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에티쿠스 - 윤리적 인간의 탄생
김상봉 지음 / 한길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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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 왜그리 어렵고 껄끄러웠던지 모른다. 소피스트로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철학자들을 일일이 검토한 적은, 솔직히 없었다.

이 책은 서양 철학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은 '이야기책'과도 같다. 저자가 옆에 앉아 나지막하게 들려주듯이 모든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친근하게 풀어주기 때문에, 서양 철학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간단히 해결해준다. 철학 이야기가 왠지 따분하고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은 후에 그런 생각이 당장에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읽으면 읽어갈 수록 점점 더 흥미가 생길 것이다.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을 훑어가다가 스피노자, 흄을 거쳐 칸트에 이르고 보면, 이제 앞으로 남은 삶을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우리의 생각을 그 곳에까지 이르게 하는 안내서와도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철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학문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철학책들을 더 찾아보고 싶어졌다. '생각하며' 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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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직동 보림 창작 그림책
한성옥 그림, 김서정 글 / 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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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동네를 지나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잡은 산동네를 종종 기웃거렸다. 열려있는 현관문, 골목을 뛰어 돌아다니는 아이들, 햇빛을 찾아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노인들... 그 모습들을 이방인처럼 훔쳐보곤 하였다.

그들의 모든 모습들이 여과 없이 내게 다 보여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나에게 마음까지 열어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끝내 아무와도 친해지지 못 했다. 그리고 내가 그 동네를 오르내리는 것이 혹여 그들을 '구경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죄책감에, 어느 순간 그 동네에 가는 일을 그만 두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초등학생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 동네는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예전에 내가 좀더 용기를 냈었더라면 그 동네의 누군가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리하여 마음을 나누고 가까워질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아쉽고 안타깝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았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한참을 울었다. 어릴 때 그 동네를 오르내리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도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추억이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할 것인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편리함과 돈의 논리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많은 동네들을 기억하기를,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았던 더 많은 이들의 삶의 모습들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등학교 3학년인 내 아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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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길벗어린이 문학
우메다 슌사코 글, 우메다 요시코 그림, 송영숙 옮김 / 길벗어린이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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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이들에게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문제였다. 다들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르는 체 눈을 감거나, 적극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찾지 못 해 방황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러한 문제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 책은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바라보기만 할 뿐, 나서지 못 한 채 방관하는 아이의 입장에서 쓴 동화이다.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많은 동화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동화도 결말을 전학으로 처리한 점이 무척 아쉽다. 그렇지만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왕따를 당하는 아이 뿐만 아니라 왕따를 시키는 아이의 내면도 같이 들여다보게끔 해 주고 있다.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아이는 무슨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 그리고 그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어떠한 다른 해결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 이 동화가 우리에게 묻는 또 다른 질문이다.

흑백으로 처리한 그림도 눈여겨 볼 만하다. 특히, 선생님이나 학부모의 입장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수작이므로,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어른들의 몫이 무언가 더 있을 듯도 한데, 그 방법을 더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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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빨간 외투 비룡소의 그림동화 75
애니타 로벨 그림, 해리엣 지퍼트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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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아이들은 음식도 옷도 너무나 쉽게 얻는다. 아니,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전에, 부모는 모든 것들을 들이민다. 부족하다고 느낄 겨를조차 없다. 여럿이 나누고, 참고, 기다리는 일에는 익숙치 않은 것이 요즘 아이들의 현실이다. 부모 세대가 아무리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다.

 그래서인지 물자는 풍요로워졌지만 마음은 여유가 없다. 빈곤하기 이를 데 없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양보하고 기다리는 일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자신만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로만 자라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책은 정신이 빈곤한 요즘 아이들에게 읽혀주고 싶은 책이다. 물질은 빈곤할지 모르나, 어머니와 이웃들과 함께 외투 하나를 얻기 위해 참고 기다리는 안나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마음의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그림도 아주 예쁘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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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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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르 마라이'라는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는 분명 아니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엔 당신의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내가 왜 아직 몰랐던가!'하며 무릎을 칠 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흙 속의 진주처럼 이제서야 찾게 된 '보석'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러했다.

요즘처럼 이야기꾼은 넘쳐나지만 진정한 작가를 찾기 힘든 때에, 우연히 사서 읽게 된 <열정>은 책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소설책이지만, 철학책을 읽는 느낌마저 안겨주는 작가는 흔치 않다. '산도르 마라이'는 바로 그 '흔치 않은 작가'인 듯 하다. 사회상을 알려주고 시대의 흐름을 알려주는 '이야기'는 많다. 재미있고 슬프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많다. 요

즘 크게 유행하고 있는 인터넷 소설이나 서점가에 즐비한 소설들이 거의 그렇다. 작가들은 모두 이야기 짓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게, 독자들이 눈을 돌리지 못 하게, 신경을 자극한다. 숨차게 이야기를 몰아간다. 재미있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나면 가슴 속 깊이 남아야 할 그 무엇이 좀 부족한 듯 하다. 아쉽고 허전하다.

그런데 이 <열정>은 좀 다르다. 작가는 이야기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풀어놓는다. 이야기 보따리의 매듭을 끌러놓지도 않은 채, 손을 보따리 속에 집어넣고 조금씩 조금씩 손아귀에 잡히는 대로 끄집어내어 보여준다. 주인공들의 내면을 현미경 놓고 들여다 보듯이 깊숙히,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다 설명하는 듯 하면서도 독자의 몫은 정확히 남겨둔다. 바로 그런 점이 책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두 청년의 성장과 한 여인의 이야기로 간단히 이야기할 수도 있는 소설이지만, 이토록 인간의 내면을 깊이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작가만이 가진 역량일 것이다. 진지한 성찰과 깊이를 가진 '고전'이다. 나이가 먹어도 예전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펼쳐들게 된다. 새롭게 나오는 소설은 차고 넘치지만, 고전을 두고두고 읽는 까닭은 고전만이 가진 진정한 인간의 모습과 작가의 살아 숨쉬는 철학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안타깝게도 진지한 작품이 드물다. 예의와 품위를 지키려는 소설도 드물다. 뼈아픈 고뇌가 보이는 소설도 드물다. <열정>은 진지하다. 그래서 반갑다. 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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