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글루에 써놓은 글을 옮겨놓습니다.>

 

3년동안 쓴 연습장을 마무리하는 글.
300에 대한 호평으로 시작해서 반자본주의로 끝나는구나
허허 참 인생의 질곡이 많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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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친구와 야심한 밤에 논쟁을 벌였다. 축약하자면, '시장경제가 한국의 경제에 기본으로 삼을만한 원리가 될만한가?' 라는 문제였다. 그 친구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혹은 현재까지 인류가 개발한 경제체제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선택이라고 말하였고, 나는 시장경제의 원리 자체에 반대하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순식간에 발전의 방법, 타국의 상황 등 세부적인 경제적 자료가 필요한 수준까지 나아갔기에, 결국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관념적인 수준에서 시장경제를 반대한다. 


  시장 경제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세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 둘재는 이익을 얻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 셋째는 이런 개인들이 모인 곳에서 여러 상품의 가치는 수요와 공급의 숫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넷째는 이런 사회적 구조 아래 개인은 노동과 매매를 통하여 상품을 생산-소비한다는 것, 다섯째는 이 구조에 어떤 큰 단위가 강제적인 조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여섯째는 이와 같은 활동이 생산과 소비를 늘려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나 스스로를 급진주의자라고 칭할 것인데, 그 이유는 위의 원리들 가운데 첫째와 둘째에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품이 거래되는 것을 교환이라 한다면, 교환과정에서 양자가 비대칭인 경우를 너무 잘 볼 수 있다. 그런 일은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양자가 비대칭이라면, 한 쪽이 이득을 보았을 때 다른 한 쪽은 손실이 생길 것이다. 만약 양쪽이 동시에 이득을 보았더라도, 한 쪽이 더 많은 이익을 보았을 수도 있다. 게다가 한정된 재화를 가지고 양쪽이 모두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결국 논리적으로 재화의 크기를 현재 상태보다 더 키워야 할 수 밖에 없다. 발전이란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요청인 것이다. 


  설사 인간이 이득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합리적으로 추구한다는 말 또한 의문을 남긴다. 사실상, 인간은 이익을 합리적으로 얻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 합리적인 면에서 벗어나 있는 여러 심리적 요소,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한 정보의 부족, 추론과정에서 저지를 수 있는 오류 등. 이런 면모들은 경기의 과잉상승(거품)과 과잉하락(장기침체)를 불러오며, 시장은 이것을 결코 해결해주지 않는다. 


  여기에서 시장은 결코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예측이 불가능한 것은, 그것이 합리적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다. 따라서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반합리적(비합리적) 요소인 욕망의 수요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잇다. 욕망이란, 경제에 참여하는 주체의 필요에 따라 생성될 것이고, 다시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을 주체들의 욕망에 놓아두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인류는 역사적인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때에는 항상 욕망이 개입된다. 거품이 생성되는 때에도 이들이 개입한다. 도한 사태가 모두 지나고 나서야 이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최근의 미국 부동산 위기(서브프라임)나, 그 전의 정보기술기업주들의 몰락(닷컴거품 붕괴) 등의 사례들은 하나같이 경제주체와 시장의 비합리성, 비이성성을 증명한다. 


  이런 기초 위에서 경제가 운용되는 이상, 아무리 정부의 규모가 비대하고 규제와 제한이 많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근본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혹은 정부구조의 왜곡에 의해 이런 면들을 고의적으로(굳이 고의적이지 않더라도) 방관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어떠한 사건과 직접 연관이 없는 경제주체들에게까지 타격을 주는 위기로 커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국제금융기구의 원조(IMF 사태)가 그랬고, 카드 사태가 그랬다. 따라서 큰 정부 구상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매력적인 방안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 이것은 내가 분석해본 시장 경제의 원리 가운데 다섯 째에 대한 반론이 될 것이다. 


  설령 큰 정부 구상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그 정부는 경제를 예측가능하게 메타적으로 통제하는 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의 경향을 짚어보았을 때 - 특히 '제3의 길' 이라는 이름으로 시장경제원리를 경제의 토대로 삼는 현재의 추세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즉, 정부는 거대한 재정을 바탕으로 시장을 교란시킬 뿐 통제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정부도 경제를 구성하는 경제주체가 되어, 시장의 비합리성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정부가 제공해야 할 여러 가지 용역 - 교육, 의료, 공공시설, 생계보장 등 - 을 줄여 정부의 손실을 메우는 현상을 필연적으로 낳는다. 


