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 마음의 길을 잃었다면 아프리카로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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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견디기 힘들었다.

견디기 힘들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당신에게는 언제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사람이 찾아오고, 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에 짓눌리고, 당신은 허둥댄다. 허둥대며 정상적인 호흡법을 잃는다. 
 

허둥대는 동안, 당신은 그저 들이킬 뿐이다. 세상을 다 빨아들일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 한구석 숨어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처럼, 숨을 들이키고 또 들이킬 뿐이다.

당신이 더 들이킬수록, 당신은 더 무거워진다. 침잠하고 침잠한다. 당신이 서서히 침잠하는 그곳, 그곳에 아무 것도 없다. 오직 암흑뿐이다. 당신은 절망한다. 끝이라 생각한다. 점차 들숨조차 불가능해진다. 당신은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바닥에 닿는다. 바닥에 닿고 나서야, 닿는 순간의 반동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가느다란 숨이 당신의 기도를 뚫고 나오기 시작한다. 그제야, 어렵사리 당신은 오래전 호흡법을 기억해내기 시작한다.

들숨과 날숨

당신은 살고 싶어진다. 당신을 살리고 싶어진다. 그것은 지나가는 사람이었을 뿐. 그것은 지나가는 사건이었을 뿐. 조금은 비열하고 조금은 이기적이며 그렇기에 적나라하게 생존에 충실해질 수 있는 그 순간, 당신은 자맥질하기 시작한다. 위로, 위로, 수면을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최초로 두 눈이 수면 밖 세상을 향할 때, 당신은 안도한다. 세상이 거기 그대로 있다. 아연하게, 깨닫는다. 당신이 해저에서 짓눌려 있을 때나, 수면 위로 떠올라 있을 때나, 세상은 그저 <거기>에 있었다. 당신에게는 언제라도 세상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생존에 충실한 자는 나아가기 마련이다. 세상을 향해, 주어진 아직 남은 시간을 향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낯섦을 이기고, 자석처럼 등짝에 들러붙은 무기력을 이긴다. 새 출발을 위한 팡파르는 없다. 대단한 응원도 없다. 당신은 현기증을 느낀다. 혼곤한 피로를 느낀다. 그러나 차분하다. 바닥에 발이 닿았을 때의 차가운 느낌을 기억할 뿐이다. 그 차가움이 머리까지 차갑게 식혀주었음을 느낄 뿐이다.

이제 당신은 매우 먼 곳까지 시계가 훤하다. 두 팔을 뻗어 헤엄을 시작한다. 한 번의 내뻗음이 두 번의 내뻗음으로 이어지고, 두 번의 내뻗음이 세 번의 내뻗음으로 이어진다. 네 번째 내뻗음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당신은 아직 알지 못한다. 아직 알고 싶지 않다. 들숨과 날숨이 좋을 뿐이다. 움직임이 좋을 뿐이다. 다시 더워지는 심장이 좋을 뿐이다.

당신이 아는 것은 다만 이것, 어떻게든 또...살아진다.

더워진 심장은 이제 가까운 뭍에서 쉬고 싶어하지 않는다. 살아 있음을 더 오래, 더 진하게 확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가장 먼 뭍으로 향한다. 가장 멀고, 가장 뜨거운 뭍에 절망으로 식었던 발을 데고 싶다. 아주 잠깐 뒤돌아 볼까 하지만, 그뿐이다. 당신은 그대로 앞으로 간다.

한 쳅터가 끝이 난다.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다. 늘 멀어진 끝은 차고, 다가가는 시작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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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아프리카로 갔다.
- 프롤로그 솟아오르기 中 004-005p  

 
이 책은 그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바쁜 일상에 언뜻 봐도 두꺼운 분량이라 편하게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다 이번 기회에 잡고 앉아 읽기 시작했는데,
이 프롤로그에서 먼저 먹먹해진다.

어떻게든 또...살아진다.

 

그래
그래서
아프리카로 가는 구나...! 
 

