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마라
폴라 비가운 지음, 최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이책을 읽기전까지 난 화장품 장수 말대로 자외선 차단제의 SPF 지수가 높으면 좋은 건줄 알았다. 그런데, SPF 15이면 자외선이 95%정도 차단되고, SPF 30∼50이면 97%정도 된다나... 모이스쳐 라이져는 건성피부가 아니면 바를 필요가 없고, 링클 제품은 주름을 없애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피부노화를 만들고... 기타 등등 화장품에 대한 나의 상식이 많이 깨졌다.

미국 여자들은 화장품을 사면서 어떤 제품에 어떤 성분이 얼마만큼 들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살 수 있나보다. 저자는 줄곧 참고해야할 성분의 양을 제시하는데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화장품에는 성분의 양이 표시되지 않으니 한국 여자들에게는 그냥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한국 사람들 눈높이에서 쓰여진 화장품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긴 했지만, 이책은 세세한 부분까지 정말 적나라하게 분석해 놓았다. 3분의 2가 제품리뷰이다 보니 책두께가 장난 아니다. 저자는 잘못되고 부풀려진 화장품 광고와 마케팅 전략을 비판하면서 미국 화장품 업계와 홀로 싸워나가는 사람이다. 저자가 제공하는 정보는 화장품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소비자에게는 쉬쉬할 뿐이라고 한다. 화장품 업계는 소비자들에게 정작 필요한 정보는 함구하고 화장품을 팔아먹기 위해 좋은 점만 강조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화장품 회사에 충성하는 돈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화장품 광고에 길들여져가고 있는 지 처절하게 깨달을 것이다.

한국 여자들이 유난히 화장이 두꺼운 이유가 혹시 화장품 정보의 무지에서 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화장을 해야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기보다는 진한 화장과 섹시함이 무식함, 천박함, 가벼움, 부화뇌동의 소치라는 편견에 더 사로잡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쓰는 화장품이라고해봐야 고작 스킨과 로션뿐이다. 한때는 화장품 장사한테 속아서 에센스에 영양크림, 마사지크림, 팩, 자외선 차단제까지 사다 썼다. 지금도 팩과 자외선 차단제가 두어가지씩 있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있지만 딱 스킨과 로션만 바를 뿐이다. 근데 사람들은 내가 무슨 화장품을 쓰길래 그렇게 피부가 좋으냐고 물어본다. 물론 화장품을 사러가면 피부가 많이 상했다느니, 눈가에 주름이 생기기 전에 아이크림을 써주라느니, 데이크림이랑 나이트 크림을 구분해서 써줘야 피부가 좋아진다느니, 색조화장을 하지 않는 걸 두고 아가씨가 가꿀줄도 모른다느니... 일장 연설을 많이 듣는다. 내가 알지 못하면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를 그대로 신뢰하게 된다. 화장품 장사가 하는 말 역시 내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화장품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화장품 장수가 얼마나 뻥을 많이 치는지 파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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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해서 철든 아줌마들의 푸념식 일상 얘기, 아니면 지극히 학술적인 수준을 넘지 못하는 많은 한국 페미니즘, 아니면 주체를 모호하게 해서 현상만 분석, 지적하고 끝내는 서적에 싫증을 느껴가면서 오히려 열심히 쏟아지는 번역판 서양페미니즘 서적에 거부감이 들었다. 왠지 악을 쓰듯 최후의 발악을 하는 듯한 한국 여자들이 쓴 책과 여유있고, 깊은 성찰에서 나오는 훨씬 성숙해 보이는 그네들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책이 묘한 대조가 되어서 허탈한 마음에 눈물을 짜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책에서 그 허탈함의 실체가 잡혔다. 바로, "그저 자기가 희생되는 것에 대한 울분과 적의를 풀어놓는" 이 부분. 많은 한국 페미니즘 서적을 읽으며 내가 불편했던 감정이 바로 이 한줄에서 정리가 되었다. 자기 남편과 시부모 앞에서는 풀어내지 못하던 감정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그렇게 풀어낸 책들이 불편했던 거다. 물론 결혼한 여자들끼리야 맞아맞아 나도 그래 하면서 맞장구 칠 내용들이겠지만 나로선 감당하기 짜증나는 책들이었다. 물론 그런 책에서도 부분부분 얻을 내용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인 코드는 울분과 분노와 적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데에 실망을 하게 되는 거였다. 처음엔 별 개념이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손에 잡히는 여성학관련책에 대한 인상이 이렇게 굳어져 가고 있다.

