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
프랭크 오스키 지음, 이효순 옮김 / 이지북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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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유 영업사원한테, TV나 신문 광고에, TV에 등장하는 의사들한테 우리가 얼마나 세뇌가 되었는지,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사람들에게 우유는 거의 보약이다시피 인식되어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책은 과히 혁명이다.

18살때인가... 검정고시 준비를 할 때 학원에서 수업 시간에 ‘우유가 영양가는 많아서 좋긴 한데 딱 한 가지 나쁜점이 있다. 우유를 마시면 기억력이 감퇴된다.’고 배운 적은 있지만, 우유의 좋고나쁨을 떠나 한국 사람 자체가 우유에 들어있는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인 락타아제가 분비되지 않아 유당에 대한 내성이 없는 비율이 84.7%로 8%인 백인에 비해 월등히 차이가 날만큼 우유와 친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니!!! 이책을 읽기 바로 전에 ‘로버트 S.멘델존’ 의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서도 이 락타아제 결핍율이 언급되어 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우유를 많이 마셔야 칼슘 섭취가 되어 뼈가 튼튼해진다고 배워왔고, 우유광고에서도 그렇게 선전을 하고 있다. 또, 건강을 다루는 방송을 보면 언제나 강조하는 사실 중 하나가 골다공증을 예방하려면 우유를 꼭 마셔야된다는 사실이다보니 우유를 마시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낄 지경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우유는 칼슘이 풍부한 식품인 건 사실이지만 우유에 들어있는 칼슘은 체내에 잘 흡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음식물에 들어 있는 칼슘과 혈액으로 들어가 뼈와 치아로 가는 칼슘 양은 관계가 없다나... 인이라는 성분이 장에서 칼슘과 결합해 칼슘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우유에는 칼슘 : 인의 비율이 2 : 1에 조금 못 미치게 들어 있다고 한다. 모유에는 우유보다 칼슘이 덜 들어있지만 모유를 먹은 아기와 우유를 먹은 아기를 비교해 보면 모유를 먹는 아기가 칼슘을 더 많이 흡수한다고 한다.

예전에,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 중에 우유가 주식이다시피한 종족에 대한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애나 어른이나 하루 먹는 게 거의 우유가 전부이다시피한 이 부족사람들은 뼈가 하도 단단해서 교통사고가 나도 뼈가 잘 부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차와 사람이 부딪힌 현장을 보여준 장면에서 차는 우그러졌는데 사람은 멀쩡한 걸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고 식구들이 놀라워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부족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해야되는 거지? 저자는 <“하지만 의사 선생님, 우유를 마시지 않으면 치아와 뼈는 어떻게 되나요?” 아무렇지도 않다. 어쨌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걸 믿어야 되나...


어떤 포유류도 생후 1, 2년이 지나면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은 엄마의 젖도 아닌 소의 젖을 평생마시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실은 참 아이러니다. ‘송아지만 우유를 마셔야 된다.’ 그러고 보면 이게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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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앨런 피즈 외 지음, 이종인 옮김 / 가야넷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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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능가하는 책이다. 남녀 사이에 관해 쓰여진 많은 책을 손에 잡았었지만 아류작이 많아 이 책도 그런 책일줄 알고 제쳐놓았었는데 이런 책을 왜 이제야 읽었는지... 난 책 한 권을 잡고 끝까지 읽기보다 동시에 5권, 6권을 놓고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동시다발로 돌아가며 읽을 때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 책은 두 번째 장 중반부터는 손을 놓지 않고 읽게 되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모습에서, 내가 만났던 남자들에게서, 이웃에서,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을 수도없이 확인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연신 키득거리며 읽었다. 부모님부터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스쳐갔고,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이렇게 이해하게 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내용도 많았다.


내가 이런 남녀관계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1. 만났던 남자들이 같이 자고 싶어하면서도 왜 내게 좋아한다거나, 당신 생각 많이 했다거나 뭐 이런 감정 고백이 없을까 이게 궁금해지면서부터였다.

난 남자들이 “우리 친구할래요?”/“우리 친구하자”, “우리 만날래요?”/“우리 만나자.”, “우리 데이트할래요?”/“우리 데이트하자.” 이렇게 표현하는 언어를 견디지 못한다. 심지어, 대학에서 심리학 강의를 한다는 남자가 “우리 연애할래?”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서 아주 절망을 느꼈던 때도 있다. 거기다 좀 정중하고 싶어서 그러는지 “만나주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난 정말 돌아버린다. 그런데, 그게 언어주관 기능의 차이때문이라니... 이제 이 부분에 관한 기대는 포기를 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그나마, “우리 섹스할래?” 이렇게 말하지 않은 게 어딘가. ‘템테이션 아일랜드’나, ‘배철러’에서 미국 남자들은 자기 감정 표현을 잘도 하더만...

