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 마음의 길을 잃었다면 아프리카로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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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견디기 힘들었다.

견디기 힘들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당신에게는 언제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사람이 찾아오고, 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에 짓눌리고, 당신은 허둥댄다. 허둥대며 정상적인 호흡법을 잃는다. 
 

허둥대는 동안, 당신은 그저 들이킬 뿐이다. 세상을 다 빨아들일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 한구석 숨어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처럼, 숨을 들이키고 또 들이킬 뿐이다.

당신이 더 들이킬수록, 당신은 더 무거워진다. 침잠하고 침잠한다. 당신이 서서히 침잠하는 그곳, 그곳에 아무 것도 없다. 오직 암흑뿐이다. 당신은 절망한다. 끝이라 생각한다. 점차 들숨조차 불가능해진다. 당신은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바닥에 닿는다. 바닥에 닿고 나서야, 닿는 순간의 반동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가느다란 숨이 당신의 기도를 뚫고 나오기 시작한다. 그제야, 어렵사리 당신은 오래전 호흡법을 기억해내기 시작한다.

들숨과 날숨

당신은 살고 싶어진다. 당신을 살리고 싶어진다. 그것은 지나가는 사람이었을 뿐. 그것은 지나가는 사건이었을 뿐. 조금은 비열하고 조금은 이기적이며 그렇기에 적나라하게 생존에 충실해질 수 있는 그 순간, 당신은 자맥질하기 시작한다. 위로, 위로, 수면을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최초로 두 눈이 수면 밖 세상을 향할 때, 당신은 안도한다. 세상이 거기 그대로 있다. 아연하게, 깨닫는다. 당신이 해저에서 짓눌려 있을 때나, 수면 위로 떠올라 있을 때나, 세상은 그저 <거기>에 있었다. 당신에게는 언제라도 세상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생존에 충실한 자는 나아가기 마련이다. 세상을 향해, 주어진 아직 남은 시간을 향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낯섦을 이기고, 자석처럼 등짝에 들러붙은 무기력을 이긴다. 새 출발을 위한 팡파르는 없다. 대단한 응원도 없다. 당신은 현기증을 느낀다. 혼곤한 피로를 느낀다. 그러나 차분하다. 바닥에 발이 닿았을 때의 차가운 느낌을 기억할 뿐이다. 그 차가움이 머리까지 차갑게 식혀주었음을 느낄 뿐이다.

이제 당신은 매우 먼 곳까지 시계가 훤하다. 두 팔을 뻗어 헤엄을 시작한다. 한 번의 내뻗음이 두 번의 내뻗음으로 이어지고, 두 번의 내뻗음이 세 번의 내뻗음으로 이어진다. 네 번째 내뻗음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당신은 아직 알지 못한다. 아직 알고 싶지 않다. 들숨과 날숨이 좋을 뿐이다. 움직임이 좋을 뿐이다. 다시 더워지는 심장이 좋을 뿐이다.

당신이 아는 것은 다만 이것, 어떻게든 또...살아진다.

더워진 심장은 이제 가까운 뭍에서 쉬고 싶어하지 않는다. 살아 있음을 더 오래, 더 진하게 확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가장 먼 뭍으로 향한다. 가장 멀고, 가장 뜨거운 뭍에 절망으로 식었던 발을 데고 싶다. 아주 잠깐 뒤돌아 볼까 하지만, 그뿐이다. 당신은 그대로 앞으로 간다.

한 쳅터가 끝이 난다.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다. 늘 멀어진 끝은 차고, 다가가는 시작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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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아프리카로 갔다.
- 프롤로그 솟아오르기 中 004-005p  

 
이 책은 그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바쁜 일상에 언뜻 봐도 두꺼운 분량이라 편하게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다 이번 기회에 잡고 앉아 읽기 시작했는데,
이 프롤로그에서 먼저 먹먹해진다.

어떻게든 또...살아진다.

 

그래
그래서
아프리카로 가는 구나...! 
 

그러면서도 용맹함의 상직이었던 부족인 마사이족이 이제는 더이상 용맹과는 거리가 멀고, 사파리를 온 사람들 덕분에 동물들이 먹여살리는 이야기에는 씁씁했고, 한편으로는 아슬아슬 부분이 꽤나 많았다. 특히, 고아원을 운영한다는 던과 댄을 만나고
동아프리카로 갈 때부터 들고 다녔던 풍선과 학용품, 모기장과 헌 옷가지를 가지고 우간다의 서남쪽 부뇨니의 고아원 방문을 할 때는....
결국 '이럴 수가' 싶을 정도로 호의의 마음이 바뀌어 버리게 만드는 일 등 말이다.

