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4
이솝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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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히 대단한 이야기는 없었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 중 아이소포스가 지은 것이 확실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나, 그렇다고 그 모든 이야기들이 아이소포스의 작품이 아니라고 할 근거도 없는지라 어찌 보면 참 애매한 우화집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우화들을 누가 지었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그 시대에 그리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였던 우화들을 지금에 와서 접해보고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일일테니...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말티스'가 2500년 전에도 있었던 지중해 몰타 섬 원산의 개였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 설화로 알려진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는 완전히 그리스 것을 베껴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2500년 전에 이미 아이소포스는 쇠도끼를 물에 빠뜨린 그리스인 나무꾼을 동정하여 도끼를 찾아다주는 헤르메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는 근대에 들어 우리나라로 이 우화가 넘어오면서 누군가 마치 우리 전래동화인 것처럼 번역하여 교육한 것이 나중에 가서 진짜처럼 오도되어 버린 것 같다.

 각 우화마다 해설이 있는 경우가 있고 없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해설이 오히려 독자의 해석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역자는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원판을 그대로 옮겨놓기 위하여 전부 번역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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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 석가모니 - 그 생애와 가르침
와타나베 쇼코 지음, 법정(法頂) 옮김 / 동쪽나라(=한민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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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는 특정한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석가여래 부처님은 자신을 숭배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신자는 단지 부처님의 가르침 - 수행에 관한 최고수(부처님)의 수행방법 노하우 - 에 따라 자기가 잘하면 아라한이 되는 것이고 안 하면 윤회나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입적 직전에도 누구에게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수행자 스스로에게 의지하라고 설법하셨다. 

「"아난다야, 교단이 내게 아직도 무엇을 기대한단 말이냐. 나는 지금까지 안팎을 가리지 않고 진리를 설해 왔다. 법을 가르치는 데 힘을 아껴 본 일이 없다. 만일 내가 교단을 통솔한다든지 교단이 내게 의지한다고 생각했다면, 교단에 대해 지시를 내렸을 것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아난다야,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또 의지할 곳으로 삼으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법(진리)을 등불 삼고 법을 의지할 곳으로 삼으라.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내가 봤을 때 이러한 부처님의 그릇과 자신을 믿지 않는 이교도는 모조리 섬멸해 버리겠다고 수시로 공갈 협박을 일삼는 야훼의 그릇은 - 비교 자체가 모욕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여기서 타종교를 비방할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어렸을 적 불교를 접하면서 느끼게 되었던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다(물론 나 역시 불교의 독실한, 그리고 정통한 신자는 아니다. 하다 못해 의지할 곳을 찾아 부처님과 천지신명 아무에게나 마음 속으로 비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무튼 이렇듯 불교 신자 경력 15년 이상인 내가 부처님의 전기를 찾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은 와타나베 쇼코라는 일본인이 1965년도에 완성한 책을 최근에 법정 스님이 번역하여 내놓은 책이다. 현대에 나온 부처님 전기만 해도 그 수가 상당한데 그 중 엄선한 책이라고 법정 스님이 밝히고 있다. 부처님에 대하여 공부를 많이 했을 사람이 엄선하였으니 믿을만 하겠다 싶어 선뜻 책을 사게 되었다.
 책을 읽어보니 썩 새로운 이야기는 찾기 힘들었다. 나 스스로가 불교를 믿고 불교 고등학교를 나와서 불교를 따로 수업 받기도 하였으니 부처님의 생애에 대하여 시나브로 여러 부분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책 중간중간에서 발견한 특기할 만한 사실이나 훌륭한 가르침의 내용 같은 것을 옮겨 놓을까 한다.

 일단은 "원한은 원한에 의해 풀리지 않는다. 원한은 그것을 버림으로써만 풀어진다."는 말씀이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부처님이 성불하기 전, 보살이었던 시절부터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사실이 있다. 다음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득도를 위한 마지막 섭정에 들어갔을 때 마왕이 건 싸움에 대한 기술 이후에 나오는 말이다. 