이것 말고도 내가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이 책에서 의문이 많이 풀렸다.

저자는 어쩌면 그렇게 예리한 지 읽는 내내 가슴에 와닿는, 말그대로 ‘행복한 페미니즘’이었다. 인종문제를 뺀다면 이 책에서 말한 내용들은 한국 페미니즘에서도 역시 고민해야할 문제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계급의 차이’가 미국에서는 ‘인종차별’로, 한국에서는 빈부의 계층 문제로 나타난 것뿐, 넓은 의미에서 보면 ‘계급의 차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한국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 전반적인 구조적 문제를 보지 못하고, ‘여성’이라는 코드만을 읽어내는 우마저 보인다. 여성 자신을 자각하지 않은 채 언제나 남성, 사회, 가부장제 탓이라고만 외쳐대는 페미니즘이 회의가 든다. 여성 자신이 아닌 남성 때문이라는 그 ‘때문에 페미니즘’만 난무하고, ‘(~에도)불구하고 페미니즘’ 즉, 반기를 들지 않았던 여성의 모습을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서 한국페미니즘에 별 희망이 없어 보인다. 여성은 피해자이기만 할까? 남성은 가해자이기만 할까?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사랑은 이성이 있어야 이루어지듯 모든 현상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한국사회가 남자만의 잘못으로 가부장제가 되었다면 도대체 여성은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었단 얘긴가! 스스로 일상에서 성차별과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적응해가는 여자들이 오히려 가부장체제를 오히려 더 공고히 했던 건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점에서 난 한국여성운동에 관심이 식어버렸다. 여성을 '피해자'로, 남성을 '가해자'로 설정하고 출발하는 페미니즘에선 여성 스스로 가부장적 사고를 체화하고 살아가는 여자야말로 마초에 버금가는 가부장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존재라는 점은 고찰 대상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성차별적 사고와 행동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여자야말로 위협적인 존재라는 점은 남자를 적으로, 가해자로 설정하는 페미니즘에서는 고찰대상이 아닌 것이다. 내가 이런 걸 지적할 때마다 굉장히 불편해 하는 여자들을 많이 보았다. 심지어 남자에게서 들었던 욕보다 더 심한 욕까지 얻어먹은 적도 있다. 페미니스트라고 자부하는 여자의 입에서 나온 “입닥쳐!”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다.


주목해 볼 사항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내 관심을 끈 내용은 바로 이 부분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쳐 주는, 대중적 기반의 교육 운동을 창출해 내지 못함으로써 우리는 주류의 가부장제적 매스미디어로 하여금 우리 이웃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하여 부정적인 것 일색으로 학습시키도록 방조한 셈이 되었다. 벨 훅스 가 미국 페미니즘을 이렇게 염려했다시피, 모든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아닌 페미니스트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버린 한국 페미니즘 역시 이 점에 고민이 필요하다.

벨 훅스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남자들이 페미니즘의 기치를 들고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지구에서의 삶이 안전성과 지속성을 가지려면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 남자들은 페미니즘이 자신들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할까? 이 물음이 남자에게만 던져져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성이 일상에서 반기를 들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적응해 갈 게 아니라 여성 각자가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여성은 깨어나지 못하면서 남성을 깨우려는, 남성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건 박자가 맞지 않는 일이니까. 여성의 일상에서 ‘때문에’라는 언어를 거두어내면 여성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벨 훅스도 진정한 페미니즘을 실천하려면 자기의 내면화된 성차별주의와 우선적으로 맞닥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인지와 관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사랑은 인정과 돌봄과 책임과 헌신과 지식을 결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는 정의가 없는 곳에 사랑이 있을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이해를 통하여,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지배에 반대할 힘을 준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페미니스트 정치학을 선택하는 것은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진짜 사랑을 실천하는 남녀라면 페미니즘을 빼놓고 사랑을 얘기할 수 없다. 나는 여자든 남자든 페미니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진짜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여러번 다룬 ‘페미니즘 이론: 주변에서 중심까지’라는 책이 검색되지 않는 게 좀 아쉽다. 최근에 나온 ‘사랑의 모든 것’이란 책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이 책도 당장 주문해야겠다. 원서로 소장하고 싶은데 원서를 구하지 못해 아쉽다. 이 좋은 책을 도서관에서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다 이제야 손에 잡은 게 후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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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 2005-01-2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주문해야되는데 '품절'이다.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별표 하나를 깎은 이유이다.

