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
강서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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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쓴 작가만큼의 금액은 아니지만 나 역시 작가랑 같은 경험이 있기에 많은 공감(내용에 공감한다는 말이 아니고, 동병상련 차원의 공감)을 하며 읽었다. 그리고, 작가가 미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는, 예를 들어서 내가 한 달에 수입의 절반을 저축하면 1년 후 얼마가 될까하는 순차적 방식이 아니라 내가 1년 후 1,000원을 모으고 싶다면 한 달에 얼마씩 저축해야 하는 것일까?하는 역순환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건 내가 왜 저축을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가지고 있냐없냐가 좌우하는 문제이다. "왜 그만큼의 액수가 필요한가?" 라는 질문이 따른다면 작가가 말한 순차적 방식이 아닌 역순환 방식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작가는 어느날 뻥뚫린 통장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 공허함으로 저축을 위한 저축을 감행했다. 작가는 은행에 찾아가서 통장을 만들면서도 얼마를 저축해야할 지를 고민했다. 목표가 서지 않았던 저축이었기에 생겼던 일이 아닐까? 나이가 20살이 넘은 사람이 은행에 가서 통장 만들기를 헤맨다는 거 꼭 이런 목표가 섰냐 안 섰냐의 문제 말고도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큰 거다. 물론 현실은 이에 대해 무감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회가 이 점을 인식하는 순간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엄청난 발전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그 돈을 모아서 뭘 하겠다는 건설적인 계획이 있어서 그렇게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보고 싶은 영화 못 보고, 입고 싶은 옷 못 입고 모은 돈이면 나름대로 정당성을 갖는다. 그런데, 그 액수 그대로 다시 은행통장으로 골인할 돈이면서 그렇게 청승맞은(?) 생활을 하는 건 진짜 미련 그자체라는 생각만 든다. 단순 금액 불리기가 목표인 저축과 무엇을 하기 위한 목표가 서 있는 저축은 차원이 다르다. 창조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건설적인 저축과 재산 불리기 차원의 단순 저축의 차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난 안다. 외국어 공부든, 내가 수행하는 일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주체가 되어 이루어낸 일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확 달라진다는 것을. 이점에 있어선 비록 저축을 위한 저축이었더라도 작가는 1억을 만드는 저축 과정에서 얻은 게 많았던 걸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어렸을 때부터 경제관념을 몸에 배이게 해서 저축이라는 거 자체가 일상에서 습관이 되어 있는 저축이라면 작가처럼 폭식하는 저축이 화제가 될 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카드빚에 시달리고, 외국에 나가 싹쓸이 쇼핑하고,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명품에 휩쓸려 다니는 열풍을 낳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경제개념이라는 건 어느 한 순간에 몸에 배이는 게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입시라는 이름 아래 유치원때부터 사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젊음을 공부와 씨름하며 보내야 하는 이땅의 젊은이들을 낳고 있는 현실과 용돈이 부모가 자식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현실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어렸을 때부터 용돈으로 부모한테 저당잡힌 인생을 살며 무엇 하나 스스로 계획하고 실현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겪을 시행착오가 카드빚이니, 싹쓸이 쇼핑이니, 명품집착이니 이런 현실로 나타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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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니 2004-09-2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마도 책 낼려고 ㅡ_ㅡa 열심히 저축했던 것은 아닐까요?

marine 2005-03-0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 책 팔아서 돈 벌려고 저축한 걸로 보입니다 이런 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 보면 확실히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온 사회를 휘감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미국이라는 이름의 후진국
조홍식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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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미국에 대해 알고 있던 상식들이 얼마나 피상적인 것들이었는지 기존의 내 상식을 많은 부분 수정해야 했다.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무참히 깨어져 나갔지만 그걸 깨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미국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가 선진국일수록 정치보다 환경에 더 관심이 많아서, 병원비가 비싼 이유가 의료진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들어왔던 나로선 이 책을 읽고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료정책에도 자본주의 논리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전문가에 대한 대접으로 평가하는 한국 사람들의 시각은 분명 가진 자들의 눈높이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미국의 의료부분이 프리메이슨에게 장악되어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건 좀 더 공부해봐야할 것 같다.

