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현대 자유주의의 공공철학


  샌델은 현대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에게서 발견되는 “공동체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현대 미국의 공공철학인 자유주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가치관에 대해 중립적이어야한다는 국가에 대한 자유주의적인 이미지가 이런 상실감의 원인이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고 미국의 역사 또한 자유주의적 가치관을 확대해온 역사로서 해석된다.


  그러나 샌델이 보기에 미국의 역사에서 공존했던 두 가지 유형의 공공철학이 있다. 공화주의와 자유주의다. 공화주의는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관과 인간상이 정해져있으며, 이 지향점을 향해 공동체가 움직이고 구성원들이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바람직한 공동체상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공화주의 공공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자치(self-government)”다. 이런 견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정치학으로부터 유래했으며, 미국 건국 초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샌델이 자신의 이론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견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제시하는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간은 덕(도덕적 탁월성, arete, virtue)를 갖춘 인간이다. 여기에서 덕은 사회적으로 좋은 평판을 받는 행위들과 그 너머에 있는 행위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도덕적으로 좋은” 행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성향 또는 성격을 뜻한다. 덕 개념의 도덕철학적 함축은 사회적 맥락의 중요성, 판단의 다면성, 그리고 평가의 다면성이다.


  반대로 칸트, 밀, 롤스로 이어지는 자유주의적 전통은 개인이 가지고 있다고 간주되는 권리를 중심으로 정치행위를 사고한다. 권리는 인간이 가진 자유, 즉 선택할 능력으로부터 생겨난다. 국가 또는 공동체는 개인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개인의 선택할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되며, 가치관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한다. 이런 견해는 민주주의에 대한 현대 미국의 이해를 대변한다.


  칸트주의적 방식은 칸트의 논증에 대한 롤즈의 해석에서 비롯한다. 칸트의 도덕철학 프로젝트의 핵심은 세계의 구체적 사실로부터 비롯한 모든 “경향성”을 제거하고 이성을 통해서 파악가능한 “법칙으로서의 도덕법칙”을 제시하는 것이다. 『도덕형이상학 기초』에서 그는 이 작업을 물리학에 비유한다. 즉, 다양한 결과값을 산출해낸 모든 개별적인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원칙을 찾아내는 것이 자연철학의 방식이듯, 구체적 개인이 보여주는 모든 도덕적 판단과 행위로부터 도덕성의 일반원칙을 찾아내는 것이 도덕철학의 목표라는 것이다. 롤즈는 이 해석을 이어받아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시한다. 즉, 구체성이 모두 배제된 개인들이 도출해낼 원칙은 결국 각자의 가능성 즉 권리의 평등한 할당에 베팅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 추정했다.


  자유주의적 전통에서 주장하는 국가의 중립성을 정당화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상대주의적 방식, 공리주의적 방식, 칸트주의적 방식. 상대주의적 방식은 어떤 것이 “실제로” 더 좋은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국가가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리주의적 방식은,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싶은 방식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었을 때 가장 행복하며, 그러므로 그 때에 “행복의 총합”도 가장 크다고 주장한다. 칸트주의적 방식은 좋음에 대한 “옳음”에 대한 좋음의 우선성 논증, 즉 인간의 본래적 능력에 의해 발현되는 몇몇 권리들은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나타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도 침해받아서는 안된다고 논증한다. 현대적 방식의 자유주의는 이 칸트주의적 논증에 많이 의지한다. 칸트주의적 정당화는 자유와 평등을 역설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매력이 있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능력으로부터 오는 자유와, 공동체에게 기본적인 존중을 요구하는 근거로서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주의적 방식은 우리가 삶에서 실제로 수행하는 의무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어려움에 부딪힌다. 칸트주의적 견해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수행하기로 약속한 것만 의무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의무라는 이름 아래 수행하는 것 대부분은 자발적 동의 이상의 어떤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의무들이 우리의 도덕적 삶의 상당한 부분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구체적” 인간으로서 가진 다양한 정체성에 따른 의무를 지는데, 우리가 도덕적 갈등이라고 부르는 상황은 이런 의무들 간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또한 자유주의자들은 결국 특정한 정책을 – 주로 평등주의적인 – 시행하려 할 때 내적인 모순에 부딪히는데, 권리를 보장한다는 이름 아래 시행하는 많은 정책들이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지정해주는 특정한 가치관을 지지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칸트주의적 자유주의에 대한 이런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입장을 약간 변경한다. 이 변경된 입장을 최소주의적 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다원주의적인 현실 속에서는 특정한 도덕적-종교적 입장을 공공생활에서 표명해서는 안된다. 어떤 입장도 상당한 수의 동의를 얻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공생활을 결정할 정책, 즉 정의나 권리에 관해서 논의할 때에는 자신의 도덕적 입장을 유보하는 것만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존을 도모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런 최소주의적 자유주의조차도,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 왜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에서 가장 우선하는 목표여야 하는지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함정에 빠지게 된다. 우리의 어떤 실천적 관심은 공동체의 존속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도 하며, 우리는 얼마든지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때로 어떤 중요한 도덕적 갈등들은 괄호를 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 도덕적 갈등은 그 문제를 둘러싼 여러 가치관들 중 어떤 것이 실제로 참인지 논쟁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에서 가치관들에 괄호를 친다는 것은 의도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특정한 가치관을 지지하는 결과를 낳는다. 만약 이렇게 괄호를 친 상황에서 국가의 중립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인 타협에 이를 경우,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도덕적 신념에 큰 타격을 입는다. 그것이 국가로부터 지지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가치관에 반하는 특정한 정책들이 입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칸트주의적이든 최소주의적이든 자유주의는 좋은 “공공철학”이 아니라는 것이 샌델의 결론이다. 그의 입장에서 자유주의가 강요하는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대한 철회이고, 자신의 가치관을 퍼뜨리고 동료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접으라는 지시다. 그래서 자유주의의 귀결은 “도덕적 진공상태”다. 이 상태가 오히려, 자유주의자들이 공화주의자들을 공격하는 가장 좋은 근거가 되는, 편협한 태도와 불관용의 정책을 생산해낸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주의, 다원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덕목을 자유주의 공공철학이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실제로 그 이념이 의도했던 바, 즉 특정한 가치관에 구애받지 않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2장: 권리와 중립적 국가