그러면서도 용맹함의 상직이었던 부족인 마사이족이 이제는 더이상 용맹과는 거리가 멀고, 사파리를 온 사람들 덕분에 동물들이 먹여살리는 이야기에는 씁씁했고, 한편으로는 아슬아슬 부분이 꽤나 많았다. 특히, 고아원을 운영한다는 던과 댄을 만나고
동아프리카로 갈 때부터 들고 다녔던 풍선과 학용품, 모기장과 헌 옷가지를 가지고 우간다의 서남쪽 부뇨니의 고아원 방문을 할 때는....
결국 '이럴 수가' 싶을 정도로 호의의 마음이 바뀌어 버리게 만드는 일 등 말이다.

엔테베로 돌아갔다. 부뇨니에서 국경을 넘어 르완다로 가서 제노사이드 추모관을 방문하고 고릴라 트레킹을 하려던 애초의 계획은 접었다. 금전과 시간이 두루 문제가 되었으나, 무엇보다도, 닭 사건 이후 친구를 만들 수 없다는 그곳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궁금하다는 것은 일상을 넘어서는 에너지로 새로움을 끌어안을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닭 사건을 마지막으로 배터리는 또 방전되었다. 휴식과 정리가 필요한 순서였다.

모든 여행마다 배터리가 방전되고 충전되는 주기가 있다. 방전될 때 여행자는 길 잃은 미아가 되고 충전될 때 이름 없는 철학자가 된다. 동아프리카의 주기는 유난히 짧았다. 감격의 눈물이 흐르는 신의 정원과 피로한 창녀들의 춤, 고원의 푸른 내음과 용광로처럼 들끓는 먼지, 시계가 멈춰버린 여유와 단돈 2500원에 목숨을 내던지는 제리캔맨, 아이의 토사물을 견디는 형제애와 눈도 깜짝하지 않는 거짓말, 마음을 씻어 주는 호수와 호숫물에 담근 피 흘리는 발...... 아프리카는 특유의 생명력으로 몇 번이나 배터리가 과열될 만큼 에너지를 채워주었다가도 또 특유의 만만치 않음으로 배터리를 방전시켰다. 매력이 넘치지만 다루기 힘든 애인처럼, 가장 아름다움과 가장 고달픔을 숨차게 번갈아 보여주었던 것이다. 찬란한 자연 속에 놓인 극빈이란, 여행자를 꼭 끌어안았다가 서슴없이 내치는 일이었다.

배터리는 초고속으로 충전되었다가 초고속으로 방전되었다. 아프리카가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전력난을 겪는 곳이란 걸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아프리카, 그 잦은 방전과 충전 中521-522p

잦은 방전과 충전을 거듭하며 아프리카를 다녀간다. 또 그녀와 동아프리카 여행기을 다녀오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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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다녀온 사람은 파리를 그리워하기 마련입니다. 뉴욕에 다녀온 사람은 뉴욕을 그리워하기 마련이지요. 그곳에 두고 온 과거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아프리카에 다녀온 사람은 자꾸만 ‘지구’를 생각합니다. 지구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그곳에 용케 남겨진, 두리가 버렸으되 한때 소중했던 것들을 생각하고, 그곳에 슬프게 남겨진, 우리가 조금 더 기름지기 위해 앗아온 것들의 상흔을 생각합니다. 그것들이 치유되고 회복된 미래를 기원하게 됩니다. 
 

당신은 그렇게 아프리카라는 진한 매캐로 지구와 연결됩니다. 네 번째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지요. 이제 행도운 바로 옆방의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두드리지 않아도 지구는 크게 변하기 않겠으나, 두드린다면 분명 더 이로운 곳이 되겠지요.


시작은 아무래도 좋겠습니다.

저처럼 한낱 일상에 지쳐 떠난 자도, 사파리의 낭만을 꿈꾸며 떠난 자도, 일단 그곳에 도착하면 말씀드렸다시피 모두 평범해지니까요. 우리 내면의 뜨겁고 차가운 꿈틀거림들이 극진히 실험받고 여과되어 지구를 생각하는 당신으로 탈바꿈되니까요.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지금 마음의 길을 잃어 먼 곳으로 떠나려 한다면, 아프리카를 권하겠습니다. 
 