「보살과 마라의 싸움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마라 혼자 설치는 데 불과하다. 보살은 상대편에게 조금도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항상 자비의 눈으로 바라본다. 보살이 승리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참, 그리고 계족산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계족산은 한마디로 닭발 모양의 산을 뜻하는데, 내가 대전 살 때 우리집 뒷산이 계족산이었다. 대전의 5대산인지 6대산인지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 계족산은 원래 불교에서 나온 명칭이었나보다. 다음은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처님이 입적한 뒤 마하가섭은 율과 경의 결집을 끝내고 뒷일을 아난다에게 부탁한 다음, 드디어 입적할 때가 되자 라자그리하 교외에 있는 계족산鷄足山으로 간다. 산이 둘로 갈라진 사이로 들어가니 산은 다시 전처럼 합쳐진다. 마하가섭은 이렇게 해서 미륵불이 출현할 날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부처님의 사람을 끄는 매력은 정말 엄청났었나 보다. 부처님이 성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왕인 슛도다나왕은 아들을 보고 싶어서 귀향을 종용하려고 사자들을 보냈는데, 보내는 사자마다 부처님을 만나면 출가를 해버려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마치 함흥차사 고사와 비슷하다. 물론 경우와 그 성격은 정반대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부처님이 출가를 하고 성불하면서 가족과의 연을 끊은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이는 다음 이야기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말을 전해 들은 부처님은 급히 카필라로 갔다...
 ...늙은 왕은 손을 내밀어 부처님의 손을 잡고, 그 손을 가슴에 대고 반듯이 누운 채로 합장해 만족하다는 뜻을 보이더니, 이윽고 숨을 거두었다.
 ...부처님과 난다는 머리맡에 서고, 아난다와 라훌라는 발 아래 서 있었다. 난다 등은 관을 메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청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뒷세상에 인심이 어지러워져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는 불효자식이 나올 것을 염려하여 모범을 보이려고 몸소 관을 멨다.」 

 부처님이 부왕의 임종을 지켰고, 그 상여를 직접 멨다는 건 지금껏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밖에도 미래불인 미륵이 실존했던 부처님의 제자였다는 점, 어떤 비구가 고뇌 때문에 자신의 남근을 잘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이 "잘라 버릴 것이 따로 있었는데, 그는 잘라 버릴 것을 잘못 골랐구나."라고 말씀했다는 사실, 부처님에게 침묵으로 승낙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사실 등 여러 흥미로운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거기다 다음과 같은 사실은 나에게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부처님은 이것을 계율로 정해 모든 출가 수행자에게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생선이나 고기만 하더라도, 특히 스스로를 위해 잡은 것이 아닌 이상은 대접을 받으면 먹어도 좋다고 했다.」 

 부처님도 육식을 하셨던 것이다!!! 

 모든 번뇌를 끊어버린 부처님도 입적이 가까워지자 제자들의 뒷일을 걱정하였다. 

「부처님은 비구들을 둘레에 모이게 한 다음 말씀했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부처건 법이건 교단이건 도건 수행방법이건, 의문이 있는 사람은 서슴지 말고 물어라. 뒷날에 가서, 여래가 세상에 있을 때 물어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물어라."
 부처님은 몇 번이고 말씀했지만 누구 하나 질문하는 이가 없어 거기 있는 5백 명의 비구들은 적어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까지 이르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럼 비구들이여, 너희들에게 할 말은 이렇다. 모든 현상은 변천한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실로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말씀이었다고 경전은 기록하고 있다.」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저자가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던 점이 흠이었다. 마치 독자에게 계속 복습을 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부처님의 신비화에 관한 이야기나 약점처럼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수와 비교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이는 예수도 이랬으니 부처님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느냐는 식으로 - 정당성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졌다. 나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본다. 오히려 예수는 단명하였으므로 더욱 영웅시되고 신비화 될 여지가 많은 사람이었고, 부처님은 예수가 죽은 연배 즈음에 해탈하여 우리나라 나이로 여든한 살이나 살았는데도 이렇다 할 허물조차 잡히지 않았으니 그 관리가 얼마나 철저하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저자는 부처님이 서양 계통의 아리아 인종이 아닌 티베트인과 비슷한 몽고족 계통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부처님 이전부터 불교는 존재하였으며, 그 불교에서 거명되던 부처님이 실제로 등장하게 되어 이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상당히 타당한 이론인 것 같다.

