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앨런 피즈 외 지음, 이종인 옮김 / 가야넷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능가하는 책이다. 남녀 사이에 관해 쓰여진 많은 책을 손에 잡았었지만 아류작이 많아 이 책도 그런 책일줄 알고 제쳐놓았었는데 이런 책을 왜 이제야 읽었는지... 난 책 한 권을 잡고 끝까지 읽기보다 동시에 5권, 6권을 놓고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동시다발로 돌아가며 읽을 때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 책은 두 번째 장 중반부터는 손을 놓지 않고 읽게 되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모습에서, 내가 만났던 남자들에게서, 이웃에서,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을 수도없이 확인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연신 키득거리며 읽었다. 부모님부터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스쳐갔고,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이렇게 이해하게 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내용도 많았다.


내가 이런 남녀관계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1. 만났던 남자들이 같이 자고 싶어하면서도 왜 내게 좋아한다거나, 당신 생각 많이 했다거나 뭐 이런 감정 고백이 없을까 이게 궁금해지면서부터였다.

난 남자들이 “우리 친구할래요?”/“우리 친구하자”, “우리 만날래요?”/“우리 만나자.”, “우리 데이트할래요?”/“우리 데이트하자.” 이렇게 표현하는 언어를 견디지 못한다. 심지어, 대학에서 심리학 강의를 한다는 남자가 “우리 연애할래?”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서 아주 절망을 느꼈던 때도 있다. 거기다 좀 정중하고 싶어서 그러는지 “만나주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난 정말 돌아버린다. 그런데, 그게 언어주관 기능의 차이때문이라니... 이제 이 부분에 관한 기대는 포기를 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그나마, “우리 섹스할래?” 이렇게 말하지 않은 게 어딘가. ‘템테이션 아일랜드’나, ‘배철러’에서 미국 남자들은 자기 감정 표현을 잘도 하더만...

한국 남자가 사랑고백 언어에 약한 이유는 여자를 자신의 성욕 배설상대로 보거나 여자란 나를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애낳아주고, 시부모 잘 모셔주면 된다는 역할분담에 고정관념을 가진 남자 즉, 자기 감정을 고백하지 못하는 남자일수록 여자를 ‘사랑’이 아닌 ‘수단’, ‘목적’, ‘대상’으로 보기 때문은 아닐까...

 


2. 왜 남자들은 정치, 경제, 사업... 같은 굵직굵직한 문제는 남자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여자인 나를 만나면 성에 관한 얘기만 하려고 하는 지... 이런 머릿속이 궁금해서였다.

나는 대등한 존재로서 존중받길 바랐는데, 남자들은 내게서 ‘여성’이라는 모습만 읽어내려고 했다. 이 여자는 내부모를 얼마나 잘 모실 수 있을까, 음식은 잘 만들까, 내 눈을 얼마나 즐겁게 해줄까... 이런 것만 관심을 보였다. 아니면, 30도 넘은 남자 입에서 밤에 정말 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이나 날아오던가. 가만! 그러고 보니, 유난히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와 이 책이 출판된 나라가 같은 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을까?

남자들이 어떻게 하면 한 번 잘 수 있을까 잔머리 굴리는 걸 보면서 짜증도 나고, 친해질 때까지 ‘섹스’는 집에다 놓고 오면 안 되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이길래 저런 잔머리를 굴릴까라는 생각에 불쾌했던 적도 있고, 남자들은 도대체 왜 섹스 생각밖에 없는 걸까, 왜 그렇게 단순할까 혼자 이런 불평도 하고, 얼마나 하고 싶으면 그렇게 잔머리를 굴려댈까 싶어 불쌍해 보이기도 했었다. 남자의 성욕구가 강하다는 건 어차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본능과 순결이라는 극과 극의 사실을 강조하며 여성을 대상화하는 건 남녀의 차이라기보다 한국의 지독한 가부장적인 정서를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불평할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가졌다는 걸 인정하고, 그 다름을 어떻게 조율해갈까가 관건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는데 뒤집어야겠다. 조율이라는 것도 서로 주체적 존재로 자각하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우위가 정해진 상하, 수직 관계에서는 의미가 없는 말이겠다. 번역본의 한계를 여기서 보고 말았다. 한국 남녀의 눈높이에서 이런 책이 쓰여진다면 분명 이런 점도 고려해서 더 복잡하게 써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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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 2005-02-2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cheramia.net/board/view.php?id=bbs6&no=212

이책의 동영상판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