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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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구미가 당기는 책은 아니었으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봐야하는 책이 아닐까라는 강박관념이 작용해 미루고 미루다가 손에 잡게 된 책이다. 의무감으로 읽는 책이니 재미가 있을까... 책을 펴자 미국의 언론과 각계의 사람들이 남긴 짧은 코멘트가 등장해서 굉장한 책인가보다고 조금은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마저 깨져 하루에 한 장(쪽수가 아닌 제목 하나를 말함)씩 읽기로 하고 다른 책을 잡고 씨름하다 세 번째 장을 읽을 때부터는 ‘어... 재밌네?’를 넘어 ‘다음 얘기는 뭐지?’ 이 단계까지 갔다.

스콧의 남극탐험을 다룬 세 번째 글 마지막에 “사람들은 주로 민족주의, 종교, 인종 등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만, 16킬로그램의 돌이 든 가방과 그것이 상징하는 사라진 세계도 목숨을 걸기에 과히 나쁜 명분은 아닌 것 같다.”는 글귀에서 “카아!”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을 추켜세우며 위대한 죽음만이 가치있는 듯 교육을 받아온 몸이기에 이말에 혹 했다. 책읽기를 멈추고 나라면 과연 뭘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대학 때 강의교재로 쓰였던 리더스다이제스트 내용 중에 등산을 가서 조난을 당한 남자가 눈덮인 산속에 갇혀 꼼짝 못하게 되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죽는 거니까 미련은 없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또, 예전에 김동길 씨가 쓴 책에서 자신은 그냥 편안하게 맞이하는 자연사보다는 국가를 위해 대중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다가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한 글을 읽은 후로 그 인상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서 노후로 인한 죽음, 혹은 일상에서 개인의 삶을 추구하다가 맞이하는 죽음에 무게를 덜 두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저 두 오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도 머리가 컸는지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죽음은 만인이 애도하는 죽음일 지는 모르나 그 개인의 위치에서 본다면 불행한 죽음이 아닐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신의 세계를 추구하다가 자신의 소신에 취해 죽음을 맞이하는 게 개인의 죽음으로 볼 때는 더 행복한 죽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김동길 씨가 말하는 죽음이 개인으로 살아오지 못한 한국 사람답게 집단에 함몰된 죽음에 의미를 두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게 죽음에 대해 강하게 인상을 남긴 두 글에 하나가 보태어져 이 책에 나온 남극 탐험가 스콧의 죽음은 그 세 번째가 되었다.

나 역시 책을 너무 신성시 다루는 거 아니냐는 비판? 주의?를 받고 있던 터라 ‘너덜너덜한 겉모습’을 뚫어져라 읽었다. 덴마크를 방문한 가족 여행에서 호텔 청소부가 책을 펼쳐 엎어놓은 저자의 오빠에게 남긴 메모 ‘손님, 책을 절대 그렇게 다루지 마세요.’를 두고 저자는 책이 담고 있는 말은 거룩하지만 책을 담고 있는 그릇인 종이, 천, 판지, 풀, 실, 잉크를 함부로 다루는 건 신성모독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나로 볼작시면, 저자보다는 그 호텔 청소부의 궁정식 사랑의 신봉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책이 너덜너절해지는 걸 참을 수 없고, 책은 크기와 장르에 맞춰 꽂혀 있어야 하며, 그래서 책을 사서 그 책을 어디에 꽂아야 할 지 책장을 보며 한참 궁리를 할 때 식구들의 닭짓 그만하고 아무 데나 꽂으라는 말에 상처를 입는, 책 장에 꽂힌 책 위에 다른 책이 얹혀지는 걸 참을 수 없는, 밑줄 긋는 거 말고는 볼펜 자국을 용납하지 않는, 읽던 곳을 표시하기 위해 책모퉁이를 접어놓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그 청소부처럼 내용과 형식이 불리 될 수 없다고 믿고 책의 물리적 자아를 신성시까지는 아니어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8천권이나 되는 책을 가진 저자의 친구가 햇빛에 책이 바랄까봐 부인이 서재의 창문 블라인드 올리는 것도 말리고, 아끼는 책은 두 권을 사서 한 권은 그대로 모셔둔다는 거에 비하면 내 강박관념은 새발의 피인 것 같다. 그래도 책의 물리적 자아와 책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자세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할 것 같다.

난 저자처럼 부모를 건너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고사하고 엄마한테서 네가 여성으로서 읽어야할 책이라고 추천이라도 받아보면 소원이 없겠다.