도서관 싸이트를 검색해 보니 이 책이 자그마치 세 권이나 뜨는 거였다. 웬만한 신간은 신청해서 1∼2달을 기다려야 읽어볼 수 있는 도서관 사정에 비하면 이 책의 소장 권수는 ‘법은 도서관에서도 대접을 받는군!’ 이런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리고, 웬만한 신간은 달랑 한 권 소장해 놓으면서, 이 책은 도대체 왜 두 권도 아니고 어떻게 세 권이나 소장되었을까가 자못 궁금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갈수록 곧 나의 간사한 마음을 드러내게 했다. ‘이런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으라고 많이 소장해 놓은 걸 거야. 그래서 두 권은 대출 중이었고 마지막 남은 한 권을 내가 빌려올 수 있었던 거잖아. 달랑 한 권 소장해놓았으면 나한테 오기까지 대체 몇 주를 기다려야 되는거야?’ 반납연기를 감안하면 족히 한달은 기다려야 했을 거다.

아침에 일어나 이책을 붙잡았다가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등산 가려던 계획도 포기하고 그냥 끝까지 읽었다. 조금 있다가 가야지, 조금 있다가 가야지 하던 게 후반부로 갈수록 책에 빨려들어가게 만들어 집을 나서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나 역시 이 책의 감동을 늘어놓으려 했는데 여기 올라온 수많은 글을 보고 나는 이책에서 아쉬웠던 점이자 내가 궁금했던 점을 위주로 쓰기로 생각을 바꿨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사를 제외하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난 이후부터 접근하고 있는데 사법개혁방안을 얘기하면서 왜 사법시험제도에 대한 얘기는 언급을 안 했을까가 내내 궁금했고, 또 하나는 로스쿨이 도입되면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로스쿨 입학시험 준비생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개혁의 막을 내리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이 전국에 도입되어 개별 학교별로 사법연수원을 대체할 법학 전문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최소한 법학 교육의 다양성만은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본다고 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얘기를 전개하기 위해 개인사를 하나 꺼내야겠다. 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배낭여행이 가고 싶어 그럴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건 포기하고 공장에서 여행비를 벌어서 배낭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공장에 들어갔다. 물론 여행을 다녀오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지만 막상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 시험 준비에 들어갔을 때는 이제는 하고 싶지 않은 무식하게 외워대기만 하는 공부방식에다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로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한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껴 그만두었는데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고는 담쌓고 살았던 시간을 벌어볼까 해서 공무원 시험준비 학원에 등록을 했었는데 나를 비롯해 거기 온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대학을 졸업했으면서 왜 이 많은 사람들이 따로 취직공부를 해야할까, 다른 문제도 아니고 행정을 건드리면서 과연 외워대기만한 지식으로 현장에 투입된다고 해서 일반인들 피부에 가닿을 만큼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거기다 군가산점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여러 논쟁들을 지켜보면서 공무원 시험을 행정학과 출신만 치르게 하면 가산점 논쟁이 나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시 준비하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그들이 사시를 무슨 신분상승 수단으로 여기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어 법대와 법대생들, 사시준비생들을 좀 달리 보게 되면서 사법시험제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법시험만 통과하면 인생 활짝 핀다는 의식이 법대 출신이건 비법대 출신이건 졸업후에도 사시에 매달리게 한다. 만약 사법고시도 법대생이 아니면 치를 수 없게 제한하고 아니 제한할 필요도 없이 교육내용 자체가, 의대를 다니지 않으면 의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법대생이 아니면 사법시험에 도전할 엄두도 못내게 되어 있다면 고시준비생들이 로스쿨을 도입한다고 해서 사시준비하던 것에서 방향을 틀어 로스쿨 입학시험 준비생으로 전환할까? 개나소나 마음만 먹으면 도전할 수 있는 각종 시험제도를 비롯해 사시제도는 젊은 인력을 학원에, 도서관에, 고시원에 가둔다. 취직을 하려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따로 취직공부를 해야한다는 현실은 그만큼 국가가 젊은 인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증거고, 교육이 그만큼 죽어있다는 얘기다. 

