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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강수돌 지음 / 그린비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머리에서 교육문제를 교육문제로만 풀 수 없는 데다가 교육이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란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제대로 풀어가려면 교육과 더불어 경제, 나아가 삶의 방식과 더불어 사회적 연관성 속에서 따져보고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시작되어서, 교육제도 개선한다면서 매번 입시제도만 뜯어고치는 데 지쳐있는 나로선 처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 부분에서, 상당히 호감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옳거니!’ 감탄을 하며 읽어나가다 어느 순간 드는 의문이, 저자는 한국의 교육이 자본주의에 종속된 학교에서 학생을 자본주의 인력으로 키워내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자본주의가 한국에만 도입된 제도가 아닌 이상 한국의 교육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입시위주의 교육, 돈봉투, 학원수업, 과외, 치맛바람... - 우리는 이걸 교육열과 연관시킨다. 파고보면 부모들의 내새끼 유일주의에서 나온 극성일 뿐인데. 부모의 무모한 열정이 오히려 자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를 억압, 착취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애써 외면하면서 보고 싶은 것만 보며 교육열이라고 자위를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부모도 아닌 내가 다 미쳐버릴 거 같다. - 이런 문제들을 자본주의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입학시험을 치를 때면 부모가 자식이 시험을 치르는 학교까지 따라가느라고 그렇지 않아도 출근시간이라 붐비는 교통혼잡을 더하기도 하고(자식이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도록 응원해주며 집에서 기다리면 왜 안 되는가.)-, 시험이 끝날 때까지 교문 밖에서 기도하고 염불하면서 하루 종일 기다리며 덜덜 떨기도 하고, 직장인들 출근 시간이 1시간 연장되고, 듣기 시험에 방해된다고 비행기 이륙이 금지되고, 만약을 대비해 경찰이 대기하고 있다가 시험에 늦는 학생을 실어나르기도 하고... 이 정도면 미친짓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언론에서 이런 뉴스는 제발 그만 접하고 싶다. 올해 역시 이런 뉴스를 접하며 '미쳤군, 미쳤어!'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런 현상들을 비롯해 한국만의 교육현실을 설명하려면 한국만이 가진 환경, 한국만이 처한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게 뭐가 있을까? 우선, 한국사회는 ‘가족주의’가 유난히 강조되는 사회이다.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부재하다 보니 모든 걸 ‘가족주의’에 의존하는 나라답게 학생의 등록금 역시 당연히 가족안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교육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 등록금 문제로 집결된다. 이 등록금 부담의 주체가 누구냐가 바로 한국의 교육을 움켜쥐고 있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은 국가가 학생에게 등록금을 대출해 주고 학생이 졸업후 갚아나가는 방식이거나 거의 전액을 국가가 부담한다. 대학은 그 나라의 앞날을 이끌어갈 인재를 키워내는 곳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국가비용이 개입돼 있지 않고 부모한테만 등록금을 짜낸다. 그러니까,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을 바라보는 시각이 저런 나라들 부모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심히 벌어 자식교육에 투자를 해야하다 보니 부모는 자식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부모에게서 등록금을 지원받는 자식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하다 보니 부모의 인생도 없고 자식의 인생도 없는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된다. 노후복지제도도 개떡같은 나라에서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을 자식교육비에 투자해야하다보니 결국은 자신의 노후보험을 자식한테 드는 셈이 된다. 이게 자신들은 책 한 줄 안 읽으면서도 자식한테는 공부, 공부, 공부를 주문할 수 있는 부모들의 뻔뻔함을 낳는다. 한국 사회가 부모 자신들은 책 한 줄 읽지 않으면서도 자식한테는 입만 열면 공부를 강조하는 부모들에게 관대한 것도 결국은 부모가 교육비를 부담한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 아닐까? 자식의 등록금 문제에서 자유로운 나라들은 학생을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런데도 한국사회는 대입시험제도가 문제의 핵심인양 매번 대학에서 학생을 뽑는 시험방식만 뜯어고친다.