 나는 일개 중생인데, 적어도 이생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힘들 것 같다. 솔직히 끊어버리기에는 욕망과 미련이 너무 강하다. 내가 그것들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존경하고 고승들을 존경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출가 문제도 가끔 생각해 보고는 있지만, 그때마다 욕심과 미련이 이를 가로막는다. 둘은 서로 모순되는 관계인데, 나에게는 후자의 힘이 너무 강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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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심일체 2007-12-2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

tribc 2008-02-0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솜씨가 좋으시네용~ 리뷰 잘보고 갑니다~ 성불하세요 _()_
 
돈 끼호떼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6
미겔 데 세르반떼스 지음, 김현창 옮김 / 범우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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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니까 돈 끼호떼는 미친 놈이었다. 이 소설이 씌어질 당시 에스파냐에서는 '기사도 이야기'라고 하여 전설적인 기사들의 기상천외한 모험담들을 온갖 이빨을 보태어 묘사한 소설책들이 유행을 했었던 모양인데, 돈 끼호떼는 이러한 소설들을 지나치게 탐독한 나머지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내가 봤을 때 이러한 '기사도 이야기'들은 현대로 들어와 무협지 내지는 판타지 소설로 변형 및 발전(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것 같다. 세르반떼스는 극중 여러 인물의 입을 빌어 이러한 기사도 이야기에 대하여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그의 기사도 이야기 및 당시 에스파냐 문단 일반의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은 본문의 47장 및 48장에서 신부와 교회 참사원의 대사로써 적나라하게 전개되고 있다.

 돈 끼호떼와 산초 빤사의 대화라든지 초기에 돈 끼호떼가 겪는 모험들은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정말 웃긴 장면들도 많았다. 하지만 소설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돈 끼호떼는 뒤로 물러나고 온갖 잡다한 사람들이 나타나 - 특히 여인숙에서 - 헛된 사랑 이야기를 계속하여 늘어놓을 때는 다소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작품의 분위기가 연애소설 쪽으로 흘러가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러한 연애 이야기가 한 커플의 이야기도 아니고 비슷비슷한 내용이 서너 커플이나 이어지니까 자연 지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소설의 질을 떨어뜨리고 나에게서도 점수를 잃는 요인이 되었다.

 연애 이야기 중에 특기할만한 것으로 - 세르반떼스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캐릭터가 하나 등장하였는데, 바로 래판토 해전에 참전하였다가 포로로 붙들려 여기저기 끌려 다니다가 탈출한 노예가 바로 그것이었다. 세르반떼스 역시 래판토 해전에 참전하였다가 붙잡혀서 5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노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데, 이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와 전역을 막 하였을 때 가장 절실히 느꼈던 사실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다.

 

「"그것 참 고마운 일이군요." 하고 포로가 말했다. "그런 은총을 하느님에게서 받다니, 뭐니뭐니해도 이 지상에서는, 나는 생각합니다만 잃었던 자유를 되찾는 기쁨에 비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연애 이야기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거기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천하의 절색에다 행실도 올바랐으며, 남자들은 엄청난 부자이거나 귀족이었다. 그러니까, 현실성도 없고 공감도 쉽게 가지 않는, 그들만의 이야기였다는 말이다.