미국에 왜 비만인구가 많은지, 미국 사람들이 왜 큰 자동차를 선호하며, 왜 외모에 무관심한 지, 왜 그렇게 인종에 집착하는지 그저 막연하게만 추측하고 인지하고 있던 것들을 이 책을 읽으며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미국 거주 한국인들이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해 다른 소수민족들과 연계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보다 미국 주류사회에 흡수되기 위해 불의를 보고도 꾹 참고 차별을 받아도 인내하는 미련한 '범생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만 잘먹고잘살자주의에 안착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소극적으로 살며 얼마나 잘 길들여져가는지도 알게 되었다.

흔히, 다른 나라나 문화권에 대한 글을 쓸 때는 현지에 정착하면서 몇 년을 살아보고 난 후에 쓰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1년간 체류하면서 썼다는 이 책을 읽고 난 이제 오랫동안 가져왔던 그런 고정관념을 버리기로 했다. 그것은 안목의 문제이자, 관심의 촉수가 얼마나 깊이까지 뻗어있느냐의 문제이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몇 십년을 살면서 쓴 사람들의 책을 읽었어도 이렇게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파고들어간 책은 읽어보지 못했다. 나름대로는 고르고 골라서 읽은 책들이었는데 그 책들은 대개 긍정적인 차원에서 '아, 미국은 역시 좋은 나라야. 한국도 배워야돼' 이런 시각이 많았다. 비판한 책이었다해도 이렇게 깊이있게 다룬 책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미국에 대해서 읽어왔던 책들을 몽땅 합쳐도 얻지 못했던 정보들을 이 책 한 권에서 다 얻었다.

이 책을 읽는다면 미국을 보는 눈이 한 개는 더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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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이원익 지음 / 넥서스 / 200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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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유성에 사는 오빠네 집에 갔다가 문이 잠겨 있어 외출한 오빠네가 돌아올 때까지 딱 20분만 책을 보자는 생각으로 동네 서점에 들어가 책을 둘러보던 중, 짧은 말이지만 제목에서 뭔가 잡아당기는 느낌을 받아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가서 집어든 책이 바로 '비상'이었다. 어제 오후 그 책을 사다가 읽었다.

읽는 내내 자꾸 눈물이 앞을 가려 읽기를 중단하고 책을 덮길 몇차례. 이제는 미련을 떨쳤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과거가 떠올라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파왔다. 책을 괜히 사왔다는 후회가 들기도 하고 차라리 읽지를 말자하고 밀쳐두기도 했는데 결국은 잠을 설쳐가며 다 읽고 잠자리에 들었다.

저자와는 고민의 차원이 다른 문제였지만 '나는 여자니까'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위안으로 삼고 정면승부하지 않고 덮어두고 미련을 버리려고만 했던 회피한 과거가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특히, 자신이 왜 라팔을 타야만 하는가에 대한 이유, 삼성재단 이건희 장학재단의 장학금을 받아야만하는 이유를 작성해서 보낼 정도의 당당함, 패기, 도전정신은 현실 앞에서 좀 더 적극적이지 못하고 무릎 끓어버린 내 자신을 채찍질하게 만들었다.

'젊은이만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평범해지는 것이다'
('7막 7장'에서는 '세상의 유일한 죄악은 평범해지는 것이다.'로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이 말보다는 '젊은이만이 범할 수 있는...'이라는 말이 더 구체적이라서 와닿는다.) 학원 가고, 과외받고, 어학연수가는 남들 다 하는 방법이 아닌 나만의 방법으로 영어에 능통해지리라는 나만의 결심을 굳히며 공부 해오던 내 눈에 쏙 들어온 말이다.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납득하고, 스스로 발견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고 했던가. 유년시절부터 필요에 의해 스스로 터득한 공부방법으로 자신만의 영어공부법을 고집하는 것 하며,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야하는 지 야무진 계획들을 세워 실현해 나가는 그 열정, 젊은이라면 한 나라의 장래를 염려할 수 있어야한다는 말도 있듯이 특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한 흔적이 돋보인다.

지식이 아닌 한인간이 온몸으로 보여준 진실이 너무나 강렬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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