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직동 보림 창작 그림책
한성옥 그림, 김서정 글 / 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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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동네를 지나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잡은 산동네를 종종 기웃거렸다. 열려있는 현관문, 골목을 뛰어 돌아다니는 아이들, 햇빛을 찾아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노인들... 그 모습들을 이방인처럼 훔쳐보곤 하였다.

그들의 모든 모습들이 여과 없이 내게 다 보여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나에게 마음까지 열어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끝내 아무와도 친해지지 못 했다. 그리고 내가 그 동네를 오르내리는 것이 혹여 그들을 '구경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죄책감에, 어느 순간 그 동네에 가는 일을 그만 두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초등학생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 동네는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예전에 내가 좀더 용기를 냈었더라면 그 동네의 누군가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리하여 마음을 나누고 가까워질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아쉽고 안타깝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았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한참을 울었다. 어릴 때 그 동네를 오르내리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도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추억이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할 것인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편리함과 돈의 논리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많은 동네들을 기억하기를,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았던 더 많은 이들의 삶의 모습들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등학교 3학년인 내 아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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