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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의 별 헤는 밤
이명현 지음 / 동아시아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펼쳐들고 몇 페이지 읽어내려갔을 무렵, 가장 처음 들었던 느낌은 아쉬움이다. 표지에 있던 “감성이 흐르는 우주산책”이라는 홍보용 문구를 보고 예상했어야 했던 것일까? 이 책은 정보를 주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 같지 않았다. 별 이야기보다는 별과 관련된 작가 자신의 이야기 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작가와 비슷하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의 이야기에 딱히 공감이 가지 않았다. 별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중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하늘에도, 오로지 달 뿐이었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의 첫인상은 그래서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작가에게 주어졌을 커뮤니케이터로서의 고민과 책을 대하는 내 태도 사이의 불협화음이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 어쨌든 더 자세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 계속 눈에 밟혔다. 오히려 별 이야기가 사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한 은유로서 등장하는 느낌? 또는 그 반대? 하지만 내 바람대로 책이 쓰였다면, 아마 이것은 감성 에세이도 아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선사할 천문학 책이 되었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뜻밖에도, 심드렁함이 사그러들고 이상한 기분이 드는 순간이 찾아왔다. 대충 80페이지 언저리, 오리온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있다가, 노래가 생각났다. 밴드 W의 [Stargazer]라는 노래였다. 많이 좋아했던 노래여서 가사와 멜로디가 모두 떠올라 책에 눈을 붙이고 있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잠깐 쉬는 겸 노래를 들어보기로 했다. “붉은 전갈 안타레스 끈적이는 입맞춤 너는 떨며 눈을 감았지.” 그러고보니 이 밴드는 우주 비슷한 것에 관한 이야기로 가사를 종종 쓴다. 다음 곡은 “수많은 마음과 마음이 부딪혀 흐르”는 “빛나는 은빛 별들의 바다”를 달린다는 [은하철도의 밤]이었고, 그 다음 곡은 “별보다 더 빛나는” 너를 바라본다는 [Stardust]였다. 어라?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별에 관한 말 중에 내 가슴에 가장 깊게 남아있는 말은, 넥스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가사다. “저 하늘의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 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같은 앨범에 [별의 시]라는 노래도 있다. “희망은 몹시 수줍은 별 구름 뒤에만 떠서 간절한 소원을 가진 이조차 눈을 감아야만 보이네.” “혜성을 보면 내 사랑을 알거야 그대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비춰”준다는 윤하의 [혜성]도 정말 좋아하는 노래다.
여기까지 헤아렸을 때, 별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하늘을 이고 살지는 않았어도 나 또한 별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내가 별에 대해 가진 기억을 책의 내용과 하나씩 맞춰보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막 접했을 무렵, 나는 애국가를 얼마나 빨리 치는지 경쟁하던 대세에서 비껴서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으로 키보드를 익혔다. 곧 열릴 올림픽을 핑계로 가리왕산이 개발되기 전 그곳으로 겨울 트레킹을 갔을 때 바라봤던 하늘이 떠올랐다.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인 [라라랜드]의 그곳이 바로 그리피스 천문대였다. 얼마전 어떤 모임에서 천정에 별자리를 프리젠테이션해주는 전등을 보았을 때, 나 또한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별을 바라보면서 살았던 기억 하나 쯤은 있다. 하물며 천문학을 공부하며 매일 별을 보고 살았던 사람이라면, 훨씬 많은 장면이 머리에 새겨져있을 것이고 인상적인 장면의 숫자도 다른 사람들에 비할 바 못될 것이다. 이 책을 나보다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 여러 에피소드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우주산책에 감성이 흐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최초의 불만은 다소 누그러졌고, 뒤쪽으로 갈수록 정보로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자주 나왔다. 그리고 『이명현의 별 헤는 밤』에 담겨있는 여러 에세이를 읽고서, 나도 이렇게 나의 「별 헤는 밤」을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서울에 계속 머무르는 한 내일 밤도 모레도 별을 보기는 힘들겠지만, 이제 달은 조금 더 밝게 보일 것만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