꼭 저처럼 못난 당신, 지구를 업고 돌아오겠어요.
에필로그 중 549p
 
 
이렇게 지구를 업고 돌아올 수도 있어진다. 언젠가 내가 아프리카에 관한 책을 읽고 그랚던 것처럼 다시금....

폴레폴레(천천히 천천히) 읽어야하는, 폴레폴레 읽어지는 책.   

 

1
여행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 새로운 곳에 가서도 거울을 보듯 ‘나’만을 보는 것.
2단계, 나를 떠나 ‘그곳’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3단계, 그곳에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 것.
4단계, 내 것을 나누어 그곳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
에필로그 중 546 p

나는 어떤 여행의 단계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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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여행법 - 딸과 함께 떠난 유럽 사진기행
진동선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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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 동안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운전을 하며 전시회와 비엔날레를 돌아보며, 빛이 중요한 새벽 촬영까지...쉽게 할 수 없는 고단한 일정의 사진가의 여행법이다.

얼마 전 그의 사진집을 접하게 되었다. 사진의 느낌이 좋았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만나 읽어보게 되었다. 함께 사진작업을 하는 딸과 함께 떠나는 사진여행에서 늘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사진 여행에서 찍은 사진은 평범한 여행사진, 혹은 관광엽서 같은 사진이어서는 안 된다. 사진가의 사유와 철학이 배어나야 하고 무엇보다 사진가 자신이 드러나는 사진이어야 한다.’(159p)한다는 것이다.

 각 사진마다 사진에 관한 정보가 친절하게도 담겨있다.
책의 말미에 도움말 [사진 여행을 떠나려면]의 내용은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고민하는 렌즈에 대한 내용 등과 실제 여행 중에 사진을 찍을 때 이동 중이나 빛 때문에 다들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밤과 새벽의 촬영, 대도시 촬영이나 인물, 풍경 사진 찍을 때의 팁이 짤막하게 정리되었지만 알차다.

길은 그를 대하는 사람에 따라 풍경을 달리 드러낸다. 사진가에 따라 흑백으로 대하는 이가 있고, 컬러로 다가가는 이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훗날 사진의 연주인화에 의해 나타나지만 길 위의 풍경이 컬러 이미지인지 흑백 이미지인지, 빛, 색, 구도, 조형은 물론 초점, 노출, 디테일까지도 길이 사진가에게 보여주고 사진가가 길을 보았던 시선 속에서 결정된다. 모든 사진은 ‘되돌리는 시선’이다. 그때 그 자리에서 보았던 것을 또 다른 시선으로 되돌리는 것이 사진이다.

-유로기행5ㅣ로맨틱 가도 93-94p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더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길에 매료된다. 촬영의 어려움, 노출의 어려움, 프레임의 어려움 등이 있지만 가장 사진다운 사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심의 뒷골목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빛의 향연’이다. 사진의 생명도 존재도 그곳에 있으며, 오로지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도드라지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이 그곳의 빛과 어둠 속에 있다.

이런 길들을 만날 때면 거의 황홀경에 빠져 셔터를 누르기에 내 사진들은 대부분 도심의 이면 도로에서 탄생한다. 좁고 긴 길은 사진적 원근감perspective을 갖고 있어서 좋고, 그 원근감 속에 사람이나 사물 등 뭔가를 담을 수 있어서 좋다. 특히 좁을 길 어느 곳에 점점 멀어지고 사라지는 지점을 둘 수 있는 것이 좋다.

-유로기행6ㅣ인스부르크에서 109-110p

계속 되는 그의 길에 관한 이야기에서 지난 번 봤던 그의 ‘길’에 관한 책 [그대와 걷고 싶은 길](예담.201004)에서의 사진이 자꾸 생각이 난다. 

