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오리진 - 전2권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은 댄 브라운의 책이 『다빈치 코드』였기에, 나는 그를 『다빈치 코드』의 작가로 기억한다.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그렇게 기억하는 모양이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재미있었다”는 인상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글쓰기 수업 수강생이 독후감을 써올 책으로 선정했기에 같이 읽어보았다. 단적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량에 비해 건져낼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생명의 탄생과 인류의 미래를 예측했다고 주장하는 유명 IT기업가가 자신의 예측결과를 공개하는 프리젠테이션 행사 도중에 살해당하고, 『다빈치 코드』의 주인공인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이 그 결과를 다시 세계에 공개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 책에서 줄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엄청난 이야기가 숨겨져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고, 1권을 다 읽어나갈 무렵이면 뒤에 펼쳐질 내용이 대강 예상된다. 몇몇 부분은 작가가 큰 반전을 의도했던 것 같기도 한데, 아쉽게도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다. 설정 충돌이 의심될 정도로, 몇몇 캐릭터의 능력치가 들쭉날쭉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기에 자세하게 풀어놓을 수는 없으나, 하나는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랭던이 기호학의 전문가라는 설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결코 들지 않는다.


소설 속 세계에서 아주 대단한 것이라고 간주되는 그 예측결과도 별 것 아니다. 기술발전에 대한 별 근거없이 편향된 입장의 아주 얄팍한 반복일 뿐이다. 포스트 휴먼이니 트랜스 휴먼이니 하면서 이미 몇 년 전부터 현실세계에서 거론되던 담론이, 이 소설에서 다루는 범위보다 훨씬 더 풍부하게 형성되어있다. 그래서, 적어도 내겐, 신기할 것이 없었다.


그 예측결과가 별 것 아니라는 점이 내 입장에선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두려움과 놀라움의 크기가 소설 속 세계의 분위기 그리고 사건의 발단/전개/절정/결말 모두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소설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신선한 시각을 기대하던 나로서는, 결말 부분이 너무나도 허탈했다. 겨우 이 정도 견해 때문에 사람들이 그토록 난리를 겪는단 말인가? 배경이 1990년대나 2000년대라면 그래도 이해를 하겠으나, 소설 속 세계는 사람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우버 택시를 이용하는 그런 곳이다. 이런 세상에서 기술에 대한 낙관주의와 과학에 대한 신뢰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호응을 받는다는 것도, 위협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나 덧붙일 내용도 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생명의 기원에 관해서 이 책에서 다루는 학설은 현재 소수의 지지만을 받는 비주류 입장이 되었다. 이 소설 안에서는 이상한 아이디어 취급을 받는 판스페르미아 가설, 즉 대충돌 시기에 우주에서 생명의 원초적 형태(유기화합물)가 날아왔다는 설명을 오히려 신뢰하는 과학자도 있다(이 부분에 관해서 나는 이정모의 『공생 멸종 진화』, 그리고 과학 팟캐스트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참고했다). 물론 이런 연구결과가 소설이 집필되는 도중 나왔다면, 그것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이런 디테일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소설을 집필하는 데 도움을 준 “과학 자문”의 이름도 감사의 말에서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요약하자면, 이야기 전체의 중추를 이루는 소재, 즉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잘 구성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반적인 긴장감이 너무 떨어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답을 찾으려 하기보단, 혼자서 생각해보거나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더 나을거라 생각한다. 우리에겐 이런 문제에 훌륭한 대답을 해주는 소설과 영화가 이미 많이 주어져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