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말하다 - 무엇이 나를 인간답게 만드는가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4
라르스 스벤젠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쓰인 것처럼, 자유는 어쩌면 사람들 사이에서 결코 합의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 단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몇 가지 이론으로 자유를 정식화할 필요가 있다. 자유는 우리의 존재의 의미를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감각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도덕적/정치적 삶의 토대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정식화가 틀어지는 순간, 우리의 삶 전체는 형이상학적/도덕적/정치적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철학자들이 자유의 의미와 그 가능성/한계를 탐색했다. 이 책은 철학의 역사 속에서 이뤄졌던 수도 없이 다양한 접근을 압축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내용들이 아주 간단한 몇 가지 개념과 논증으로 축약된 탓에, 천천히 뜯어서 보지 않으면 의식의 옆길로 새기가 십상이다. 


이 책의 특별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의식을 탈출시키는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책의 초반인 “자유의 형이상학” 이다. 우리는 자유에 관해 다룰 때 대체로 정치적 자유, 표현의 자유, 행위의 자유와 같은 도덕적인 부분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행위가 일상적 감각과는 달리 “진짜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면, 도덕적/정치적 자유에 관한 논의는 무의미해진다. 양립가능론이나 자유의 의미에 관한 “형이상학적”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초반부가, 자유에 관해 다루는 다른 여러 책에 비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체로 나는 저자의 논지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저자는 형이상학적인 의미에서 자유지상주의자다. 즉, 그는 세계의 구조가 비결정적이라고 믿으며 그래서 인간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유가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철학자다. 그에 관한 논증을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도 인지하고 있듯이, 나는 이 둘의 논리적 연결고리가 그렇게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세계가 결정론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면 내 의지의 자유는 별 의미가 없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생길 가능성이 언제든 열려 있으며, 그래서 세계가 비결정적이면 우리는 “실제로”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자유로운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그래서 양립가능론자다.


또 스트로슨의 반응적 태도/객관적 태도에 관한 논의는, 천천히 뜯어보면 칸트의 예지계/현상계 구별 논의의 변형이라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형이상학적 자유지상주의자인 저자는 객관적 태도의 가능성 자체에 의심을 품고, 도덕적 피드백의 세계를 구성하는 반응적 태도에 관한 논의에 우호적이다. 역시나 그와 생각이 다른 나는, 우리가 감지하는 세계는 어쩔 수 없이 객관적 태도 하나로만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즉, 반응적 태도를 취한다고 해서 세계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반응적 태도는 “전적으로” 내면의 상황일 뿐이다.


책의 2부에 해당하는, 자유의 정치적 의미에 관해서 아주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도 꽤 볼만한 부분이다. 그는 이 부분에서도 자유지상주의자의 입장을 취한다. 위에 쓴 형이상학적 자유지상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여기에서는 (같은 영어단어이긴 하지만 한글 글쓰기의 편의상) 정치적 자유지상주의자를 가리킬 때 리버테리언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한다.


같은 자유주의자로 분류되지만, 대체로 철학의 전통에서 다루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롤즈식이다. 특히 그의 초기 대표작인 <정의론>에 기반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거론된다. 이 전통은 리버테리언 전통과는 아주 다르다.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권리 개념을 중심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자유주의에 같이 속하긴 하지만, 롤즈 계열은 대체로 평등주의적 측면을 훨씬 더 강조하며 기회의 “완전한”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을 역설한다. 뭐, 써놓고 보면 그럴듯하지만 사실 진부한 논의다.


본인이 리버테리언 즉 반-롤즈 주의자인 탓인지, 이 책에서 오히려 반-롤즈 진영의 논의와 <정의론> 이후의 더 최근의 논의가 다뤄진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공화주의라든가, 경제학적 관점에서의 접근, 센-누스바움의 역량 이론이라든가 (이 책에서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로 명명된) 올해 노벨상 수상자인 세일러의 넛지 이론이라든가 같은 것들이 그렇다. 물론 이들 모두 긍정적인 시선에서 다뤄지지는 않는다. 공화주의자들의 자유 개념은 실제로는 완전히 자유와 반대라거나, 아닌 척 하지만 세일러의 넛지 개념은 완전히 개입주의적이라거나 하는 식이다.


역시나 나는 그와 생각이 다르다. 공화주의자들의 자유 개념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그것이 메인 컨셉이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도 줄곧 갖고 있다). 또한 넛지 식의 캠페인은, 사람들의 선택권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그것은 개입조차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효과적인” 캠페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다.


최근의 한국에서 이슈가 되는 내용도 들어있다.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에 관한 논의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다른 챕터의 논의에 간략하긴 하지만, 강경한 리버테리언의 입장에서 이 이슈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를 잘 볼 수 있다. 그는 프라이버시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원초적 권리라는 점에서 그 영역이 넓은 것이 좋다는 생각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표현의 자유에 관해서는 도덕입법을 우려해 표현만으로 처벌을 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이 두 가지 문제는 자유주의자의 입장에 섰을 때 아주 까다로운 문제이긴 한데, 저자의 입장이 확실히 개별 이슈에 있어서 논리적으로 깔끔하다는 생각은 한다. 다만, 무형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프라이버시 이야기에서는 언급하면서, 무형의 위협이 주는 마음의 상처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만 하면 해결된다는 식으로 표현의 자유 처벌 반대 논증이 전개되는 것은 약간 갸우뚱한 부분이긴 했다.


어쨌든 이 책에 관한 내 결론은 이렇다. 정치적 자유에 관해 이 이상으로 많은 논의들을 책 한 권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거의 모든 내용을 아주 간단한 터치만으로 넘어가는 탓에, 빽빽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서술 속에서 소개된 학자들의 이름을 기억해두고 각주와 참고문헌의 숲을 하나씩 헤쳐나간다면, 조금 더 넓은 자유를 조망하는 눈을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처럼 “온정주의(후견주의, parternalism)가 판쳐서 무엇이 내 권리인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되어버리는” 한국 사회라면, 때로는 리버테리언들(그리고 형이상학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논리적으로는 정교한) 논의도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만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 생각과는 완전히 반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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