사실 저자가 지적한 우리 법조계의 수많은 문제들은 저런 교육과정을 거쳐 걸러지지 않고, 시험만능주의 그것도 억지로 머리에 구겨넣은 백과사전식 지식 나열 시험이 낳은 결과 아니겠는가. 변호사, 판사, 검사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검증하는 데 있어 사법시험을 빼고 얘기하면서 사실은 이래이래야 하는데 그들은 왜 그러지 못하는가라는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근본을 건드리지 않고 열매만 튼튼하길 바라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사법제도가 아닌 법대 교육과정개혁, 사시제도개혁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언론이고, 행정이고, 법이고 시험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시험만능주의는 좀 지양되고, 아니 시험을 치루되 머리에 구겨넣은 백과사전식 지식 나열이 아닌 ‘실제’를 다룬 교육내용을 바탕으로 진짜 시험으로 승부할 수 있게 책을 가지고 들어가서 시험을 치러도 떨어지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시험이 출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학교교육이 창의력과 창조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면 머리에 든 지식을 바탕으로 적용만 하면 끝나는 의사, 변호사/판사/검사라는 직업보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직업세계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져 정말 법에 뜻이 있는 사람,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말고는 사법시험에 몰리는 일이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시 준비생들 이 이 말에 발끈하면 어쩌나...

이렇게 비판을 하긴 했지만 책을 사서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법에 무지한 나로서는 많은 공부가 된 책이다. 뉴스에 보도되는 내용 중에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도 꽤 있는 걸 보면 시청자들은 옳지못한 일에 저항하는 저항감마저 잃어버린 거 같다. 뇌물유혹이 있었을 때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검사직에 염증을 느꼈다고 한 부분에서 마음을 비우고, 심지가 곧고, 순수한 사람이 아니면 이런 책이 나올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직업세계를 통렬히 비판하는 이런 책이 법 분야 말고 교육에 몸담고 있는 대학교수 사회, 정치, 군대... 등 각 분야에서 쏟아져 나온다면 한국사회가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지식은 있어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의 지식은 오히려 타인을 휘두르는 독이 된다. 이 말은 지금 한국사법계를 이해하는데 그리 무리가 없는 말일거다. “변호사, 판사, 검사라는 직업을 객관적으로 볼 줄 모르는 사시 합격자들은 다 나가 뒈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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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과 그의 아내 - 33쌍과의 인터뷰, 우리 시대의 남성.여성.가족
김현주 지음 / 새물결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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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도 그렇거니와 가족제도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한국사회에서는 왜 ‘장남과 그의 아내’가 주목받아야 할까 이런 사실에 접근해 가지 않을까란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장남과 결혼한 여자는 결혼생활에서 시부모와 갈등이 이렇게 나타나더라, 시부모와의 갈등을 없애려면 사회적 논의는 ‘고드부와 샤르보노’가 지적한 이상적인 인간관계와 그 지향성 중 세 번째 내용 “A(개인)는 B(개인)로부터 자신이 준 것보다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B 또한 자신이 A로부터 자신이 준 것보다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상호 긍정적인 빚의 상태’”을 지향하라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가지 의문은 장남과 그의 아내가 아닌 차남이하와 그들의 아내는 시부모와 대등한 거래(상호 긍정적인 빚의 상태)를 하고 있다는 얘긴가?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가 아닌 ‘장남과 그의 아내’라는 특정 신분만을 부각시키면서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건 뭔가 초점이 맞지 않는 얘기같다. 차남, 장녀, 막내... 이 모든 부부형태가 다같이 총체적으로 고찰되는 관계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설정이 의미를 가지는 것 아닐까? 그리고, 시부모, 장남, 맏며느리... 이런 ‘신분’적 명칭을 벗어버리고 그 사람만의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거나 서로 대등한 호칭으로 불릴 때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가 아닌 ‘개인’ 대 ‘개인’의 사이가 되어 서로를 대등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남과 결혼을 했든, 차남과 결혼을 했든, 막내와 결혼을 했든 남편과 혹은 시댁과 소통 창구가 열려있다면 뭐가 문제이겠는가. 서로 소통창구가 막혀 있으니까 주고받는 거래관계로 읽히고, 장남이라는 위치가 의미를 가지는 거겠지. 막힌 소통창구를 뚫으려는 노력은 없고 대신 ‘경제력’으로 무마해가는 여성들의 무능을 보았다. 한편, 남편이 월급 받아다 아내한테 통째로 받치는 것도 못마땅해하는 난데, 월급 봉투를 시어머니에게 건네주고 용돈을 받아쓰는 며느리들이 있다는 사실에 할말을 잃었다.

