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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길(도서출판) / 2011년 10월
평점 :
좋다, 아름답다, 착하다, 올바르다, 정의롭다, 유익하다, 와 같은 언어들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우리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어떤 행위를 하고 그 결과를 검토해보는데 이런 언어들은 필수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하나같이 가치평가, 특히 우리 인간들의 행위와 관련된 평가에 동원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에티카" 즉 윤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인간들의 가치평가의 본성과 원리를 연구한 책 중에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고 또 가장 유명한 축에도 속한다.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적 연구는, 대체로 각각의 사람들이 인간사에 대해 가지는 견해들(doxa)에서 시작해 일상적 사용에 담긴 언어적인 혼란을 걷어내고 그 본질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본질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 의견들 중 가장 그럴듯한 의견을 선별하고 그것의 핵심을 포착한 뒤 그 핵심들을 논리적으로 배열한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신이 드러낸 본질이 평범한 용법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준다.
그의 연구방향은 윤리학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가지 큰 줄기 가운데 하나를 대표한다. 나머지 하나는 세속적 의견을 물리치고 이상향로 직접 나아간 뒤에 그 이상향으로부터 구체적인 행위의 여부를 연역해내는 플라톤적 방식이다. 플라톤적 방식에서는 연역의 결과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또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질만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는, 강한 신념의 산물인 것이다.
뭐, 나는 개인적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스타일을 훨씬 더 좋아한다. 물론 그의 설명은 어렵지만, 그래도 천천히 뜯어보다보면 감이 어렴풋이 잡히기도 하고, 또 3~4장에 걸쳐 펼쳐지는 "중용" 개념에 대한 여러 사례의 언급에서는 내가 알고 있거나 주변에서 벌어졌던 여러 사례들을 이것저것 떠올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에 관한 논의, 아크라시아에 관한 논의로 넘어갔을 때는 나의 경험도 떠오르고, 친구의 모습도 생각이 났다. 이것이야말로 현실성을 중요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연구 스타일의 가장 큰 묘미다. 멋은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일단 재미를 붙이고 나면 재미있다.
학교 다닐 때는 레포트도 쓰면서 수차례 읽어봤던 책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신념에 기반한 플라톤 스타일(플라톤을 좋아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을 훨씬 더 좋아했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보수 반동분자라고 속으로 매도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 읽다가 피식 웃었다.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 그냥, 내가 변했나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