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관한 책은 정말 많기도 하고, 또 접해 본 일도 많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 책도 실제 일본 생활에서 겪었던 일본에 대한 얘기들을 살펴 본 패턴 별로 분류되고, 우리네의 생활과 곧잘 비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읽어가며 느껴지는 건, 막연하게 아는 것과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 가 하는가를.... 제 6부로 구성된 내용 중에서 3부의 일본인들의 행동 패턴과 룰 부분에서는 본받아야 할 부분이 직접적으로 많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일본 속의 한국 여행객들 부분에서는 비단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추태의 모습은 아닌 듯한 낯부끄러운 모습이 많이도 열거되어 있었다. 타인을, 타민족을 바라보며 분석하는 것은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을 재조명하는 계기의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그저 막연하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것이 아니라 좀더 비교 분석하고 우리네 삶의 반영으로 고쳐나갈 부분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다. 자꾸만 드는 생각 하나..... 대륙이 너무 넓어 마음을 알 수 없다는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가까운 나라 일본, 일본인들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구성에서 소제목의 진한 글씨와 연결된 내용이 페이지를 넘겨가는 건 좀 눈에 거슬렸는데, 아예 파트별로 함께 연결 지어져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고, 띄어쓰기가 몇 페이지에 한 번 씩은 틀려나오는 것도 편집의 성의 부족이 곧바로 보이는 것 좋지 않아 보였다.
왜 이리 선정적(?)인 제목의 책을 했었는데, 아뿔싸!! 얼마 전 읽게 된 시인의 시집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의 맨 처음 詩 [시인]중에서 '..詩, 그것이 바람난 살구꽃처럼 터지려나...'에 나온 구절이라니....그저 그 시집은 시골생활에서의 요모조모를 아름다운 글로 읊은 시집이라 생각하며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는데, 옷을 벗고 뎅그러니 나서고 보니 이렇게 선정적(?)인 제목일 수가. ㅋㅋㅋ<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 안도현의 내가 사랑하는 시>라는 책에 이어서 출판사는 바뀌었지만 역시 비슷한 포맷으로 '안도현이 가려 뽑은 내 마음의 시'라는 부제를 달고, 그의 감상의 변(?) 내지 시에 얽힌 이야기들을 간단하게 함께 실었다. 역시나 하는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는 시 묶음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좋은 시들이 많지만 이미 다른 시집에서 접해본 시들도 있고 해서 내겐 특히, 이성선 시인의 [도반]과 강윤후 시인의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과 송수권 시인의 [적막한 바닷가]가 인상적이었다. 그 많은 시들 중에서 눈에 띄는 시를 만난 걸로 족하지 않은가? 근데 또다시 이런 묶음 시집을 기다려도 되나? 아님, 그만 나오라고 해야하나 갈등을 일으키게 하네 그려.
그의 이야기는 산문도 시처럼 읽혀진다. 아마도 시인이란 선입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글 사이 생각을 덧붙일 여지를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랫만에 접하는 그의 글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시골생활과 산책-시골사람들은 하지 않는 산책?-에서 오는. 추억에는 속도가 붙어가지만 느리게 사는 시골 삶의 여유로움. 아직도 그 여유로움이 싫은(?) 나로선 그 여유로움이 부럽고 한편으론 얄밉기까지 하다. 아마도 그의 나이쯤이 되면 생각이 달라지려나^^ 사실 그럴 것 같지 않지만.아직도 주소지를 이전하지 못하고 주말마다 전전긍긍하며 살던 나의 오염 가득한 도시로 떠도는 삶이 반영되면서 난 왜??란 의문부호를 찍어보고, 그 아름다운 그의 주변 풍광들의 사진에 나의 주변 국도변의 풍경을 새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된 책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모 패션 월간지에서 언뜻 읽은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찍을 곳이 없다며, 사진이 안된다며 출혈을 무릅쓰고 외국으로 나가다가 '다시 보자! 한국'을 하게 됐다고... 이 책 속에 있는 이해선 씨의 사진은 장석주 씨가 30여 년의 서울 생활을 접고(?) 안착한 안성 금광저수지 일대의 풍경들이라고 한다. 그렇게 일정 공간에서만 나온 사진이라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처음 내게 이 책을 추천했던 知人도 사진 얘기를 덧붙였는데, 정말 사진이 한결 글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적 그림이 그려진 이솝우화를 읽으면서 그저 동화책으로 교훈을 그저 이야기책으로만 읽었는데, 얼마 전 '어른을 위한 이솝우화전집'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게 기원전 6세기 초의 사람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를 읽고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두세 번 이 책을 읽고-다들 말이 많은데 왜 난 안 그런지 확인해보고자- 새삼 느끼는 건 왜 사람들이 이 책에 그렇게 많은 찬사를 보내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저 이솝우화를 생각나게 하는 이 짧은 책에.... 게다가 회사원들에게도.... 모를 일이다. 그저 이런 류의 책은 무지 책읽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매스컴에나 떠오르는 책에 눈이 가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으론 지금은 이솝의 기원전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나 사탕발림식으로 약한 감이 없지 않다. 이솝우화의 형식을 빈 잡문일 뿐이다. 게다가 그런 하드커버의 책들이 모두 따르는 페이지 늘려 책값 올리는 수작의 다른 책과 다를 바 없다.
전기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전혜린에 관한 얘기는 어쩜 소설보다 드라마틱해서 그렇게 많이 쓰여지고 읽혀졌는지 모른다. 친구의 집에 갔다가 우연히 빛바랜 이 책을 접하곤 또 읽게 됐다. 그 여자 전혜린의 삶을 소설을 엮은 이 책은 또 안에 그녀가 문학에 대한 정열은 많지만 번역에만 치우쳐진 그의 문학적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그녀 자신이 삶을 소설로 엮어내는 과정이 뒤섞여 있는 구성을 하고 있다. 6·25전쟁 직후 페허의 수도로 돌아왔다가 독일 뮌헨으로 가서 유학하는 얘기며 세계 모든 나라가 정부를 비판하던 시대에 행동하지 못하고 고뇌만 하는 젊은 지식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의 삶의 모습이 한편으론 부르조아 삶의 뒷끝에서 생각만 많은 지식인의 모습으로 비춰졌다가, 다른 한 편으론 언제가 읽었던 '너무∼ 너무∼(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란 책제목이 떠오른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