한국 남자가 사랑고백 언어에 약한 이유는 여자를 자신의 성욕 배설상대로 보거나 여자란 나를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애낳아주고, 시부모 잘 모셔주면 된다는 역할분담에 고정관념을 가진 남자 즉, 자기 감정을 고백하지 못하는 남자일수록 여자를 ‘사랑’이 아닌 ‘수단’, ‘목적’, ‘대상’으로 보기 때문은 아닐까...

 


2. 왜 남자들은 정치, 경제, 사업... 같은 굵직굵직한 문제는 남자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여자인 나를 만나면 성에 관한 얘기만 하려고 하는 지... 이런 머릿속이 궁금해서였다.

나는 대등한 존재로서 존중받길 바랐는데, 남자들은 내게서 ‘여성’이라는 모습만 읽어내려고 했다. 이 여자는 내부모를 얼마나 잘 모실 수 있을까, 음식은 잘 만들까, 내 눈을 얼마나 즐겁게 해줄까... 이런 것만 관심을 보였다. 아니면, 30도 넘은 남자 입에서 밤에 정말 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이나 날아오던가. 가만! 그러고 보니, 유난히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와 이 책이 출판된 나라가 같은 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을까?

남자들이 어떻게 하면 한 번 잘 수 있을까 잔머리 굴리는 걸 보면서 짜증도 나고, 친해질 때까지 ‘섹스’는 집에다 놓고 오면 안 되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이길래 저런 잔머리를 굴릴까라는 생각에 불쾌했던 적도 있고, 남자들은 도대체 왜 섹스 생각밖에 없는 걸까, 왜 그렇게 단순할까 혼자 이런 불평도 하고, 얼마나 하고 싶으면 그렇게 잔머리를 굴려댈까 싶어 불쌍해 보이기도 했었다. 남자의 성욕구가 강하다는 건 어차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본능과 순결이라는 극과 극의 사실을 강조하며 여성을 대상화하는 건 남녀의 차이라기보다 한국의 지독한 가부장적인 정서를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불평할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가졌다는 걸 인정하고, 그 다름을 어떻게 조율해갈까가 관건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는데 뒤집어야겠다. 조율이라는 것도 서로 주체적 존재로 자각하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우위가 정해진 상하, 수직 관계에서는 의미가 없는 말이겠다. 번역본의 한계를 여기서 보고 말았다. 한국 남녀의 눈높이에서 이런 책이 쓰여진다면 분명 이런 점도 고려해서 더 복잡하게 써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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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 2005-02-2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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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동영상판이라고나 할까...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마라
폴라 비가운 지음, 최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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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책을 읽기전까지 난 화장품 장수 말대로 자외선 차단제의 SPF 지수가 높으면 좋은 건줄 알았다. 그런데, SPF 15이면 자외선이 95%정도 차단되고, SPF 30∼50이면 97%정도 된다나... 모이스쳐 라이져는 건성피부가 아니면 바를 필요가 없고, 링클 제품은 주름을 없애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피부노화를 만들고... 기타 등등 화장품에 대한 나의 상식이 많이 깨졌다.

미국 여자들은 화장품을 사면서 어떤 제품에 어떤 성분이 얼마만큼 들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살 수 있나보다. 저자는 줄곧 참고해야할 성분의 양을 제시하는데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화장품에는 성분의 양이 표시되지 않으니 한국 여자들에게는 그냥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한국 사람들 눈높이에서 쓰여진 화장품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긴 했지만, 이책은 세세한 부분까지 정말 적나라하게 분석해 놓았다. 3분의 2가 제품리뷰이다 보니 책두께가 장난 아니다. 저자는 잘못되고 부풀려진 화장품 광고와 마케팅 전략을 비판하면서 미국 화장품 업계와 홀로 싸워나가는 사람이다. 저자가 제공하는 정보는 화장품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소비자에게는 쉬쉬할 뿐이라고 한다. 화장품 업계는 소비자들에게 정작 필요한 정보는 함구하고 화장품을 팔아먹기 위해 좋은 점만 강조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화장품 회사에 충성하는 돈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화장품 광고에 길들여져가고 있는 지 처절하게 깨달을 것이다.

