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별표 하나를 깎은 이유이다.

도서관 싸이트를 검색해 보니 이 책이 자그마치 세 권이나 뜨는 거였다. 웬만한 신간은 신청해서 1∼2달을 기다려야 읽어볼 수 있는 도서관 사정에 비하면 이 책의 소장 권수는 ‘법은 도서관에서도 대접을 받는군!’ 이런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리고, 웬만한 신간은 달랑 한 권 소장해 놓으면서, 이 책은 도대체 왜 두 권도 아니고 어떻게 세 권이나 소장되었을까가 자못 궁금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갈수록 곧 나의 간사한 마음을 드러내게 했다. ‘이런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으라고 많이 소장해 놓은 걸 거야. 그래서 두 권은 대출 중이었고 마지막 남은 한 권을 내가 빌려올 수 있었던 거잖아. 달랑 한 권 소장해놓았으면 나한테 오기까지 대체 몇 주를 기다려야 되는거야?’ 반납연기를 감안하면 족히 한달은 기다려야 했을 거다.

아침에 일어나 이책을 붙잡았다가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등산 가려던 계획도 포기하고 그냥 끝까지 읽었다. 조금 있다가 가야지, 조금 있다가 가야지 하던 게 후반부로 갈수록 책에 빨려들어가게 만들어 집을 나서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나 역시 이 책의 감동을 늘어놓으려 했는데 여기 올라온 수많은 글을 보고 나는 이책에서 아쉬웠던 점이자 내가 궁금했던 점을 위주로 쓰기로 생각을 바꿨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사를 제외하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난 이후부터 접근하고 있는데 사법개혁방안을 얘기하면서 왜 사법시험제도에 대한 얘기는 언급을 안 했을까가 내내 궁금했고, 또 하나는 로스쿨이 도입되면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로스쿨 입학시험 준비생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개혁의 막을 내리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이 전국에 도입되어 개별 학교별로 사법연수원을 대체할 법학 전문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최소한 법학 교육의 다양성만은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본다고 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얘기를 전개하기 위해 개인사를 하나 꺼내야겠다. 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배낭여행이 가고 싶어 그럴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건 포기하고 공장에서 여행비를 벌어서 배낭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공장에 들어갔다. 물론 여행을 다녀오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지만 막상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 시험 준비에 들어갔을 때는 이제는 하고 싶지 않은 무식하게 외워대기만 하는 공부방식에다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로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한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껴 그만두었는데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고는 담쌓고 살았던 시간을 벌어볼까 해서 공무원 시험준비 학원에 등록을 했었는데 나를 비롯해 거기 온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대학을 졸업했으면서 왜 이 많은 사람들이 따로 취직공부를 해야할까, 다른 문제도 아니고 행정을 건드리면서 과연 외워대기만한 지식으로 현장에 투입된다고 해서 일반인들 피부에 가닿을 만큼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거기다 군가산점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여러 논쟁들을 지켜보면서 공무원 시험을 행정학과 출신만 치르게 하면 가산점 논쟁이 나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시 준비하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그들이 사시를 무슨 신분상승 수단으로 여기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어 법대와 법대생들, 사시준비생들을 좀 달리 보게 되면서 사법시험제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법시험만 통과하면 인생 활짝 핀다는 의식이 법대 출신이건 비법대 출신이건 졸업후에도 사시에 매달리게 한다. 만약 사법고시도 법대생이 아니면 치를 수 없게 제한하고 아니 제한할 필요도 없이 교육내용 자체가, 의대를 다니지 않으면 의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법대생이 아니면 사법시험에 도전할 엄두도 못내게 되어 있다면 고시준비생들이 로스쿨을 도입한다고 해서 사시준비하던 것에서 방향을 틀어 로스쿨 입학시험 준비생으로 전환할까? 개나소나 마음만 먹으면 도전할 수 있는 각종 시험제도를 비롯해 사시제도는 젊은 인력을 학원에, 도서관에, 고시원에 가둔다. 취직을 하려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따로 취직공부를 해야한다는 현실은 그만큼 국가가 젊은 인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증거고, 교육이 그만큼 죽어있다는 얘기다. 

사실 저자가 지적한 우리 법조계의 수많은 문제들은 저런 교육과정을 거쳐 걸러지지 않고, 시험만능주의 그것도 억지로 머리에 구겨넣은 백과사전식 지식 나열 시험이 낳은 결과 아니겠는가. 변호사, 판사, 검사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검증하는 데 있어 사법시험을 빼고 얘기하면서 사실은 이래이래야 하는데 그들은 왜 그러지 못하는가라는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근본을 건드리지 않고 열매만 튼튼하길 바라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사법제도가 아닌 법대 교육과정개혁, 사시제도개혁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언론이고, 행정이고, 법이고 시험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시험만능주의는 좀 지양되고, 아니 시험을 치루되 머리에 구겨넣은 백과사전식 지식 나열이 아닌 ‘실제’를 다룬 교육내용을 바탕으로 진짜 시험으로 승부할 수 있게 책을 가지고 들어가서 시험을 치러도 떨어지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시험이 출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학교교육이 창의력과 창조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면 머리에 든 지식을 바탕으로 적용만 하면 끝나는 의사, 변호사/판사/검사라는 직업보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직업세계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져 정말 법에 뜻이 있는 사람,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말고는 사법시험에 몰리는 일이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시 준비생들 이 이 말에 발끈하면 어쩌나...

이렇게 비판을 하긴 했지만 책을 사서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법에 무지한 나로서는 많은 공부가 된 책이다. 뉴스에 보도되는 내용 중에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도 꽤 있는 걸 보면 시청자들은 옳지못한 일에 저항하는 저항감마저 잃어버린 거 같다. 뇌물유혹이 있었을 때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검사직에 염증을 느꼈다고 한 부분에서 마음을 비우고, 심지가 곧고, 순수한 사람이 아니면 이런 책이 나올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직업세계를 통렬히 비판하는 이런 책이 법 분야 말고 교육에 몸담고 있는 대학교수 사회, 정치, 군대... 등 각 분야에서 쏟아져 나온다면 한국사회가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지식은 있어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의 지식은 오히려 타인을 휘두르는 독이 된다. 이 말은 지금 한국사법계를 이해하는데 그리 무리가 없는 말일거다. “변호사, 판사, 검사라는 직업을 객관적으로 볼 줄 모르는 사시 합격자들은 다 나가 뒈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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