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의 이야기는 운명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그는 운명에 관한 예언을 듣고 그 예언이 한 단계 성취된 것을 알고, 그 다음 단계를 성취하기 위해서 던컨을 죽인다. 그리고는 운명이 자신에게 부여한 도덕적 부담에 괴로워하며,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운명에 저항하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운명은 끝내 그를 죽였고, 예언은 성취되었다.
맥베스의 일탈은 권력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대사에서 드러나는 그의 마음은 권력을 얻고 싶으면서도 정당했으면 하고, 권력을 얻었으면서도 그것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경로는 최고권력자를 배신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권좌에 오른 전형적인 케이스이기도 해서, 그가 속마음을 말하는 장면들은 오히려 위선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에게 권력이란 무엇이었을까?
맥베스의 주변 상황을 생각해보면, 끊임없는 의문만 떠오른다. 우선은 (온전히 내 독해의 책임일) 누가 누구인 것인지 잘 모르겠는 것.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기 위해 잉글랜드의 지원을 받은 맬컴은 과연 이후에도 그곳을 잘 통치할 수 있을지,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했길래 그는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도덕적 열등함을 그리도 길게 말해야 했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어떤 생각에서 사람 됨됨이와 권력의 자격은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지. 맥베스가 악행을 저지르도록 부추기는 것은 왜 굳이(꼭!) 맥베스의 부인이어야 하는지, (사극이 맞긴 하지만) 서로가 주고받는 말은 또 왜 그렇게 사극 톤마냥 과장되어 있는지. 마지막으로, 이른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는데 별 감흥이 없는 것은 내 모자란 감수성 때문인지. 영어를 알고, 영어를 잘 하고, 영어로 읽으면 무언가 달라질까?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 뒤에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는, 해설을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희곡을 읽어보는 게 고3 뒤로 처음이라, 마음으로 되새긴 문장은 “아, 내가 정말로 희곡을 읽는 법을 잃어버렸구나”, 그리고 “내 책읽기가 너무 편향되어 있구나” 이 두 가지였기 때문이다. 둘째로, 영화 또는 (기회가 닿는 한) 연극 맥베스를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이 짧은 대사들 속에서, 아무 구체적인 설명도 포함되지 않은 편린의 왕복 속에서 연출자들은 무엇을 상상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