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홀로코스트 크로노스 총서 8
로버트 S. 위스트리치 지음, 송충기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심히 불쾌한 책이다. 책의 소재도 그렇고 저자(유대인이다)의 편향된 - 한 맺힌 듯한 - 비난적인 어조에다 역자의 어설픈 번역문까지 완전히 삼박자로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사실 책의 저자 프로필을 볼 때부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유대인이 쓴다면 그게 과연 객관적인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책을 쓴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제삼자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꼼꼼한 사례 제시나 방대한 양의 참고문헌은 저자가 이 방면에 상당히 연구를 많이 한 사람임을 증명해 주는 듯했다.
 나는 유대인들이 원래부터 기독교인들에 의해 박해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 역사는 예수의 죽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오래된 것이었다. 옛부터 유대인들은 서양인들에 의해 배반자이며 세속적이고, 그 속을 알 수 없는 자들로 치부되어 왔다고 한다. 저자는 여기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나 그러한 평가를 받게 된 데에는 자신들의 잘못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한 잘못 때문에 그들 모두가 학살될 이유는 없지만 말이다.
 앞서 내가 저자의 편향된 시각과 어조에 대하여 문제 삼았는데, 다음과 같은 부분을 보면 분명 내 말에 수긍이 갈 것이다.

「1933년에 유대인들은 독일 전역을 통틀어 의사 가운데 11퍼센트, 법률가 가운데는 16퍼센트를 점하고 있었다 - 대도시에서는 이 수치가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이는 분명 직업상의 질투와 시기심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다.」

「...감옥에서 히틀러는 《나의 투쟁Mein Kampf》을 저술했는데, 펜으로 아무렇게나 휘갈겨 써서 읽기 어렵고 조잡스런 이 책은 나중에 나치운동의 성서이자 반유대주의의 고전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너무 잘났기 때문에 독일인들의 질투를 받아 그것이 기존의 반유대주의와 맞물려 극단적인 곳으로 나아갔으며, 히틀러는 '감옥에서' 9개월의 수감 기간 동안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지 않은, 정리정돈 된 책조차 완성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9개월 동안 얼마나 깔끔한 책을 써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쨌든 이러한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 - 라고 할 가치나 있을지 모르겠다 - 는 나치즘의 핵심적인 요소였고 히틀러는 젊었을 때부터 유대인은 멸종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조차도 '볼셰비즘과 유대인에 대한 전쟁'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었다. 이건 뭐 지나치게 강박적이고 싸이코 같다. 평균적인 독일인 장교가 유대인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는 다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유대인의 번식을 막기 위해서 근로 유대인 남성들을 즉각 거세시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여성이 임신하게 된다면, 그녀는 제거되어야 한다.」

 유대인을 사람이 아닌 금수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당시 독일은 정책적으로 비유대인인 사람이 유대인과 섹스하는 것을 아주 엄격하게 금했다. 금수와는 피를 섞을 수 없다는 논리다.
 나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이탈리아가 서로 동맹국이었고, 무솔리니가 파시즘의 대가인만큼 이탈리아도 유대인 학살에 적극 가담하였으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실은 이와 반대였다. 다음은 1934년도에 무솔리니가 한 말이다.

「나는 히틀러를 잘 압니다. 그는 멍청이인 데다가 불량배, 그것도 미친 불량배이고, 비위에 거슬리는 공론가이지요. 그의 말을 듣는 것은 정말 고역입니다. 당신들은 히틀러보다 훨씬 강합니다. 히틀러가 남긴 흔적이 사라질 때면, 유대인들은 여전히 위대한 민족으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나라 군대의 대명사인 이탈리아 군대가 유대인들을 어떻게 대하였는지도 나와 있다. 

「게으름, 부패, 비효율성, 그리고 혼란스러운 무질서의 대명사인 이탈리아인의 악습이 홀로코스트의 와중에서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명목으로 법을 자주 융통성 있게 처리함으로써 미덕이 되었다...」 

 저자는 유대인에다 예루살렘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이다. 그가 이스라엘인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자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온갖 한탄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입주로 인하여 쫓겨난 팔레스타인 원주민(이들이야말로 '원주민'이다)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배려조차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팔레스타인이 더 많은 유대인들의 피난처가 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 배려(?)를 해주지 않은 - 영국과 미국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1942년 7월 5일 처칠은..."유대인에 적대적인 아랍인들의 편을 들어주려는 선입견"에 빠지는 것은 잘못이라고 썼다...」 

 저자가 처칠의 이 발언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그렇게 잘났으면 다른 나라 이민 들어가서 노력해서 잘 살면 되지 도대체가 2천 년 전에 떠났던 팔레스타인에 느닷없이 빽(영국)을 등에 업고 나타나서 원주민들 쫓아내고 나라 세우는 것은 어디 법도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2천 년 전에 살았던 요동과 산동반도를 돌려받아야 한단 말인가?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 때 고생하고 힘들었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아무리 박해받고 학살을 당했다 해도 잘 살던 사람들 내치고 그 자리에 들어앉는 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도적질 당했다고 도적질 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홀로코스트의 동기를 아주 복잡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일단 기본적인 전제로는 기존 기독교 사회내에서의 반유대주의를 깔고 있다. 이러한 설명은 합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학살수용소 관계자들은 학살에 맛을 들인, 잔인무도하기 짝이 없는 작자들도 있었고 겉보기에는 대단히 신사적이고 매너 있는 사람처럼 보이면서 학살을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작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세상 어딜 가나 똑같듯이 유대인들 중에서도 나치에 아부하여 동족들을 앞장 서 괴롭혔던 친일파 같은 놈들도 많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생물학적인 인종에 근거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적 · 사무적 · 전문적으로 학살한 유일무이한 현상에 대한 책을 읽고 나니 - 남는 건 더러운 기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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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09-01-03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동물의 왕국에서 짝짓기를 마친 후 홀로 남겨진 미래의 여왕개미가 홀홀단신으로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개미왕국을 건설하는가 하는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번성하던 그녀의 왕국은 이웃 개미왕국의 침입을 받아 초토화되고 맨 마지막으로 여왕개미가 지상으로 끌어올려져 적군에 둘러쌓여 목이 잘립니다. 영토싸움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는 휴머니즘을 다시 정의해야 하지 않은지... 인간은 지구 생태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잔인하지도, 유일무이하게 고상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