 

 

하지만 어떤 말보다도 그의 이야기는 그의 사진이 이야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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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그 황홀한 유혹 - 마음을 두드리는 감성 파리 여행
최도성 지음 / 시공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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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知人 중에 해외에 나가면 파리여야만 한다는 이가 있다. 그를 생각하며 웃었는데, 솔직히 내게도 짧게 다녀왔던 유럽 여행에서 프랑스, 아니 파리의 인상은 강렬해서 나가 살게 된다면 파리에서 얼마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곳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하고 온 친구는 음산한 겨울 날씨며 몇 가지 이유를 들면서 한사코 만류했지만 말이다. 
 

이 글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들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나온다.

  파리에 처음 왔을 때 이곳에서 1년쯤 살아봤으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는 걸 보면 파리는 분명 매력적이고 유혹적인 도시임에 틀림없다. 도통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분위기와 거리 자체가 예술인 도시 파리. 고만고만한 오래된 건물 사이로 올려다보는 하늘은 서울에 비해 훨씬 넓어 저절로 숨통이 트인다. 그래서 언제나 파리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그곳으로 내닫는다.

  그렇다고  파리 거리가 서울의 거리보다 더 깨끗하고 센 강이 한강보다 더 나아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면 어느새 나의 호주머니를 휘치고 지나가는 반갑지 않은 꼬맹이들, 도시 곳곳에 아무렇게나 널려진 담배꽁초와 쓰레기 그리고 개들이 남겨놓은 배설물 등 결코 살기 좋은 도시는 아니다. 지하도 조명은 음산하기까지 하고 각종 오물 맨새가 코를 자극하며 센 강의 탁한 녹색 물빛 등을 생각하면 파리의 로망은 저 멀리 사라진다. 더구나 대부분의 건물이 오래되어 낡았고 계단은 좁아 걷기가 불편하다.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두 사람만 타면 벌써 배가 벽에 닿을 정도로 협소한데다 요란한 기계음과 수동 개폐 등의 불편함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결점이나 오점까지도 기꺼이 파리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몽테뉴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오랜 역사 속에 있는 예술의 향기 때문이리라.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만든 때 묻은 도시가 전하는 자연스러움이 도시의 결정마저 쓸어내린 것이다.

  그렇다고 또 파리가 낡고 고리타분만 한 것만은 아니다. 개선문이 있는 에투알 광장(Pl. de l'Etoile)에서 곧게 뻗은 샹젤리제, 몽테뉴, 카퓌신 거리에는 샤넬, 루이비통, 카르티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명품숍들이 행인의 얼을 빼놓는다. 노상 카페에서는 영화에서 갓 튀어나온 멋쟁이 배우들처럼 파리지앵들이 연인과 담소를 나눈다.

  이렇듯 파리는 이중성의 도시인 것이다.

- 이중성의 도시, 파리 中 155-158


파리에 가보고 싶었던 사람도, 살고 싶었던 사람도 이 책을 보면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에 불을 붙일 것 같다.

물론 맨 먼저 파리하면 많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떠오르는데, 이름만 소개되고 대표적 몇 개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보다 이 책은 파리 도심을 몇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소개하고 있어, 면면의 지역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고 역사적 장소들을 두루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다.  노트르담 성당의 시테 섬에서 시작해, 파리의 많은 다리들을 걸어보고, 카페 기행을 하고 예술의 장소들을 돌아보는 등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  

마지막 장에서는 고흐와 관련된 오베르와 모네의 지르베니, 몽 생 미셸로까지 파리 근교를 둘러보며 파리 기행을 끝내는데, 상세한 지도와 함께 역사적 장소들을 함께 걷는 느낌이다.  