한국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집착과 교육현실은 부모가 등록금 부담의 주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한국 현실에서 국가가 대학등록금을 전액부담하는 방식은 불가능할 것 같고, 미국처럼 국가가 등록금을 대출해주어서 졸업 후 자신이 갚아나가도록 등록금을 부모가 아닌 학생 자신이 부담을 떠안고 다니게 만든다면 지금의 병폐를 낳고 있는 모든 입시교육의 문제는 해결된다. 국가 예산이 딸려 이것도 어렵다면, 학생이 등록금을 벌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던가. 등록금이 부모한테서 나오는 걸 어떻게든 학생 자신한테로 부담을 떠안겨야 한다. 그것만이 교육이 살 길이다. 가진 부모나 못가진 부모나 등록금은 부모의 부담이 아니라 학생 자신의 몫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정작 교육의 주인공들인 학생들의 생각을 배제한 채 사교육에 열올릴까? 등록금이 학생 자신 부담이면 가진 부모를 둔 자식과 못가진 부모를 둔 자식이 교육에서 차별받을까? 등록금을 자신이 감당하는데 공부하기 싫은 학생이 대학에 가려고 할까? 굳이 대학에 가야겠다는 학생들이 줄어들면 교육이 입시위주로 갈까? 그러면, 입학 시험에 목맬 필요도 없어지고, 입학은 누구에게나 개방되는 현실이 되고 졸업이 어려워지는 형태로 갈 수 있고, 어중이떠중이 모두 돈쳐발라 대학에 가서 남까지 공부 못하게 강의 시간 망치는 일도 없을테고, 강의 끝나고 한가하게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시간 낭비하는 학생 줄어들어 젊은 인력낭비하는 일 없을테고, 각자가 자신의 본래의 삶에 열심일 것 아니겠는가. 정말 대학에 가지 말아야 할 사람들까지 가진 부모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에 가는 현실을 막아야 할 것 아닌가. 더구나 졸업이 쉬운 나라니까 학교라는 공장에서 적당히 만들어진 그런 불량품은 출고를 막아야 할 것 아닌가.
여기서 나아가, 교육문제에 열성을 보이는 건 대개가 엄마들이라는 점을 주목해 보자. 한창 일해야할 젊은이로서 일할 의욕이 있고 열정이 있는데, 집에서 살림하고 애낳아 키워야한다는 명목으로 가정에 갇힌 여자들이 그 열정을 주체못해 자식교육에 열 올리는 건 아닐까? 하다못해 학교에서 학생 문제로 부모들 소집을 할 때도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들한테 유리한 시간대에 한다. 직장 다니는 여자들은 소집에 참여하려면 직장을 하루 쉬던가 조퇴를 하던가 해서 참여해야 한다. 이게 시사하는 바가 뭘까?
이 사회가 여성들의 일자리를 창출해서 직장생활참여를 지원해 주지 않는 이상 여자들은 자식한테 집착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문제 역시 등록금 문제처럼 결국 이 사회에서 개인이 개인으로서 바로 설 수 있는 문제와도 얽혀 있다. 우리는 아내는 남편한테, 남편은 아내한테, 자식은 부모한테, 부모는 자식한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될 정도로 일상이 서로의 영역에 침투해 있다. 부모든 자식이든 어른이든 아이든 개인이 개인으로서 온전히 바로 설 수 있어야, 개인에게는 개인의 독립영역이 있음을 자각해야 부모도 자식을 자신들의 소유물, 부속물이 아닌 온전한 인격체로서 바라볼 수 있을 것 아닌가. 자식도 부모에게서 경제적 독립을 해서 스스로 설 수 있다면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하는 인생을 살까? 여성 자신이 남편한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현실이니 자식을 독립시킨다는 걸 어찌 생각할 수 있을까! 자식이 곧 나인 걸!