이책은 시부모와 함께 사니까 갈등이 생기더라, 그러니까 장남이 축이 되는 가족제도는 문제가 있다는 접근을 하고 있지만, 가족제도가 문제 있으니까 여자가 결혼하면 시댁에 호적을 올리고 시부모를 모시는 의무가 지워지는 게 아닌가. 그리고, 장남과 그의 아내와 부모와의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 가족관계가 문제 없는 걸까? 오히려, 차남/삼남.../막내와 그의 아내, 장녀/차녀...막내와 그의 남편이 아닌 하필 왜 ‘장남과 그의 아내’에게만 무게를 두는 지 이걸 그려냈어야 하지 않을까... 결혼이 남녀가 양쪽 부모로부터 독립해 나와 그들의 가정을 꾸리는 게 아닌 여자의 결혼이 남편 집안에 흡수되는 형태라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만 주목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장남의 누나가 있는 경우, 장남의 아내가 장인, 장모에게 있어 장녀인 경우 모두를 배제하고 왜 ‘장남과 그의 아내’만 다루고 있는 지에 대한 고찰 없음, 결혼하기 전에 결혼의 실체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결혼생활을 어떻게 꾸려갈 건 지 서로 주고받은 대화내용 내지는 계획설계내용과 장남과 결혼한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 지를 고민한 흔적 없음, 앞뒤전후사정을 살펴 맏며느리들이 왜 결혼생활에서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야하는 지를 반성하고 원인규명을 하기보다 시댁과의 갈등만을 부각시킨 점, 시부모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시부모에게 점수를 얻으려는 여자들의 이중성 등 이책에서 포착된 아쉬운 점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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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1-05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뭐.... 일종의 처세술 책이네요.ㅋㅋ

"장남은 부모를 부양해야 할 책임이 있고, 그 아내는 남편의 책임을 인수 받는다"를 전제로 하고 쓰여진 책인 것 같네요. 씁쓸....

사고뭉치 2005-01-0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남부부 33쌍을 인터뷰해서 쓴 책인데, 제목은 ‘장남과 그의 아내’인데도 주로 ‘아내’와 인터뷰를 해서 썼더군요. 맏며느리가 힘들어하니까 지금의 가족제도는 문제있다 이런 메시지가 읽히고요. 제목이 장남과 그의 아내니까 장남의 아내로서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다루기보다 장남과 그의 아내 사이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좀 드네요.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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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구미가 당기는 책은 아니었으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봐야하는 책이 아닐까라는 강박관념이 작용해 미루고 미루다가 손에 잡게 된 책이다. 의무감으로 읽는 책이니 재미가 있을까... 책을 펴자 미국의 언론과 각계의 사람들이 남긴 짧은 코멘트가 등장해서 굉장한 책인가보다고 조금은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마저 깨져 하루에 한 장(쪽수가 아닌 제목 하나를 말함)씩 읽기로 하고 다른 책을 잡고 씨름하다 세 번째 장을 읽을 때부터는 ‘어... 재밌네?’를 넘어 ‘다음 얘기는 뭐지?’ 이 단계까지 갔다.