 책은 돈 끼호떼가 두 번째 모험에서 친구인 신부와 이발사의 계책에 의하여 소달구지에 죄인처럼 실려서 귀가하는 장면까지를 보여주고 있고, 그의 세 번째 모험의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며 속-돈 끼호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키며 끝나고 있다. 속-돈 끼호떼는 실제로 있는 작품이고, 읽어볼까 싶기도 하지만 만약 읽는다 해도 그것은 꽤 나중의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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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삶과 죽음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
이브 코아 지음 / 시공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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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크고 강한 생물을 동경한다. 고래는 크고 강한 생물의 극단에 있는 녀석이다. 따라서 나는 고래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학교 서점 앞에서 40프로 세일인가 하길래 바로 사뒀던 책이다. 이 책은 고래의 프로필에 대해서 그리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포경의 역사를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그러다 보니 돌고래 류는 거의 언급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래는 흰긴수염고래와 향유고래인데, 그들이 바로 - 안타깝긴 하지만 - 지구상에서 가장 포경을 많이 당한 고래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포경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할 당시 - 수백만 마리의 개체가 존재하였을 때 - 에는 향유고래의 덩치가 상당히 컸다고 한다. 1841년에는 태평양에서 27.5 미터 짜리 향유고래가 잡힌 기록도 있단다. 그러나 고래사냥이 본격화되고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고래 스스로가 생식 가능 연령을 앞당기게 되었고, 따라서 덩치도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도 참 왜 그렇게 고래를 많이 죽여서 애들 체질까지 바꾸게 하는지... 환경파괴는 안 좋은 것이다.
 아무튼 책 중간에는 내가 고등학교 때 2년인가 3년간에 걸쳐서 독파하였던 <백경>의 주인공 '모비 딕'의 실제 모델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모샤 딕이라는 이름은 1810년경, 칠레 근해의 모샤라는 섬에서 이 고래와 인간이 처절한 싸움을 전개했던 데서 유래했다.
 1840년 7월, 영국 포경선의 승무원은 혼자서 헤엄치고 있는 거대한 향고래를 발견했다. 수면에 나타난 그 고래의 길이는 22m나 되었다.
 모샤 딕이었던 것이다. 두 척의 포경정이 바다에 띄워지고, 곧이어 향고래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래가 정면으로 공격하여 포경정 한 척을 물어서 박살냈다. 고래가 잠수를 하자마자 다른 포경정의 선원이 서둘러 생존자를 건져 내려고 했다. 그 순간, 바닷속에서 모샤 딕이 솟구쳐 올라와 포경정을 덮쳤다. 포경정에서 선원들이 튕겨 나갔다. 이때 살아 남은 선원은 그 괴물고래의 이마에 백색 칼 자국이 나 있었다고 증언했다.
 한 달 후, 두 척의 포경정이 외따로 있던 고래 한 마리를 잡았다. 잡은 고래를 본선 쪽으로 끌고 가는데 갑자기 모샤 딕이 나타났다. 모샤 딕이 포경정 한 척을 부수는 동안, 다른 포경정은 간신히 그들이 잡은 고래 뒤에 숨었다. 본선이 다가와서 선원을 구조하고 떠날 때까지, 모샤 딕은 마치 죽은 고래를 보호하려는 듯이 그 곁에 머물러 있었다.
 모샤 딕에 관한 이처럼 놀라운 사실들은 그가 죽을 때까지 일어났다. 이 고래는 1859년 스웨덴 포경정에 의해 마침내 피살되었다. 모샤 딕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 19개나 되는 작살이 꽂혀 있었다. 이 고래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버렸다. 살아 있는 동안의 모샤 딕은 바다를 누비던 모든 포경선원을 공포에 떨게 했다...」 

 가끔 한 무리의 고래떼가 바닷가로 밀려와 죽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책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고래의 귀에 생긴 기생충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고래 무리의 대장이 귀에 기생충이 생겨 버리면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되고 이를 무작정 따라가던 다른 고래들까지도 바닷가로 돌진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고래의 물뿜기는 진짜로 물을 뿜는 게 아니라 숨을 내쉬는 것일 뿐인데 거기 포함된 수증기가 물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 모든 동식물들은 - 가축, 농작물 빼고 - 인류에 의해 멸종 위기까지 다 가 본 것 같다. 고래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고래를 보호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하는데 모든 포경업자들은 이러한 대세에 따르는 것이 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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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 장준하전집 1
장준하 지음 / 세계사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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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한국의 위정자들은 태반이 (궁극적으로)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고, 도대체가 뒤끝이 깨끗한 인간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 적어도 내가 보기에 - 깨끗한 인물, 오로지 공익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인물을 지금까지 두 사람 발견하였는데, 그 중 한 명이 여운형이고 나머지 한 명이 장준하이다.

 

 이 책은 장준하가 스물일곱 살 때 왜적의 학도병으로 끌려 갔다가 탈영하여 광복군을 찾아가고, 이후 해방공간에서 김구를 위시한 임시정부를 수행하기까지 약 2 년간의 체험을 기록한 수기이다.

 그가 학도병에 끌려간 것은 결혼한 지 불과 열흘만의 일이다. 중국으로 파병되어 서주에서 훈련을 받다 탈영을 한 그는, 이 탈영이 학도병으로 끌려 나갈 때부터 계획된 것이었으며, 굳이 중국으로 파병된 것도 자신의 의지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중국으로 가서 탈영을 한 후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나 광복군을 찾아가 독립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게 사실이라면 참 대단한 사람이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가 학도병 시절 목격한 다음 이야기를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된다.

 

「더욱 내가 괴로워했던 일은 한국사람들의 그 기막힌 행동들이었다...