  샌델에 따르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공공철학은 두 가지 점에서 대조된다. 하나는 옳음과 좋음의 우선관계다. 자유주의는 옳음을 우선시하는 반면, 공화주의는 좋음을 우선시한다. 공화주의에서의 좋음은 인격의 특정한 형태를 뜻하기 때문에, 공화주의에서 공동체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또는 구성원 전부)이 이런 특정한 인격을 갖추게끔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목표와 개인의 가치관 사이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이것 때문에 개인들은 여러 가지 유형으로 공공생활에 참여한다.


  다른 하나는 자유(liberty/freedom)와 자치(self-government)의 관계다. 자유주의에서 자유는 선택의 능력에서 비롯된 불가침의 기본권을 의미하며, 이것이 개인의 삶의 토대를 이룬다. 반면 공화주의에서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공동체의 여러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자신도 공동체의 모습에 영향을 주는 형태의 “자치”가 개인의 삶의 토대를 이룬다. 자치를 통해 개인은 공동체의 가치관을 습득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서 동시에 자신의 가치관을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공동체에 관철시키는, 공동체와의 상보적 관계를 구축한다.


  이 두 공공철학에는 뚜렷한 강점과 약점이 있다. 공화주의는 고대인들의 견해를 대변하고 공적 활동에 대한 참여를 촉진시키지만, 다수의 압제에 취약하다. 자유주의는 공화주의의 이런 약점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으며, 미국의 역사에서 헌법해석의 경향에 점점 더 강한 영향을 끼쳐왔다. 자유주의에서의 기본권은 근본적인 수준에서 개인이 다수의 경향에 반대할 수 있다는 점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건국 초기 미국에서의 “자유” 개념은 자기지배의 범위 확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었지, 기본권을 의미하진 않았다는 것에서, 우리는 건국 초기의 공화주의적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샌델은 현재 미국을 구성하는 “절차적 공화정”의 구성 요소를 세 가지로 분석한다. 개인의 우선권, 국가의 중립성, 선택의 능력이 있는 추상적 개인으로서의 시민. 이 중 개인의 우선권이 헌법 개념과 함께 가장 먼저 역사에 등장한다. 즉, 법 자체로부터 그 법이 지키고자 의도하는 어떤 것들을 분리해내고, 그것들을 수호하는 상위법으로서의 “헌법”이라는 개념을 꺼내면서 그 대상이 된 것이 개인의 우선권이다. 따라서 헌법은 개인의 우선권을 수호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 특히 정부의 구조를 선언하고, 한 공동체 안에서 최고의 원칙으로서 작동한다.


  그러나 헌법과 별개로 만들어진 권리장전이 헌법적 지위를 가지는지, 즉 자연권으로서의 개인의 우선권이 헌법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지에 관해서는 오랜 논쟁이 있었다. 특히 이것은 연방주의와 반연방주의 사이의 논쟁에서 갈등의 주요한 요소가 되었다. 논쟁의 초기에는 개인의 우선권이 헌법에서의 정부의 구조에 의해 보장될 수 있는지 여부에 논의가 집중되었다. 즉, 주의 권한을 강화하고 연방을 약화시킨다면 개인의 권리는 자연스럽게 보장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매디슨이 권리장전을 헌법에 포함시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개인의 우선권이 헌법적 지위를 가지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이러한 해석이 실제 판결로 반영되는 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후 남북전쟁을 지나 로크너 시대에 이르면, 개인의 우선권에서 연장된 국가의 중립성이라는 가치관이 헌법재판에 반영되기 시작한다. 특히 산업의 독점권을 허용하는 주법들, 노동과 관계된 여러 보호장치를 규정한 주법들에 대한 헌법재판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라는 요소가 갈등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것은 주에 대한 연방의 우위를 표명한 것임과 동시에, 연방헌법과 연방헌법재판관들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의 중립성을 동원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판단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홈즈 등의 판사에 의해서 국가의 중립성이 더욱 부각된다. 하지만 로크너 시대와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자유지상주의에 부합했던 로크너 시대의 자유 개념과 대비되어, 1900년대 이후의 재판관들이 인용하는 자유 개념은 매우 폭넓게 쓰인 것이다. 홈즈는 미국의 헌법이 특정한 철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단지 헌법 정신이 보장하는 민주적 제도 자체에 대한 사법적 존중을 표현한다고 이해했다. 로크너 시대의 자유지상주의적 자유 개념 이해에서 시작한 이러한 경향은, 역설적으로 모든 가치관에 대한 괄호치기로 그 이해의 방식이 변형됨으로써 개인의 우선성, 국가의 중립성, 그리고 선택의 능력을 가진 추상적 개인으로서의 인간이해가 결합된 절차적 공화정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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