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까지 샌델은 연방대법원의 판례와 판결문을 통해서, 자유주의 공공철학이 헌법의 해석에 영향을 끼쳐온 역사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자유주의 공공철학은 법해석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 담론의 지형에도 똑같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이 정부의 각종 정책, 특히 경제정책에 관해 논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사항은 번영과 공정성이다. 즉, 그 정책이 얼마나 성장과 분배의 적절성에 기여하는지에 따라 도입 여부가 판가름난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주의 공공철학이 우리의 정치적 담론으로 자리잡은 이후에 생긴 현상이다. 미국의 건국 초기의 정치경제학 담론에서 경제정책의 목적은 번영이나 공정성이 아닌, 시민적 덕성의 함양이었다. 특정한 산업의 육성이나 새로운 정책의 도입이 공공선, 공익, 명예, 권력에 대한 열망 등을 시민들의 마음 속에 북돋울 수 있는지 여부가 정책 도입의 찬성 또는 반대의 핵심적인 논거였다. 건국 이전에 제퍼슨은 시민적 덕성의 함양에 반대가 된다는 이유로 제조업 육성에 반대했으며, 몇몇 논자들은 무역항의 개수를 제한하는 항구법이 대형 상업도시를 키움으로써 사람들을 타락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같은 논의선상에서, 미국의 독립 또한 영국의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끔 미국 시민들의 도덕적 타락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 쟁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독립 이후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시민적 덕은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즉, 입안자들이 헌법을 기본법으로서 시민들의 덕성 함양에 기여해야하는 장치로 간주한 것이다. 한 편으로 시민적 덕성을 교육을 통해 직접적으로 주입할 것을 명기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헌법을 통해서 시민적 덕에 의한 통치를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해밀턴, 매디슨 등). 특히 매디슨은 시민적 덕을 통치의 주요원리로 작동시키기 위해 헌법에 정부 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의 논리를 삽입했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것을 이익집단 다원주의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민적 덕의 함양이라는 매디슨의 명확한 목적을 고려했을 때, 이런 해석은 틀렸다. 또한 민주정과 공화정의 대립이라는 당시의 정치이념적 지형도를 고려한다면, 시민적 덕을 중심으로 정치조직을 구성하려는 것이 공화주의자들의 목적이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해밀턴이 제안한 중앙집중적 재정정책에 관한 논란도 시민적 덕성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해밀턴은 각 주의 부채와 연방정부의 부채를 통합하고 이 통합된 부채를 관리할 기관을 만든 뒤에 이 부채를 시민들에게 판매하고 수익을 보장함으로써, 이익을 매개로 한 국가와 주, 시민의 통합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반대에 부딪힌다. 이렇게 이익을 매개로 맺어질 경우, 국가가 이익집단화된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그렇다면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큰 이익이 걸려있는 사람들 또는 많은 채권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편향된 결정이 이뤄질 것이다. 또한 이런 편향된 결정은 불공정한 자원분배를 낳고,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의 도덕적 타락을 낳을 것이라고 반대자들은 주장했다.


