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36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재홍 옮김 / 길(도서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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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임 문명4를 참 좋아한다. 어느 방학엔가는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에 18시간 씩 한 달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말할 수 없다. 어쨌든 마우스와 키보드가 눌리는 대로 플레이했고,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했기에 아무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 이야기를 하고자 문명4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내 문명의 발달 과정에서 “대체부품”을 개발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나온다는 짧은 문구가 멋드러진 영어 번역으로 등장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형이상학에 나온다는 이 말은 정치학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권에서부터, 그리고 각 권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제나 전체로서의 정치체제와 그것의 구성원인 개별 시민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기” 때문에 개별 시민의 목적을 단순히 합친다고 해서 전체의 목적이 바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전체의 연구를 위해서 부분의 성격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성격이 전체의 목적에 어떻게 이바지하는지(또는 방해가 될 수도 있는지)를 계속해서 캐묻는다.


(21세기에 사는 우리와는 매우 동떨어져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논변을 계속 펼치는데, 그 중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시민의 관계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가장 흥미를 끌었다. 그는 주로 3권 4장에서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몇몇 부분에서 자신의 견해를 직접 제시한다. 그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민은 분명 다르긴 하지만 공통된 점이 있으며, 아마 좋은 사람은 어느 공동체를 가든 좋은 시민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종으로서 하나이지만 정치체제는 여럿인데, 그럼에도 좋은 사람은 탁월성을 지니고 그것을 행위로 보여주고 여기에는 각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법규에 따르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똑같은 이유를 들어서, 즉 좋은 시민은 법을 잘 따르는 사람이고 좋은 사람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도덕적인 사람이기에, 이 둘의 접점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떤 정치체제라도 도덕적으로 좋은 사람의 눈에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 것이고, 여기에 저항하는 것은 일종의 인간의 의무인 것이다. 물론 2500년 전 사람의 생각과 내 신념을, 복잡한 논증을 제시한 주장과 아직 여물지 않은 내 아이디어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겠으나, 여하튼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의 다른 저서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읽은 이 책에서 만큼은, 그는 계속해서 비유를 시도한다. 그리고 나는 이 비유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태도, 즉 개인의 도덕과 정치공동체가 밀접하게 이어져 있으며 같은 원리에 의해 지도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정치체제의 상태는 올바른 인간의 상태와 연결되며, 바람직한 정치적 행위는 바람직한 의술이나 제작술과 연관된다. 그는 이런 비유가 설명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 같고, 그 설명의 기능이 가능한 이유는 두 대상 사이에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진짜” 설명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비유의 부분들은 아주 직관적이어서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각종 고대적 편견들(특히 생산직 종사자나 여성에 대한 줄기찬 비하)을 약간만 걷어내고 바라본다면, 그의 생각은 정치인들을 비도덕적이라고 디스하는 우리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정치학 연구는 이십여 세기를 흐르고 흘러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졌고, 나는 나름의 공을 들여서 이 책을 읽었다.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나 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알았던 것들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관심사가 정치를 떠나지 않는 한, 그리고 인상적인 구절들을 열심히 표시한 포스트잇 플래그들을 다 떼어버리지 않는 한, 나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돌아보고 싶을 때 다시 한 번 쯤 들여다보게 될 책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이 책은 내 독서능력에 대해서도, 내 관점에 대해서도, 도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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