 ...고참병들인 일본놈들이 외출갔다 돌아오면 매식으로 배부르니 별로 병영음식이 먹고 싶지 않아 계란을 깨어서 비벼 몇 젓가락 먹다 말고 선심 쓰듯 던져주는 밥 한 그릇을 더 받아먹고자 혈안이 된 우리 동료들, ...매식을 하고 들어온 그들이 자기 몫을 개, 돼지에게 던져주듯이 던져주는 그 밥 한 그릇을 우르르 몰려들어 받아먹는 그 치사하고 밸없는 꼴들.」

 

 내가 듣기로 당시에 저런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지금도 우리나라엔 잠재적인 저런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나부터 좀 반성을 해야겠다.

 아무튼 장준하는 동지 몇 명과 함께 왜군부대에서 탈영을 하게 되었고,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6천 리 길을 걸어 중경 임시정부에 도착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온갖 에피소드들이 펼쳐지는데, 나는 여기서 당시에 왜군을 상대로 매춘부 일을 하면서 정보활동을 했던 여성 공작원들도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지금 우리는 참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시 중국군의 실태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이는 그들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우선은 쪽발이들과 전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내전이 횡행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때 중국군에는 <호른부땅빙(好人不當兵)>이란 말이 유행되고 있었다. 이 말은 <좋은 사람은 병정에 가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병신이나 바보만이 병정이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돈 있고 빽이 있으면 군대를 가지 않았다고 한다.

 장준하는 임시정부에 도착하기 전까지 여기저기서 독립운동 단체들을 접하게 되는데, 그 단체들의 실상을 알고 난 후에는 매번 실망을 하게 된다. 어느 단체든지 제대로 독립운동을 하는 꼴을 볼 수가 없고 그저 허송세월만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이 싫어 궁극적으로 찾아간 임시정부에서도 그러한 습성은 똑같았다고 한다. 하는 일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젊은이들이 한 무더기나 오니까 서로 자기 당파에 끌어들이려고 작업을 하더라는 것이다. 장준하는 이런 꼴이 싫어서 동료들과 함께 무력시위까지도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임시정부에서도 실망을 한 장준하는 장안의 광복군 부대로 가서 미군과 합동 침투훈련을 받기로 한다. 그 훈련이 거의 끝나갈 즈음 김구가 위로차 시찰을 왔는데, 이때 김구의 담력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발생했다.

 

「폭발은 이들의 바로 뒤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폭발물은 단순한 폭약의 매몰로서, 어떤 수훈생이 얼마나 놀라나 하는 것을 측정하기 위해 미리 장치해 놓았던 것을 계획대로 폭발시킨 것뿐이었다.

 이 폭발에도 김구 주석께선 태연히

 "허허...이게 무슨 소린고?" 하실 뿐이었다. 그러나 독립군 총사령관인 장군이 에크! 하며 들고 있던 식기를 놓칠 정도로...」

 

 3 개월간의 훈련 후 서울로 낙하 침투하려던 계획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이후 장준하는 김구의 수행원으로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후 20일 정도의 이야기가 진행되다 이 책은 끝이 난다. 익히 알다시피 당시의 임시정부에도 분열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심화되었다.

 

「환국한 임정의 각료들 안에서까지 일치구국의 염이 허사이면, 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이 형세, 이 난국에서 집중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단 한마디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슴아픈 일이었다.

 각료회의는 뻔한 결과를 가지고 산회되었다. 김구 주석의 말씀처럼, 과연 여러 파, 여러 층을 한보따리에 싸서 내던지고 온 것인가? 그보다는 오히려 끼고 들어온 파벌의 보따리를 더 크게 벌이고자 하는 결과일 뿐이다.」

 

 장준하가 본 우리의 독립운동사와 정치사는 온통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었다. 단결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장준하가 이 수기를 완성한 때는 1971년도인데, 당시의 정치 상황에 개탄을 하며 경고의 차원에서 이 책을 펴낸다고 밝히고 있다.

 

 '돌베개'는 장준하에게 하나의 이상이며 목표이자 짐이었다. 본문을 보면 각 사연마다 자신의 감정을 구구절절 적어놓고 있는데, 가끔은 그것이 지나치게 절절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또한 장준하는 평북 의주 출신으로서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으로 떠난 이후 가족을 일절 보지 못하였다고 밝히고 있는데, 해방 후에 가족과 상봉을 하였는지의 여부가 나와 있지 않아 궁금증이 해소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이렇게 나름 깨끗하고 고결한 삶을 산, 고생도 많이 한 사람이 졸지에 의문의 사고사를 당하는 현실은 그리 옳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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