한국 여자들이 유난히 화장이 두꺼운 이유가 혹시 화장품 정보의 무지에서 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화장을 해야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기보다는 진한 화장과 섹시함이 무식함, 천박함, 가벼움, 부화뇌동의 소치라는 편견에 더 사로잡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쓰는 화장품이라고해봐야 고작 스킨과 로션뿐이다. 한때는 화장품 장사한테 속아서 에센스에 영양크림, 마사지크림, 팩, 자외선 차단제까지 사다 썼다. 지금도 팩과 자외선 차단제가 두어가지씩 있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있지만 딱 스킨과 로션만 바를 뿐이다. 근데 사람들은 내가 무슨 화장품을 쓰길래 그렇게 피부가 좋으냐고 물어본다. 물론 화장품을 사러가면 피부가 많이 상했다느니, 눈가에 주름이 생기기 전에 아이크림을 써주라느니, 데이크림이랑 나이트 크림을 구분해서 써줘야 피부가 좋아진다느니, 색조화장을 하지 않는 걸 두고 아가씨가 가꿀줄도 모른다느니... 일장 연설을 많이 듣는다. 내가 알지 못하면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를 그대로 신뢰하게 된다. 화장품 장사가 하는 말 역시 내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화장품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화장품 장수가 얼마나 뻥을 많이 치는지 파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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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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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혼해서 철든 아줌마들의 푸념식 일상 얘기, 아니면 지극히 학술적인 수준을 넘지 못하는 많은 한국 페미니즘, 아니면 주체를 모호하게 해서 현상만 분석, 지적하고 끝내는 서적에 싫증을 느껴가면서 오히려 열심히 쏟아지는 번역판 서양페미니즘 서적에 거부감이 들었다. 왠지 악을 쓰듯 최후의 발악을 하는 듯한 한국 여자들이 쓴 책과 여유있고, 깊은 성찰에서 나오는 훨씬 성숙해 보이는 그네들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책이 묘한 대조가 되어서 허탈한 마음에 눈물을 짜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책에서 그 허탈함의 실체가 잡혔다. 바로, "그저 자기가 희생되는 것에 대한 울분과 적의를 풀어놓는" 이 부분. 많은 한국 페미니즘 서적을 읽으며 내가 불편했던 감정이 바로 이 한줄에서 정리가 되었다. 자기 남편과 시부모 앞에서는 풀어내지 못하던 감정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그렇게 풀어낸 책들이 불편했던 거다. 물론 결혼한 여자들끼리야 맞아맞아 나도 그래 하면서 맞장구 칠 내용들이겠지만 나로선 감당하기 짜증나는 책들이었다. 물론 그런 책에서도 부분부분 얻을 내용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인 코드는 울분과 분노와 적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데에 실망을 하게 되는 거였다. 처음엔 별 개념이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손에 잡히는 여성학관련책에 대한 인상이 이렇게 굳어져 가고 있다.

이것 말고도 내가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이 책에서 의문이 많이 풀렸다.

저자는 어쩌면 그렇게 예리한 지 읽는 내내 가슴에 와닿는, 말그대로 ‘행복한 페미니즘’이었다. 인종문제를 뺀다면 이 책에서 말한 내용들은 한국 페미니즘에서도 역시 고민해야할 문제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계급의 차이’가 미국에서는 ‘인종차별’로, 한국에서는 빈부의 계층 문제로 나타난 것뿐, 넓은 의미에서 보면 ‘계급의 차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한국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 전반적인 구조적 문제를 보지 못하고, ‘여성’이라는 코드만을 읽어내는 우마저 보인다. 여성 자신을 자각하지 않은 채 언제나 남성, 사회, 가부장제 탓이라고만 외쳐대는 페미니즘이 회의가 든다. 여성 자신이 아닌 남성 때문이라는 그 ‘때문에 페미니즘’만 난무하고, ‘(~에도)불구하고 페미니즘’ 즉, 반기를 들지 않았던 여성의 모습을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서 한국페미니즘에 별 희망이 없어 보인다. 여성은 피해자이기만 할까? 남성은 가해자이기만 할까?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사랑은 이성이 있어야 이루어지듯 모든 현상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한국사회가 남자만의 잘못으로 가부장제가 되었다면 도대체 여성은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었단 얘긴가! 스스로 일상에서 성차별과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적응해가는 여자들이 오히려 가부장체제를 오히려 더 공고히 했던 건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점에서 난 한국여성운동에 관심이 식어버렸다. 여성을 '피해자'로, 남성을 '가해자'로 설정하고 출발하는 페미니즘에선 여성 스스로 가부장적 사고를 체화하고 살아가는 여자야말로 마초에 버금가는 가부장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존재라는 점은 고찰 대상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성차별적 사고와 행동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여자야말로 위협적인 존재라는 점은 남자를 적으로, 가해자로 설정하는 페미니즘에서는 고찰대상이 아닌 것이다. 내가 이런 걸 지적할 때마다 굉장히 불편해 하는 여자들을 많이 보았다. 심지어 남자에게서 들었던 욕보다 더 심한 욕까지 얻어먹은 적도 있다. 페미니스트라고 자부하는 여자의 입에서 나온 “입닥쳐!”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다.