스콧의 남극탐험을 다룬 세 번째 글 마지막에 “사람들은 주로 민족주의, 종교, 인종 등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만, 16킬로그램의 돌이 든 가방과 그것이 상징하는 사라진 세계도 목숨을 걸기에 과히 나쁜 명분은 아닌 것 같다.”는 글귀에서 “카아!”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을 추켜세우며 위대한 죽음만이 가치있는 듯 교육을 받아온 몸이기에 이말에 혹 했다. 책읽기를 멈추고 나라면 과연 뭘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대학 때 강의교재로 쓰였던 리더스다이제스트 내용 중에 등산을 가서 조난을 당한 남자가 눈덮인 산속에 갇혀 꼼짝 못하게 되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죽는 거니까 미련은 없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또, 예전에 김동길 씨가 쓴 책에서 자신은 그냥 편안하게 맞이하는 자연사보다는 국가를 위해 대중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다가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한 글을 읽은 후로 그 인상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서 노후로 인한 죽음, 혹은 일상에서 개인의 삶을 추구하다가 맞이하는 죽음에 무게를 덜 두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저 두 오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도 머리가 컸는지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죽음은 만인이 애도하는 죽음일 지는 모르나 그 개인의 위치에서 본다면 불행한 죽음이 아닐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신의 세계를 추구하다가 자신의 소신에 취해 죽음을 맞이하는 게 개인의 죽음으로 볼 때는 더 행복한 죽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김동길 씨가 말하는 죽음이 개인으로 살아오지 못한 한국 사람답게 집단에 함몰된 죽음에 의미를 두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게 죽음에 대해 강하게 인상을 남긴 두 글에 하나가 보태어져 이 책에 나온 남극 탐험가 스콧의 죽음은 그 세 번째가 되었다.

나 역시 책을 너무 신성시 다루는 거 아니냐는 비판? 주의?를 받고 있던 터라 ‘너덜너덜한 겉모습’을 뚫어져라 읽었다. 덴마크를 방문한 가족 여행에서 호텔 청소부가 책을 펼쳐 엎어놓은 저자의 오빠에게 남긴 메모 ‘손님, 책을 절대 그렇게 다루지 마세요.’를 두고 저자는 책이 담고 있는 말은 거룩하지만 책을 담고 있는 그릇인 종이, 천, 판지, 풀, 실, 잉크를 함부로 다루는 건 신성모독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나로 볼작시면, 저자보다는 그 호텔 청소부의 궁정식 사랑의 신봉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책이 너덜너절해지는 걸 참을 수 없고, 책은 크기와 장르에 맞춰 꽂혀 있어야 하며, 그래서 책을 사서 그 책을 어디에 꽂아야 할 지 책장을 보며 한참 궁리를 할 때 식구들의 닭짓 그만하고 아무 데나 꽂으라는 말에 상처를 입는, 책 장에 꽂힌 책 위에 다른 책이 얹혀지는 걸 참을 수 없는, 밑줄 긋는 거 말고는 볼펜 자국을 용납하지 않는, 읽던 곳을 표시하기 위해 책모퉁이를 접어놓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그 청소부처럼 내용과 형식이 불리 될 수 없다고 믿고 책의 물리적 자아를 신성시까지는 아니어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8천권이나 되는 책을 가진 저자의 친구가 햇빛에 책이 바랄까봐 부인이 서재의 창문 블라인드 올리는 것도 말리고, 아끼는 책은 두 권을 사서 한 권은 그대로 모셔둔다는 거에 비하면 내 강박관념은 새발의 피인 것 같다. 그래도 책의 물리적 자아와 책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자세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할 것 같다.

난 저자처럼 부모를 건너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고사하고 엄마한테서 네가 여성으로서 읽어야할 책이라고 추천이라도 받아보면 소원이 없겠다.

또, 나 역시 오자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해 대화방에서 대화할 때 오자를 지적하다가 한소리 들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언젠가는 의식적으로 지적을 하지 않으려고 참고 있는데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의 맞춤법을 지적해주지 않는다고
“미안해요.”
“왜죠?”
“맞춤법이 틀렸는데 지적을 안 해주시네요.”
이런 대화가 오가서 놀란 적도 있다.
여기다 한 수 더 떠서 문장부호에 대한 강박관념까지 작용하다 보니 문장부호를 찍지 않은 사람들 틈에서 문장부호를 비교적 잘 지키는 사람을 보면 혹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닐까하고 물어보기까지 한다. 나아가 각국에서 수집한 엽서랑 전화카드를 수집첩에 꽂을 때도 주제별로 나라별로 분류해 꽂아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관념도 따지고 보면 이런 성격과 연관된 게 아닐까 한다.