또, 나 역시 오자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해 대화방에서 대화할 때 오자를 지적하다가 한소리 들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언젠가는 의식적으로 지적을 하지 않으려고 참고 있는데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의 맞춤법을 지적해주지 않는다고
“미안해요.”
“왜죠?”
“맞춤법이 틀렸는데 지적을 안 해주시네요.”
이런 대화가 오가서 놀란 적도 있다.
여기다 한 수 더 떠서 문장부호에 대한 강박관념까지 작용하다 보니 문장부호를 찍지 않은 사람들 틈에서 문장부호를 비교적 잘 지키는 사람을 보면 혹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닐까하고 물어보기까지 한다. 나아가 각국에서 수집한 엽서랑 전화카드를 수집첩에 꽂을 때도 주제별로 나라별로 분류해 꽂아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관념도 따지고 보면 이런 성격과 연관된 게 아닐까 한다.


온가족이 책에 빠져 사는 데다가 저자는 직업도 글을 쓰는 직업이고 결혼도 책에 중독된 사람과 했다. 거기다 낭독을 즐기는 행복까지... 부럽기만 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4학때인가... 반친구들은 다 아는 백설공주 얘기를 나만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이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돈을 모아 백설공주 책을 사서 아버지 몰래 숨어서 읽다가 혼난 적이 있다. 교과서나 열심히 보라던 아버지 말씀 때문에 그 뒤로도 쭈욱 나의 독서행각은 언제나 아버지 몰래였다. 내 부모만 그런 줄 알고 창피해서 누구한테 얘기도 못하고 있었는데 나이 먹으며 비슷한 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접했을 때의 황당함이란... 나이 먹은 지금은
“얘, 그거 읽으면 남자가 하늘에서 떨어지니?”
이런 엄마 잔소리를 감당해야한다. 참고로 내 엄마는 혹시나 남자한테 전화가 와서 밖에 나갔다 들아오면
“너 왜 벌써 들어왔어? 그 남자가 너 싫대?”
이러는 분이다. 운명의 장난으로 책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가족을 만났지만 내 소원은 책 좋아하는 남자 만나서, 앤 패디먼 부부처럼 낭독의 즐거움을 즐기든, 같이 책을 붙잡고 앉아 읽든 책에 두드러기 반응 안 보이는 사람과 살아보는 거다.

이 책이 번역판이 아닌 한국 사람이 쓴 책이었더라면 더 실감이 나지 않았을까란 생각과 함께 자기창조 없이 서구 이론 욹궈내 책 팔아먹는 한국 작가들과, 아울러, 나이 먹어서까지 여성학 문제에 빠져 여성의 현실이나 읊어내야 하는 한국 여자들 현실이 또 한 번 불쌍해진다. 내가 여성학 책만 골라읽어서 그런 건 지 한국 여자들이 쓴 책 중에 여성의 현실을 성토하는 책 말고 이렇게 자기세계를 끄집어낸 책을 읽어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조안 리? 한비야? 이주향? 현경? 이 책을 읽고 책장을 쳐다보니 여성문제 빼고는 여자가 쓴 책이 별로 안 보인다. 내친 김에 도서관에서 빌려본 대출목록까지 조회해 보니 여자가 쓴 책이 별로 없다. 내 독서취향에 문제가 있는건가 생각해 보니 내가 일부러 남자가 쓴 책들만 고르는 것도 아닌데 취향 문제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아, 불쌍한 한국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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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4-12-16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공감되네요. 여성문제 빼고는 여자가 쓴 책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죠? 조경란, 배수아, 전경린,김형경 등 소설들이 쏟아 지지만, 소설과 시를 제외하고는 여자들이 쓴 책은 여성문제들로 한정되죠? 아니면 '성공은 이런거다...'이런 자서전이나.... 하지만.... 여성문제란.... 이게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여자들의 정체성 문제가 아닐까.... 단지 여성문제라고 국한시키기에 '존개감' 자체의 문제가 아닌가...이런 생각이 들어요.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사고뭉치 2004-12-1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전 누군가가 저보고 책을 너무 편식해서 읽어서 그런 작가를 찾지 못한 거라고 질타해 주길 바랐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었을 때, 한국에서 시오노 나나미에 버금가는 여자가 누가 있을까를 떠올려보니 도무지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내가 책을 너무 편식하나 보다고 생각하고 좀 더 다양하게 읽어야겠구나 이러고 말았죠. 그런데, 이책을 읽고 나니까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번엔 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전 자신의 세계가 남편과 애들 그리고 문명의 혜택으로 편리해진 살림으로 집에서 시간 죽이는 게 전부인 여자들이 많다는 사실, 직장 생활을 한다해도 정신의 행복을 치워두고 돈을 벌어 출세, 성공, 상승만을 꿈꾸는 여자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기에 존재감의 문제로 보이진 않고,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존재감이라는 말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을 지도 의문이고요.



관심의 범위를 넓히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존재감의 문제는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자들 말고는 해당사항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정신의 행복을 치워두고 자신의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적응해 가는 여자들이 너무 많다는 거 이걸 주목해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자신의 욕망과 현실과의 괴리를 돈을 벌어 출세, 성공하는 걸로 보상받으려 하는 것 이런 데에 반성이 필요하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