 이들의 소송을 시작으로 조선시대의 소송 과정등을 광범위하게 풀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발생한 여러 사건들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정립된 재판 절차에 따라 소송이 진행되고 엄격한 법의 적용으로 판결이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우리가 사극을 통해서 본건 주로 일방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의 재판과는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법률에 의거한 재판을 지향했다는 점은 분명했다. (현재의 재판이 완벽하지 않다는걸 고려하면 그 당시의 재판을 '원님 재판 하듯'이라고 표현하는건 옳지 않다.)  

조선 시대의 판결문은 재판의 모든 과정이 다 기재되어 있어 판결의 정당성과 공정성이 확보되는 면도 있었다. 또 거래에 있어서 문서를 중요시했고, 송관이 당사자와 일정한 관계에 있으면 배제했고,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이 구별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소장을 제출한 후에 당사자가 피고를 직접 데려가야 처결을 받을수 있다는 것이다. 피고가 순순히 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수 있는데, 그래서 여러번의 실랑이가 있은 후에야 출석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민사와 형사를 확실히 구분했기 때문이다. 민사소송은 절차 진행이 당사자에게 맡겨져 있는것이라 여겨 공권력을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여러번 나오지 않으면 형리를 보내 강제로 끌고 오지만 말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안면이 있으면 많은 정보를 얻거나 힘을 받았고, 뇌물을 줘서 판결을 유리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 지방에서 수령의 판결에 불복하면 다음에 오는 수령에게 다시 소를 제기하거나 관찰사에게 호소할수도 있다. 하지만 항소에 승복하지 못할 때는 사안에 따라 사헌부에 상소하기도 했다. 또 세번의 소송을 거쳐 승소한 사건은 수리하지 않는다 라는 '삼도득신법'이 있었는데 불공정한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법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때론 제 구실을 못한다는건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이다.  

이제 다시 이지도와 다물사리의 사건으로 넘어가본다. 처음엔 이상한 소송이라 생각했던 것이 당사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해가 됐다. 일단 당시의 시대 배경과 법을 알아야 하는데, 부부가 둘다 노비이면 어머니쪽 주인에게 속하게 된다. 반면 이지도가 주장하는 것 처럼 다물사리가 양인이라면 남편쪽 주인, 즉 이지도에게 다물사리와 자식들이 속하게 된다. 그래서 다물사리는 "저는 백성이 아니라 성균관의 계집종" 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지도나 성균관이나 똑같이 노비의 삶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해도 상관없을 듯 한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사노비 보다는 공노비가 낫고, 사노비 중에서도 외거노비가가 양역노비보다 구속이 덜 했던 것이다. 다물사리는 자식들을 공노비로 살게하려고 자신을 노비라 주장한 것이다. 이런 사정이 담긴 소송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시대 배경과 제도를 알수 있다. 더불어 노비로서의 힘겨운 삶도 말이다.

이지도와 다물사리의 판결의 긴 과정도 그러했지만 책 속에 소개된 소송들을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재판에 대한 오해를 많이 풀수 있었다. 그동안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고 연구가 활발히 시작된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잘못된 편견을 갖는것도 무리가 아니다. 특히 이 책처럼 판결 과정과 법이 정립되는 것을 알려준 적이 거의 없고, 주로 흥미위주의 사건들을 소개하는 책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소송은 법관의 자의에 이루어져서 공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리고 소송 이라는 것도 현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적고, 형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솔직히 이 책을 집어든 이유도 드라마 [추노]이후 관심이 높아진 노비의 삶을 알고싶고, 기록된 문서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접할수 있을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겸손한 저자의 '머리말'을 시작으로(저자와 은사들의 저작을 표절한 책이 나왔고 그 일 이후로 책 출판을 결심했다고 하는데, 표절 당사자의 책이 궁금해진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본 이 책은 조선시대의 재판이 심리가 철저하고 법적용이 정교하다는것을 알게 해주었고 그것은 내게 큰 수확이었다. 이 책을 만나고 읽기 참 잘 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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