온가족이 책에 빠져 사는 데다가 저자는 직업도 글을 쓰는 직업이고 결혼도 책에 중독된 사람과 했다. 거기다 낭독을 즐기는 행복까지... 부럽기만 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4학때인가... 반친구들은 다 아는 백설공주 얘기를 나만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이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돈을 모아 백설공주 책을 사서 아버지 몰래 숨어서 읽다가 혼난 적이 있다. 교과서나 열심히 보라던 아버지 말씀 때문에 그 뒤로도 쭈욱 나의 독서행각은 언제나 아버지 몰래였다. 내 부모만 그런 줄 알고 창피해서 누구한테 얘기도 못하고 있었는데 나이 먹으며 비슷한 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접했을 때의 황당함이란... 나이 먹은 지금은
“얘, 그거 읽으면 남자가 하늘에서 떨어지니?”
이런 엄마 잔소리를 감당해야한다. 참고로 내 엄마는 혹시나 남자한테 전화가 와서 밖에 나갔다 들아오면
“너 왜 벌써 들어왔어? 그 남자가 너 싫대?”
이러는 분이다. 운명의 장난으로 책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가족을 만났지만 내 소원은 책 좋아하는 남자 만나서, 앤 패디먼 부부처럼 낭독의 즐거움을 즐기든, 같이 책을 붙잡고 앉아 읽든 책에 두드러기 반응 안 보이는 사람과 살아보는 거다.

이 책이 번역판이 아닌 한국 사람이 쓴 책이었더라면 더 실감이 나지 않았을까란 생각과 함께 자기창조 없이 서구 이론 욹궈내 책 팔아먹는 한국 작가들과, 아울러, 나이 먹어서까지 여성학 문제에 빠져 여성의 현실이나 읊어내야 하는 한국 여자들 현실이 또 한 번 불쌍해진다. 내가 여성학 책만 골라읽어서 그런 건 지 한국 여자들이 쓴 책 중에 여성의 현실을 성토하는 책 말고 이렇게 자기세계를 끄집어낸 책을 읽어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조안 리? 한비야? 이주향? 현경? 이 책을 읽고 책장을 쳐다보니 여성문제 빼고는 여자가 쓴 책이 별로 안 보인다. 내친 김에 도서관에서 빌려본 대출목록까지 조회해 보니 여자가 쓴 책이 별로 없다. 내 독서취향에 문제가 있는건가 생각해 보니 내가 일부러 남자가 쓴 책들만 고르는 것도 아닌데 취향 문제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아, 불쌍한 한국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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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4-12-16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공감되네요. 여성문제 빼고는 여자가 쓴 책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죠? 조경란, 배수아, 전경린,김형경 등 소설들이 쏟아 지지만, 소설과 시를 제외하고는 여자들이 쓴 책은 여성문제들로 한정되죠? 아니면 '성공은 이런거다...'이런 자서전이나.... 하지만.... 여성문제란.... 이게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여자들의 정체성 문제가 아닐까.... 단지 여성문제라고 국한시키기에 '존개감' 자체의 문제가 아닌가...이런 생각이 들어요.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사고뭉치 2004-12-1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전 누군가가 저보고 책을 너무 편식해서 읽어서 그런 작가를 찾지 못한 거라고 질타해 주길 바랐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었을 때, 한국에서 시오노 나나미에 버금가는 여자가 누가 있을까를 떠올려보니 도무지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내가 책을 너무 편식하나 보다고 생각하고 좀 더 다양하게 읽어야겠구나 이러고 말았죠. 그런데, 이책을 읽고 나니까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번엔 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전 자신의 세계가 남편과 애들 그리고 문명의 혜택으로 편리해진 살림으로 집에서 시간 죽이는 게 전부인 여자들이 많다는 사실, 직장 생활을 한다해도 정신의 행복을 치워두고 돈을 벌어 출세, 성공, 상승만을 꿈꾸는 여자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기에 존재감의 문제로 보이진 않고,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존재감이라는 말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을 지도 의문이고요.



관심의 범위를 넓히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존재감의 문제는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자들 말고는 해당사항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정신의 행복을 치워두고 자신의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적응해 가는 여자들이 너무 많다는 거 이걸 주목해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자신의 욕망과 현실과의 괴리를 돈을 벌어 출세, 성공하는 걸로 보상받으려 하는 것 이런 데에 반성이 필요하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