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펭귄클래식 19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최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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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첫사랑이니 젊을 때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젊음은 쓸데없는 상상력과 사람을 응대하는 기술의 미숙함을 포함한다. 글에서 드러나는 블라디미르도 그렇다. 본인이 하고싶은 대로 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끌리는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고, 하고싶은 대로 하고 싶어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전혀 거역하지 못하고 곧이 곧대로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글로는 다 적을 수 없는 어떤 느낌이 있다. 글로 적을 수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글은 내밀하고, 그 내밀함이 마치 내 감정인 양 읽어내려갈 수 있을만큼 잘 선택된 어휘들로 꾸며져있다. 잘 선택되었다는 것이 정제되어있다는 뜻은 아니다. 젊은 사람의 감정이 정제되어있을 리 없으니까.


지나이다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제비뽑기 벌칙놀이를 하는 장면에서부터 등장한 그 사람들이 읽는 내내 맴돈다. 그들의 옆에, 내가 겪었던 여러 사람들의 지저분하고 더러운 욕망의 분출들이 스쳐간다. 나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을 내가 느낀대로 모두 적어내려가자면, 아마도 문학이 아니라 저급한 르포르타주 정도가 되겠지. 젊은 주인공의 시선에서 모든 사건이 눈부시고 아름다우며 찬란하게 그려진 것이 오히려 다행인 것일까.  문학이 아니면 불가능할 장치들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거의 대부분의) 첫사랑에는, 내 첫사랑이 아버지의 내연녀였고 그래서 부부싸움이 났다거나 혹은 서른 살도 안되어서 아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자는 신문의 가십란에서 볼 법한 이야기같기도 하고, 후자는 아마 의학의 발달로 인해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가 되었겠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죽음"이나 "상실"이라는 말로 요약될 인생의 전환점은 누구나 첫사랑을 통해 겪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스포일러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어떤 거대한 존재가 결국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고 내 인격을 박탈해버리면서도 나는 그 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진다는 것도, 상징으로서의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이 글에 모든 것을 기입할 수 없다. 소설은 소설로서 남겨두고, 기억은 기억으로서 묻어두어야만 할 것 같다. 소설은 재미있었으되, 나의 기억은 아프다. 감상을 하기엔 더없이 좋지만, 감상문을 쓰기엔 더없이 답답하기만 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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