부록으로 있는 파리 시내지도와 파리 여행 정보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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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과 열 세 남자,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 -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 우리 바닷길 3000km 일주 탐나는 캠핑 3
허영만.송철웅 지음 / 가디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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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곡항과 삼척항의 육상 직선거리는 218킬로미터다. 자동차로 달리면 4시간 이내에 주파할 수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가도 한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 지척의 거리를 영해기점이 되는 외곽 섬들을 거쳐 바닷길로 에워 돌아가는데, 만 1년이 걸렸고 총 항해거리는 1.650해리(3,057킬로미터)였다.
- 에필로그 그래도 우리는 가출한다 中 300p

어느날 우연히 술자리에서 꺼낸 허선장의 이야기로 다양한 면면의 직업에, 요트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따로 있는 이들로 구성된 14명의 남자들의 가출기는 이름도 웃긴 ‘집단가출호’ 바다뱃길은 이렇게 황당하다. 
 

서해에서 출발 매달 한 번씩 출항하여 제주를 거쳐 독도를 거쳐 오는 코스를 매 코스별로 2~3일 정도의 일정으로 비박까지 하며 지내는데, 처음엔 따뜻할 때라 괜찮았지만 겨울에는 안스러워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시작된 이야기가 정말 책 표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비게 되는 이 이야기 이러면 되나? 싶으면서도 키득키득 웃을 수 밖에 없는 유쾌한 글 재밌다.

<식객>의 작가답게 먹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만화로 그려진 상황들도 재미나고,
사진도 어찌나 재미나고 멋진 것들이 많은지....볼거리가 많은 책이다.

텔테일, 제네이커, 쿼터런, 틸러, 스피네커, 태킹 등 낯선 요트 용어들이 많이도 등장하지만 읽는 즐거움을 반감시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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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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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이 책을 읽고, 또는 파올로 코엘료의 책을 읽은 뒤, 산티아고를 떠나는 책을 많이 보게 되었다는 책들을 먼저 만나고 뒤 늦게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정작 그도 셜리 맥클레인의 《기쁨의 야고보 길》을 읽고 길을 나선다.    

 

독일의 꽤나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인 이 글쓴이가 나빠진 건강에 갑자기 길을 나서 42일간의 여정으로 성 야고보의 순례 길에 오르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 하나. 

알베르게만 있는 줄 알았던 순례자 숙소가 레퓨지오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이곳 레퓨지오를 꺼려하는 것은 잠자리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기 때문일까? 요자즘 들어 그런 고민이 생긴다. 이런 것도 순례의 여정 가운데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자는 시간이야말로 힘든 하루로부터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순례자 숙박소에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고 한 결심을 바꾸지 않을 테다. 더군다나 이 찌는 더위에서는 더더욱 아니다!
.....
그다지 가난하지 않은 순례자들이 왜 종종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 그런 끔찍한 곳에서 묵으려고 할까?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찌는 더위에 먼지가 자욱한 아스팔트와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20킬로미터를 걷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좋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아주 훌륭한 순례자 숙박소가 있기는 하다. 일례로 나바레테에 있는 레퓨지오와 같은 곳으로, 거기서는 작은 허점도 기꺼이 눈감아줄 수 있다.

분명히 부유해 보이는 한 미국인 노부부도 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수용소에서 오늘 밤을 보낸다. 이곳에 비하면 노동자 수용소는 사치스럽다 할 수 있다.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이 이곳 레퓨지오에서는 뒷전으로 밀린다. 화장 하나, 샤워실 하나를 30명이 쓴다. 단지 나중에 다시 집에 돌아온 것에 대해 감격하고 싶어서일까?(108-109p)

라는 생각을 보면서 힘듦을 무릅쓰고 모두들 알베르게 내지는 레퓨지오에 자는 줄 알았는데,  그런 숙소들에 투덜거리며 깨끗한 호텔에 계속 묵는 것도 여느 순례기와는 다르다.  

물론, 800km를 올올이 걷지 않고  

평상시에는 한 층 올라가는 것조차 결코 계단을 이용하지 않는 나(10p)인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가 길을 심지어 피레네 산맥은 슬리퍼를 신은 채 이동하기도 하고 초반에 때로는 차를 얻어 타고, 기차로 움직이기도 한다. 
 