엔테베로 돌아갔다. 부뇨니에서 국경을 넘어 르완다로 가서 제노사이드 추모관을 방문하고 고릴라 트레킹을 하려던 애초의 계획은 접었다. 금전과 시간이 두루 문제가 되었으나, 무엇보다도, 닭 사건 이후 친구를 만들 수 없다는 그곳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궁금하다는 것은 일상을 넘어서는 에너지로 새로움을 끌어안을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닭 사건을 마지막으로 배터리는 또 방전되었다. 휴식과 정리가 필요한 순서였다.

모든 여행마다 배터리가 방전되고 충전되는 주기가 있다. 방전될 때 여행자는 길 잃은 미아가 되고 충전될 때 이름 없는 철학자가 된다. 동아프리카의 주기는 유난히 짧았다. 감격의 눈물이 흐르는 신의 정원과 피로한 창녀들의 춤, 고원의 푸른 내음과 용광로처럼 들끓는 먼지, 시계가 멈춰버린 여유와 단돈 2500원에 목숨을 내던지는 제리캔맨, 아이의 토사물을 견디는 형제애와 눈도 깜짝하지 않는 거짓말, 마음을 씻어 주는 호수와 호숫물에 담근 피 흘리는 발...... 아프리카는 특유의 생명력으로 몇 번이나 배터리가 과열될 만큼 에너지를 채워주었다가도 또 특유의 만만치 않음으로 배터리를 방전시켰다. 매력이 넘치지만 다루기 힘든 애인처럼, 가장 아름다움과 가장 고달픔을 숨차게 번갈아 보여주었던 것이다. 찬란한 자연 속에 놓인 극빈이란, 여행자를 꼭 끌어안았다가 서슴없이 내치는 일이었다.

배터리는 초고속으로 충전되었다가 초고속으로 방전되었다. 아프리카가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전력난을 겪는 곳이란 걸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아프리카, 그 잦은 방전과 충전 中521-522p

잦은 방전과 충전을 거듭하며 아프리카를 다녀간다. 또 그녀와 동아프리카 여행기을 다녀오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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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다녀온 사람은 파리를 그리워하기 마련입니다. 뉴욕에 다녀온 사람은 뉴욕을 그리워하기 마련이지요. 그곳에 두고 온 과거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아프리카에 다녀온 사람은 자꾸만 ‘지구’를 생각합니다. 지구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그곳에 용케 남겨진, 두리가 버렸으되 한때 소중했던 것들을 생각하고, 그곳에 슬프게 남겨진, 우리가 조금 더 기름지기 위해 앗아온 것들의 상흔을 생각합니다. 그것들이 치유되고 회복된 미래를 기원하게 됩니다. 
 

당신은 그렇게 아프리카라는 진한 매캐로 지구와 연결됩니다. 네 번째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지요. 이제 행도운 바로 옆방의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두드리지 않아도 지구는 크게 변하기 않겠으나, 두드린다면 분명 더 이로운 곳이 되겠지요.


시작은 아무래도 좋겠습니다.

저처럼 한낱 일상에 지쳐 떠난 자도, 사파리의 낭만을 꿈꾸며 떠난 자도, 일단 그곳에 도착하면 말씀드렸다시피 모두 평범해지니까요. 우리 내면의 뜨겁고 차가운 꿈틀거림들이 극진히 실험받고 여과되어 지구를 생각하는 당신으로 탈바꿈되니까요.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지금 마음의 길을 잃어 먼 곳으로 떠나려 한다면, 아프리카를 권하겠습니다. 
 

꼭 저처럼 못난 당신, 지구를 업고 돌아오겠어요.
에필로그 중 549p
 
 
이렇게 지구를 업고 돌아올 수도 있어진다. 언젠가 내가 아프리카에 관한 책을 읽고 그랚던 것처럼 다시금....

폴레폴레(천천히 천천히) 읽어야하는, 폴레폴레 읽어지는 책.   

 

1
여행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 새로운 곳에 가서도 거울을 보듯 ‘나’만을 보는 것.
2단계, 나를 떠나 ‘그곳’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3단계, 그곳에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 것.
4단계, 내 것을 나누어 그곳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
에필로그 중 546 p

나는 어떤 여행의 단계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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