주목해 볼 사항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내 관심을 끈 내용은 바로 이 부분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쳐 주는, 대중적 기반의 교육 운동을 창출해 내지 못함으로써 우리는 주류의 가부장제적 매스미디어로 하여금 우리 이웃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하여 부정적인 것 일색으로 학습시키도록 방조한 셈이 되었다. 벨 훅스 가 미국 페미니즘을 이렇게 염려했다시피, 모든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아닌 페미니스트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버린 한국 페미니즘 역시 이 점에 고민이 필요하다.

벨 훅스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남자들이 페미니즘의 기치를 들고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지구에서의 삶이 안전성과 지속성을 가지려면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 남자들은 페미니즘이 자신들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할까? 이 물음이 남자에게만 던져져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성이 일상에서 반기를 들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적응해 갈 게 아니라 여성 각자가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여성은 깨어나지 못하면서 남성을 깨우려는, 남성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건 박자가 맞지 않는 일이니까. 여성의 일상에서 ‘때문에’라는 언어를 거두어내면 여성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벨 훅스도 진정한 페미니즘을 실천하려면 자기의 내면화된 성차별주의와 우선적으로 맞닥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인지와 관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사랑은 인정과 돌봄과 책임과 헌신과 지식을 결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는 정의가 없는 곳에 사랑이 있을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이해를 통하여,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지배에 반대할 힘을 준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페미니스트 정치학을 선택하는 것은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진짜 사랑을 실천하는 남녀라면 페미니즘을 빼놓고 사랑을 얘기할 수 없다. 나는 여자든 남자든 페미니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진짜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여러번 다룬 ‘페미니즘 이론: 주변에서 중심까지’라는 책이 검색되지 않는 게 좀 아쉽다. 최근에 나온 ‘사랑의 모든 것’이란 책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이 책도 당장 주문해야겠다. 원서로 소장하고 싶은데 원서를 구하지 못해 아쉽다. 이 좋은 책을 도서관에서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다 이제야 손에 잡은 게 후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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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 2005-01-2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주문해야되는데 '품절'이다.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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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별표 하나를 깎은 이유이다.

도서관 싸이트를 검색해 보니 이 책이 자그마치 세 권이나 뜨는 거였다. 웬만한 신간은 신청해서 1∼2달을 기다려야 읽어볼 수 있는 도서관 사정에 비하면 이 책의 소장 권수는 ‘법은 도서관에서도 대접을 받는군!’ 이런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리고, 웬만한 신간은 달랑 한 권 소장해 놓으면서, 이 책은 도대체 왜 두 권도 아니고 어떻게 세 권이나 소장되었을까가 자못 궁금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갈수록 곧 나의 간사한 마음을 드러내게 했다. ‘이런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으라고 많이 소장해 놓은 걸 거야. 그래서 두 권은 대출 중이었고 마지막 남은 한 권을 내가 빌려올 수 있었던 거잖아. 달랑 한 권 소장해놓았으면 나한테 오기까지 대체 몇 주를 기다려야 되는거야?’ 반납연기를 감안하면 족히 한달은 기다려야 했을 거다.

