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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Buen camino
이 책을 읽고, 또는 파올로 코엘료의 책을 읽은 뒤, 산티아고를 떠나는 책을 많이 보게 되었다는 책들을 먼저 만나고 뒤 늦게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정작 그도 셜리 맥클레인의 《기쁨의 야고보 길》을 읽고 길을 나선다.
독일의 꽤나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인 이 글쓴이가 나빠진 건강에 갑자기 길을 나서 42일간의 여정으로 성 야고보의 순례 길에 오르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 하나.
알베르게만 있는 줄 알았던 순례자 숙소가 레퓨지오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이곳 레퓨지오를 꺼려하는 것은 잠자리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기 때문일까? 요자즘 들어 그런 고민이 생긴다. 이런 것도 순례의 여정 가운데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자는 시간이야말로 힘든 하루로부터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순례자 숙박소에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고 한 결심을 바꾸지 않을 테다. 더군다나 이 찌는 더위에서는 더더욱 아니다!
.....
그다지 가난하지 않은 순례자들이 왜 종종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 그런 끔찍한 곳에서 묵으려고 할까?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찌는 더위에 먼지가 자욱한 아스팔트와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20킬로미터를 걷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좋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아주 훌륭한 순례자 숙박소가 있기는 하다. 일례로 나바레테에 있는 레퓨지오와 같은 곳으로, 거기서는 작은 허점도 기꺼이 눈감아줄 수 있다.
분명히 부유해 보이는 한 미국인 노부부도 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수용소에서 오늘 밤을 보낸다. 이곳에 비하면 노동자 수용소는 사치스럽다 할 수 있다.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이 이곳 레퓨지오에서는 뒷전으로 밀린다. 화장 하나, 샤워실 하나를 30명이 쓴다. 단지 나중에 다시 집에 돌아온 것에 대해 감격하고 싶어서일까?(108-109p)
라는 생각을 보면서 힘듦을 무릅쓰고 모두들 알베르게 내지는 레퓨지오에 자는 줄 알았는데, 그런 숙소들에 투덜거리며 깨끗한 호텔에 계속 묵는 것도 여느 순례기와는 다르다.
물론, 800km를 올올이 걷지 않고
평상시에는 한 층 올라가는 것조차 결코 계단을 이용하지 않는 나(10p)인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가 길을 심지어 피레네 산맥은 슬리퍼를 신은 채 이동하기도 하고 초반에 때로는 차를 얻어 타고, 기차로 움직이기도 한다.
나는 멈춰 서서 뭔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자, 이제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여기서 내가 하고 있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투덜거리면서 때려치우거나, 아니면 작은 기적을 바라면서, 그러나 너무 큰 희망은 품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것.”(166-167p)하면서 투털 거릴 때마다
카미노가 힘들어 순례 여행을 중도하차하기로 결심할 때마다
나타나는
점원의 셔츠에 적힌 "Keep on Running(계속 걸어라)“(118p)
라디오에서 케이트 부시의 옛 노래 "Don't give up'cause you're half way(포기하지 마, 너는 벌써 길의 반에 와 있으니)!“(184p)
라디오에서는 스티비 원더가 “Don't go too soon(너무 서둘러 가지마)!"(252p)
신호들에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다른 순례자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대부분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보이고, 다들 확신에 차 보여서 그들이 도대체 왜 순례를 하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그들이 산티아고까지 성공할 경우, 그들은 시작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여행을 마감할 것이다.(44p)
이렇게 투덜대던 그도 어느날 외로움을 느끼고 많은 이들을 만나 길동무가 된다.
그러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배운다.
나에겐 길이 마치 학교 같다. 놀면서 여러 가지를 재미있게 배운다. 운이 좋으면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다. 내가 이해를 못했거나 또는 선생님이 나빠서 어려운 것들이나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은 기억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에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었고, 믿음이란 과목에 대해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티나의 과목은 유머다. 그녀를 생각하면 웃게 된다. 앤이 가르치는 흥미진진한 과목은 의식이다. 아메리코는 내가 나의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인생에서 낙제점을 받을 위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안달루시아에서 온 십자가를 멘 안토니오는 현실성을 보여주었다. 모자가게 할아버지는 친절 담당이다.
게르트 아저씨의 슬프고 지루한 특기 분야는 체념이다. 주둥이 아줌마와 황소 아저씨와 함께 다니는 오스트리아 여인 우테는 변치 않는 일관성에서 전문가다. 푸조에 타고 있던 세 명의 프랑스인들은 조심성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파란 팬티의 독일 여자는 냉정함에 대해 가르침을 주었다. 라리사는 한 시간 동안 헌신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빅토르는 결과에 대하여, 스테파노는 자만, 라라는 버리는 것에 대해 교훈을 주었다. 쉴라가 준 교훈은 자명하게 용기다. 요세는 변화의 일인자고, 여관집 주인 빅토리오는 담담함, 브라질에서 온 클라우디아는 자부심이 전문 분야이고, 핀란드의 세피는 자만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나의 그늘인 주둥이 아줌마는 한마디로 끔찍하다!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지리 이외에 그녀가 무엇을 가르쳐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히 나의 모든 부진한 과목들을 가르쳐주었고 아주 엄격한 교장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동물들은 나에게 보살핌에 대해 가르쳐주었고, 14킬로미터의 행군은 사랑에 대한 속성 코스였다.
순례를 하는 동안 과연 고통이란 무엇일까 끊임없이 물었었다. 결국 고통이란 ‘이해하지 못함’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믿음을 가져야 한다. 고통이란 결국 우리의 자세에 달려 있다.
- 2001년 7월 4일 아스토르가 Astorga 中 257-258p
인생의 길을 걸을 때 한 걸음 걸음마다 선생을 만난다고 하는데
이 성 야고보의 길은 매일매일 선생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길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 길은 단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길은 하나가 아니라 수천의 길이 존재한다. 그러나 길은 각자에게 한 가지 질문만을 던진다.
“당신은 누구인가?”
- 2001년 7월 20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中 360-361p
그도 가톨릭교인이 아니면서 조금 무모하다 싶을 만큼 책을 읽고 불현듯, 순례길을 나서 왜 까미노인가?에 대한 답이 이것이 아닌가 싶다.
카우치 포테이토까지는 아니지만 걷기를 힘들어하는 내게 힘이 되어 준 책이라고나 할까?^^
사족하나.
한참을 읽다 알게 된 사실인데, 사진을 찍지 않기로 한 한스 때문에 책이 재미없어 보인다는 생각이었는지 다른 책에선 요새 찾아보기도 힘든 큰 page가 눈에 좀 거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