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끼호떼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6
미겔 데 세르반떼스 지음, 김현창 옮김 / 범우사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알고 보니까 돈 끼호떼는 미친 놈이었다. 이 소설이 씌어질 당시 에스파냐에서는 '기사도 이야기'라고 하여 전설적인 기사들의 기상천외한 모험담들을 온갖 이빨을 보태어 묘사한 소설책들이 유행을 했었던 모양인데, 돈 끼호떼는 이러한 소설들을 지나치게 탐독한 나머지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내가 봤을 때 이러한 '기사도 이야기'들은 현대로 들어와 무협지 내지는 판타지 소설로 변형 및 발전(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것 같다. 세르반떼스는 극중 여러 인물의 입을 빌어 이러한 기사도 이야기에 대하여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그의 기사도 이야기 및 당시 에스파냐 문단 일반의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은 본문의 47장 및 48장에서 신부와 교회 참사원의 대사로써 적나라하게 전개되고 있다.

 돈 끼호떼와 산초 빤사의 대화라든지 초기에 돈 끼호떼가 겪는 모험들은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정말 웃긴 장면들도 많았다. 하지만 소설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돈 끼호떼는 뒤로 물러나고 온갖 잡다한 사람들이 나타나 - 특히 여인숙에서 - 헛된 사랑 이야기를 계속하여 늘어놓을 때는 다소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작품의 분위기가 연애소설 쪽으로 흘러가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러한 연애 이야기가 한 커플의 이야기도 아니고 비슷비슷한 내용이 서너 커플이나 이어지니까 자연 지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소설의 질을 떨어뜨리고 나에게서도 점수를 잃는 요인이 되었다.

 연애 이야기 중에 특기할만한 것으로 - 세르반떼스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캐릭터가 하나 등장하였는데, 바로 래판토 해전에 참전하였다가 포로로 붙들려 여기저기 끌려 다니다가 탈출한 노예가 바로 그것이었다. 세르반떼스 역시 래판토 해전에 참전하였다가 붙잡혀서 5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노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데, 이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와 전역을 막 하였을 때 가장 절실히 느꼈던 사실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다.

 

「"그것 참 고마운 일이군요." 하고 포로가 말했다. "그런 은총을 하느님에게서 받다니, 뭐니뭐니해도 이 지상에서는, 나는 생각합니다만 잃었던 자유를 되찾는 기쁨에 비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연애 이야기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거기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천하의 절색에다 행실도 올바랐으며, 남자들은 엄청난 부자이거나 귀족이었다. 그러니까, 현실성도 없고 공감도 쉽게 가지 않는, 그들만의 이야기였다는 말이다.

 책은 돈 끼호떼가 두 번째 모험에서 친구인 신부와 이발사의 계책에 의하여 소달구지에 죄인처럼 실려서 귀가하는 장면까지를 보여주고 있고, 그의 세 번째 모험의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며 속-돈 끼호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키며 끝나고 있다. 속-돈 끼호떼는 실제로 있는 작품이고, 읽어볼까 싶기도 하지만 만약 읽는다 해도 그것은 꽤 나중의 일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