여기다, 가정을 ‘남편은 밥벌이 아내는 살림’ 이런 역할 논리로 돌리다 보니 남편/아빠가 직장에서 그 늦은 시각까지 야근하는 것도 가능한 거고, 이게 결국 자녀와 얼굴을 대하고 대화하고 소통할 시간을 빼앗아 버린다. 자식과 얼굴조차 마주 대하지 못하는 아빠 뒤엔 자식을 들들 볶는 엄마가 존재한다. 이런데도 주5일제만 하면 모든 사회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호들갑 떠는 걸 보면 그저 암담하다는 생각 뿐이다. 오히려 주5일제는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가장을 둔 가정이라면 여자들의 노동력만 더 높여 줄 뿐인 것을. 주5일제가 급한 게 아니라 ‘9시 출근, 6시 퇴근’ 이런 정시출퇴근제가 정착되어서 6시 이후의 시간을 가정에 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가정이 민주적으로 돌아갈 수 있고, 평소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할 시간이 많아져서 부모와 자식간에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래야 부모도 자식한테 희생하는 삶을 살지 않고 부모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찾아갈 여유가 생겨 자식을 들들 볶지 않을 것 아닌가. (이 부분은 ‘현대 가족 이야기’라는 리뷰 4번 내용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부모들은 공부를 정말 더럽게 안 한다. 책 한 줄 안 읽는데 어디서 자식한테 줄 인간정신 자양분을 얻을 것인가. 자기 자신의 인생이 없는 데다 자식한테 인간정신까지 발휘하지 못하다 보니 자식이 알아서 해야할 부분까지 부모가 일일이 참견하고 간섭하는 걸 자식 사랑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자신들은 책 한 줄 안 읽으면서 자식한테는 입만 열면 공부, 공부, 공부를 외쳐대는 부모들의 현실을 먼저 자각하지 않는 이상 어떤 변화가 있을까? 늦은 시간까지 직장생활하는 남자들은 그렇다치고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들은 도대체 왜 책 한 줄 안 읽는 지... 이러고도 자식 교육에 용감히 뛰어드는 여자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부모가 깨어서 교육정책을 정면 비판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타협을 해나가도 모자랄 판에 이 나라 부모들은 오히려 정부의 교육정책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교육이 잘못되어 있다고 불평한다. 부모 자신들부터 깨어나지 못하면서 정부는 깨어나란다. 부모가 연대해 사교육을 거부하지는 못할망정 없는 집 부모마저도 자식 과외시키지 못하는 걸 부모의 부끄러움으로 알 정도다.
이 모든 일들이 부모 자신들이 내부 성찰을 하지 않고 교육제도탓, 학교탓, 선생님들탓... 탓탓탓으로 돌리니까 생겨나는 문제라는 걸 우리 사회는 왜 인식하지 못할까. 부모들의 자각없는 비판은 오히려 공허한 것 아닌가. 이 점에서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남편이든 아내든, 부모든 자식이든 모두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내 삶을 포기하고 살아야하는 삶의 형태에서 탈출해서 내 자신을 들여다보며 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 때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져 자식도 부모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자면, 부모와 자식 각자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데 있어 걸림돌인 저 위에서 말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적 시각보다는 한국적 가족주의 청산이 오히려 문제 해결에 가까운 접근이라고 본다. 가족주의를 똑바로 직시하자면 가족사랑을 빙자한 국가의 방관, 국가의 폭력을 감지하지 못하고는 불가능하다. 노후복지, 등록금, 육아정책... 이런 모든 것들이 국가가 손을 놓고 ‘가족사랑’이라는 이름을 빙자해 가정에 책임을 떠넘기기 때문이라는 걸 우리 사회가 빨리 인식하고 이 부분에서 접근을 해야한다. 우리 사회가 교육문제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직도 갈팡질팡 헤매는 이유가 바로 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가족사랑을 뒤집어 보면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공생하는 관계라는 점에 눈 뜰 때가 되었다. 교육이라는 건 어차피 일상의 수준을 담아내는 거니까 가정부터 변하지 않으면 학교도 변할 수 없다. 경제위기가 와서 가장이 수두룩하게 실직을 당하는 현실도 가족이 끌어안고 가야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국가의 공적 자금이 개입해야할 문제들 역시 가족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각 가정이 끌어안고 가야하는 문제로 체화하고 살아가는 이상 이 나라에 교육개혁은 없다!!!
국가 기득권이 존립하기 위해 강요하는 이 가족주의는 교육문제를 풀어가는 열쇠이기도 하지만 직업에 대한 개념을 ‘생계유지 수단’으로만 부각시키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남편과 아내, 아빠와 엄마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고 ‘남편은 밥벌이, 아내는 살림’ 이런 역할 논리로만 가정을 돌아가게 하는 현실에서 직업을 자아실현, 사회참여,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자금줄 창구 이런 도구로 보지 않고, 생계유지 수단으로만 보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표면으로 드러난 건 교육문제이지만 결국 우리 사회 총체적인 문제들이 걸린 과제다. 가정에서부터 결혼 생활, 가족의 의미가 제대로 자리잡혀 있지 못한데 학교와 직장은 제대로 돌아갈까? 난 이것부터가 항상 의문이었다.
교육문제도 그렇고 뭐든 우리 현실을 담아내는 문제를 자본주의적 시각으로만 보려고 하는 데서 오히려 우리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문제해결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