나는 멈춰 서서 뭔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자, 이제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여기서 내가 하고 있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투덜거리면서 때려치우거나, 아니면 작은 기적을 바라면서, 그러나 너무 큰 희망은 품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것.”(166-167p)하면서 투털 거릴 때마다

카미노가 힘들어 순례 여행을 중도하차하기로 결심할 때마다  

나타나는

점원의 셔츠에 적힌 "Keep on Running(계속 걸어라)“(118p)
라디오에서 케이트 부시의 옛 노래 "Don't give up'cause you're half way(포기하지 마, 너는 벌써 길의 반에 와 있으니)!“(184p)
라디오에서는 스티비 원더가 “Don't go too soon(너무 서둘러 가지마)!"(252p)  

 

신호들에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다른 순례자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대부분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보이고, 다들 확신에 차 보여서 그들이 도대체 왜 순례를 하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그들이 산티아고까지 성공할 경우, 그들은 시작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여행을 마감할 것이다.(44p)

이렇게 투덜대던 그도 어느날 외로움을 느끼고 많은 이들을 만나 길동무가 된다. 

그러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배운다.  

  

나에겐 길이 마치 학교 같다. 놀면서 여러 가지를 재미있게 배운다. 운이 좋으면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다. 내가 이해를 못했거나 또는 선생님이 나빠서 어려운 것들이나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은 기억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에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었고, 믿음이란 과목에 대해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티나의 과목은 유머다. 그녀를 생각하면 웃게 된다. 앤이 가르치는 흥미진진한 과목은 의식이다. 아메리코는 내가 나의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인생에서 낙제점을 받을 위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안달루시아에서 온 십자가를 멘 안토니오는 현실성을 보여주었다. 모자가게 할아버지는 친절 담당이다.

게르트 아저씨의 슬프고 지루한 특기 분야는 체념이다. 주둥이 아줌마와 황소 아저씨와 함께 다니는 오스트리아 여인 우테는 변치 않는 일관성에서 전문가다. 푸조에 타고 있던 세 명의 프랑스인들은 조심성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파란 팬티의 독일 여자는 냉정함에 대해 가르침을 주었다. 라리사는 한 시간 동안 헌신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빅토르는 결과에 대하여, 스테파노는 자만, 라라는 버리는 것에 대해 교훈을 주었다. 쉴라가 준 교훈은 자명하게 용기다. 요세는 변화의 일인자고, 여관집 주인 빅토리오는 담담함, 브라질에서 온 클라우디아는 자부심이 전문 분야이고, 핀란드의 세피는 자만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나의 그늘인 주둥이 아줌마는 한마디로 끔찍하다!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지리 이외에 그녀가 무엇을 가르쳐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히 나의 모든 부진한 과목들을 가르쳐주었고 아주 엄격한 교장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동물들은 나에게 보살핌에 대해 가르쳐주었고, 14킬로미터의 행군은 사랑에 대한 속성 코스였다.

순례를 하는 동안 과연 고통이란 무엇일까 끊임없이 물었었다. 결국 고통이란 ‘이해하지 못함’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믿음을 가져야 한다. 고통이란 결국 우리의 자세에 달려 있다.

- 2001년 7월 4일 아스토르가 Astorga 中 257-258p 

 

인생의 길을 걸을 때 한 걸음 걸음마다 선생을 만난다고 하는데
이 성 야고보의 길은 매일매일 선생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길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 길은 단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길은 하나가 아니라 수천의 길이 존재한다. 그러나 길은 각자에게 한 가지 질문만을 던진다.

“당신은 누구인가?”
2001년 7월 20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中 360-361p

 그도 가톨릭교인이 아니면서 조금 무모하다 싶을 만큼 책을 읽고 불현듯, 순례길을 나서 왜 까미노인가?에 대한 답이 이것이 아닌가 싶다. 

카우치 포테이토까지는 아니지만 걷기를 힘들어하는 내게 힘이 되어 준 책이라고나 할까?^^
 

사족하나. 

한참을 읽다 알게 된 사실인데, 사진을 찍지 않기로 한 한스 때문에 책이 재미없어 보인다는 생각이었는지 다른 책에선 요새 찾아보기도 힘든 큰 page가 눈에 좀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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