아침에 일어나 이책을 붙잡았다가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등산 가려던 계획도 포기하고 그냥 끝까지 읽었다. 조금 있다가 가야지, 조금 있다가 가야지 하던 게 후반부로 갈수록 책에 빨려들어가게 만들어 집을 나서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나 역시 이 책의 감동을 늘어놓으려 했는데 여기 올라온 수많은 글을 보고 나는 이책에서 아쉬웠던 점이자 내가 궁금했던 점을 위주로 쓰기로 생각을 바꿨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사를 제외하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난 이후부터 접근하고 있는데 사법개혁방안을 얘기하면서 왜 사법시험제도에 대한 얘기는 언급을 안 했을까가 내내 궁금했고, 또 하나는 로스쿨이 도입되면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로스쿨 입학시험 준비생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개혁의 막을 내리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이 전국에 도입되어 개별 학교별로 사법연수원을 대체할 법학 전문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최소한 법학 교육의 다양성만은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본다고 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얘기를 전개하기 위해 개인사를 하나 꺼내야겠다. 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배낭여행이 가고 싶어 그럴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건 포기하고 공장에서 여행비를 벌어서 배낭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공장에 들어갔다. 물론 여행을 다녀오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지만 막상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 시험 준비에 들어갔을 때는 이제는 하고 싶지 않은 무식하게 외워대기만 하는 공부방식에다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로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한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껴 그만두었는데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고는 담쌓고 살았던 시간을 벌어볼까 해서 공무원 시험준비 학원에 등록을 했었는데 나를 비롯해 거기 온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대학을 졸업했으면서 왜 이 많은 사람들이 따로 취직공부를 해야할까, 다른 문제도 아니고 행정을 건드리면서 과연 외워대기만한 지식으로 현장에 투입된다고 해서 일반인들 피부에 가닿을 만큼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거기다 군가산점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여러 논쟁들을 지켜보면서 공무원 시험을 행정학과 출신만 치르게 하면 가산점 논쟁이 나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시 준비하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그들이 사시를 무슨 신분상승 수단으로 여기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어 법대와 법대생들, 사시준비생들을 좀 달리 보게 되면서 사법시험제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법시험만 통과하면 인생 활짝 핀다는 의식이 법대 출신이건 비법대 출신이건 졸업후에도 사시에 매달리게 한다. 만약 사법고시도 법대생이 아니면 치를 수 없게 제한하고 아니 제한할 필요도 없이 교육내용 자체가, 의대를 다니지 않으면 의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법대생이 아니면 사법시험에 도전할 엄두도 못내게 되어 있다면 고시준비생들이 로스쿨을 도입한다고 해서 사시준비하던 것에서 방향을 틀어 로스쿨 입학시험 준비생으로 전환할까? 개나소나 마음만 먹으면 도전할 수 있는 각종 시험제도를 비롯해 사시제도는 젊은 인력을 학원에, 도서관에, 고시원에 가둔다. 취직을 하려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따로 취직공부를 해야한다는 현실은 그만큼 국가가 젊은 인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증거고, 교육이 그만큼 죽어있다는 얘기다. 

사실 저자가 지적한 우리 법조계의 수많은 문제들은 저런 교육과정을 거쳐 걸러지지 않고, 시험만능주의 그것도 억지로 머리에 구겨넣은 백과사전식 지식 나열 시험이 낳은 결과 아니겠는가. 변호사, 판사, 검사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검증하는 데 있어 사법시험을 빼고 얘기하면서 사실은 이래이래야 하는데 그들은 왜 그러지 못하는가라는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근본을 건드리지 않고 열매만 튼튼하길 바라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사법제도가 아닌 법대 교육과정개혁, 사시제도개혁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언론이고, 행정이고, 법이고 시험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시험만능주의는 좀 지양되고, 아니 시험을 치루되 머리에 구겨넣은 백과사전식 지식 나열이 아닌 ‘실제’를 다룬 교육내용을 바탕으로 진짜 시험으로 승부할 수 있게 책을 가지고 들어가서 시험을 치러도 떨어지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시험이 출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학교교육이 창의력과 창조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면 머리에 든 지식을 바탕으로 적용만 하면 끝나는 의사, 변호사/판사/검사라는 직업보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직업세계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져 정말 법에 뜻이 있는 사람,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말고는 사법시험에 몰리는 일이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시 준비생들 이 이 말에 발끈하면 어쩌나...

이렇게 비판을 하긴 했지만 책을 사서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법에 무지한 나로서는 많은 공부가 된 책이다. 뉴스에 보도되는 내용 중에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도 꽤 있는 걸 보면 시청자들은 옳지못한 일에 저항하는 저항감마저 잃어버린 거 같다. 뇌물유혹이 있었을 때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검사직에 염증을 느꼈다고 한 부분에서 마음을 비우고, 심지가 곧고, 순수한 사람이 아니면 이런 책이 나올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직업세계를 통렬히 비판하는 이런 책이 법 분야 말고 교육에 몸담고 있는 대학교수 사회, 정치, 군대... 등 각 분야에서 쏟아져 나온다면 한국사회가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지식은 있어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의 지식은 오히려 타인을 휘두르는 독이 된다. 이 말은 지금 한국사법계를 이해하는데 그리 무리가 없는 말일거다. “변호사, 판사, 검사라는 직업을 객관적으로 볼 줄 모르는 사시 합격자들은 다 나가 뒈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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