  국가의 주요산업에 대한 논쟁에서도 시민적 덕성이 주요한 쟁점으로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해밀턴은 상공업 중심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제퍼슨과 매디슨은 농업이야말로 미국인에게 가장 적합한 산업이라고 믿었다. 해밀턴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상공업이 진흥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수입의 증가와 이에 맞물린 사치풍조가 사람들의 풍기를 문란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제퍼슨과 매디슨의 주장은, 상업사회는 사람들을 돈의 노예로 만들고 부패와 도덕적 타락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전하게 땀흘려 일한 댓가가 돌아오는” 농업이야말로 시민적 덕의 함양에 어울리는 사업이다. 따라서 해밀턴은 서부와 남부로 뻗어나가는 영토확장이 무의미하며 낭비적인 사업이라고 간주한 반면, 매디슨과 제퍼슨의 옹호자들은 이런 개척이 시민들의 도덕적 고양을 도와주는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제조업에 관한 찬반논쟁도 마찬가지로 시민적 덕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전개되었다. 즉, 어떤 사람은 제조업이 시민의 육성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이들은 제조업이 시민들의 인격적 상태를 나쁘게 만들것이라고 생각했다. 옹호자들은 제조업이 번성할수록 영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 대한 무역 분야에서의 예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역 분야의 예속은 수입품의 가격을 상승시키고 사치 풍조를 조장하며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계급간 격차를 심화시킴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해치기 때문에, 예속을 벗어나는 것은 공동체의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각자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써 농업 생산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한 통치를 온전히 이룰 수 있게 된다. 이들의 이런 입장은, 제조업의 육성을 옹호하더라도 고도화된 분업이 이뤄지는 공장제 생산을 옹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반면 제조업의 육성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제조업의 육성은 필연적으로 분업과 공장제 생산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장제 생산은 생산품에 대한 예속, 임금에 대한 예속, 생산수단을 소유한 고용주(자본가)에 대한 예속을 낳는다. 이런 예속의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제대로 된 시간과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반대자들은 사치와 낭비에 따른 도덕적 타락은, 생산이 충분히 고도화된다면 국내제조물품들만으로도 충분히 촉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로웰 공장은 이런 제조업에 대한 논의가 실제로 어떤 발전을 겪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로웰 공장은 도시가 아닌 농촌의 주변에 지어졌고, 주변의 농민들과 순환근무를 하는 체계를 갖췄으며, 강한 규율과 노동자 교육을 통해 근검절약정신을 전파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모델은 시간이 가면서 붕괴하고 말았다. 우선,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의 관계가 문자 그대로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관계로 변화하고 말았다. 또한 강한 규율과 교육에 대한 반발로 파업이 빈번했다. 주변의 농민들과 순환근무를 함으로써 공장근무를 하면서도 시민적 덕을 쌓을 기회를 준다는 계획은, 이민자들을 점점 더 상시채용함으로써 유명무실해졌다. 결국 공장은 이주했고, 로웰과 같은 공장들이 한 곳에 모여들면서 시민적 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대도시가 공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시간이 흘러 잭슨 대통령의 시기가 되었을 때, 산업이 제조업과 상업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민적 덕성에 관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이 논의는 민주당과 잭슨의 옹호자들 대 휘그당의 잭슨 반대파의 구도로 전개되었다. 이들의 논의는 표면적으로 번영과 공정성을 축으로 삼는 현대의 경제정책논쟁과 유사해보이지만, 정책패키지는 정반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번영을 목표로 하는 휘그당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했고, 반대로 분배의 공정성을 옹호하는 민주당은 정부의 불간섭을 주장했다.


  민주당은 엘리트로 구성된 정부에는 내재적인 불공정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즉, 정부를 구성하는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정부의 정책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개입은 분배정의의 붕괴를 의미한다. 따라서 분배정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분산시키고,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생산을 탈집중화시켜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국가는 시민들의 자치권을 보장해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민주당은 중앙은행을 설립한다는 정책에 반대했는데,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이러한 기관은 반드시 부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또한 실제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결정권에 접근하고 은행권발행의 조작을 통해 “땀흘리지 않고 돈을 버는” 문화가 조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이유로 거론되었다.


  반대로 휘그당의 인사들은 탈집중화된 경제가 행정부의 상대적 비대화를 부른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적은 돈은 제대로 분배해봐야 가치가 없다는 고전적인 논증을 통해 성장을 옹호했으며, 이런 성장을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경제성장에는 반드시 상업화에 따르는 타락만이 있는 것이 아닌데, 더 넓고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통합됨으로써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통합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히려 국가와 시민간의 일체감 증진, 즉 국민통합의 발판이 된다. 물론 상업사회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강력한 이념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휘그당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보편적 덕성함양교육을 내놓았다. 즉, 국가적인 차원의 공동체 의식 고양을 통해 상업사회에서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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