  시장경제는 무엇보다도 발전에 대한 환상 때문에 그 영향력이 유지된다. 바로 여섯째 원리에 대한 신봉이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제1세계 국가의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역사에 비추어 보았을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고 간주된다. 그리고 현재 실제로 이들 국가는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여전히 선진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선은 앞에 썼듯이 '발전은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요청이다.' 라는 관념적인 반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외에도 두 가지 반론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시장 경제가 발전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장경제 원리를 채택해 발전하는 국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들도 있다. 2차대전 이후 갑자기 해방을 맞이한 국가 가운데, 시장경제를 원리로 채택한 국가는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들 가운데 실제로 발전구도에 진입한 나라는 몇이나 될까. 친미 성향의 군부독재 정권이 들어서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들, 경제적으로 우파인 민족주의자들이 세운 나라들. 한국인의 눈에는 이런 곳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객관적 경제지표의 성장을 들어 시장과 발전의 연관성을 강조하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 경제지표는 그 자체가 은폐성이 짙은데다가, 시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성장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현재 선진국들은 전혀 시장적이지 않은 여러 방법으로 자국의 경제지표를 성장시켜왔다. 관세장벽을 높여 자국산업을 보호육성한다든가, 군사력을 통해 강제로 시장을 개척한다든가, 물리력을 동원해 우너자재를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매입하고 비싼 값에 팔았고, 생필품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손실분에 대해서는 정부비축을 명목으로 대신 매입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했고, 저축을 장려해 단기간에 엄청난 자금을 끌어모아 관 주도로 국가기간산업에 투자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런 방법이, 내수를 폭발적으로 진작하고 경제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된다. 


  또 다른 반론은, 시장경제원리 아래서 발전은 필연적이지 않은 데 비해, 시장경제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시장의 붕괴와 그에 따르는 파국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상적 시장은 위험을 언제나 내포한다. 이 과정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기술이 특정한 상품공금자에 의해 발전하면서, 시장의 균형을 깨뜨린다. 이 공급자는 가격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단숨에 올라서고, 가격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공급자를 시장에서 쫓아낸다. 물론 이 과정은 공급자 간의 경쟁이 아니라 합리적 수요자들의 선택과정에서 생겨나므로, 공급자의 의지와 무관하다. 자본은 선도적인 공급자에게 쏠리고, 어느 순간 독점적인 지위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를 차지한다.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공급자에게 넘어가고, 소비자는 높은 비용을 치러야한다. 이것은 필연적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사회 전반적으로 기술 수준이 높아질 경우, 노동자 집단은 그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게 된다. 기술 향상은, 같은 양의 상품을 만드는 데 더 적은 양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의 생산수준을 유지하면, 노동자 집단의 소득은 줄어든다. 생산량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기술수준이 높아지기까지 투자한 비용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제품의 단가는 동일하다. 이전과 노동시간이 같으므로 임금 역시 동일하다. 어느 쪽이든 실질적인 수요는 감소할 수 밖에 없고, 결과는 어느 쪽이든 경제위기다. 이상적인 시장이 붕괴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지구 전체가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가는 추세인 지금도, 이러한 필연은 똑같이 반복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은 경제가 정부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돈 놓고 돈 먹는 식의 규제 없는 금융화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미명 아래 경제주체들의 욕망을 자극해 정기적인 파국을 불러온다.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큰 손해를 입는 집단은, 다름아닌 금융상품에 투자해 시장을 교란하려던 정부다. 국제적인 노동력의 이동은 어느 지역에서든지 노동의 조건을 가장 나쁜 상태로 만든다. 물론 이에 대한 책임은 좀 더 싼 임금을 받고 일하는 다른 노동력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싼 임금을 선호하고 또 그에 대해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선호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용자에게 주어저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시장경제는 적어도 경제를 제도화할 때 근본적인 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급진주의자가 추구하는 경제모델은 '급진적 민주주의에 의해 생산 전반이 통제되는 경제'이다. 이와 같은 이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시되었으나, 시장중심주의적인 환상에 의해 묵살된 상태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현실사회주의'와도 다르다. 현실사회주의로서 드러난 국가들은 결국 생산계획조정계층이 특권계층이 되는 것 이외에 더 다른 결과를 낳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장의 생산방식에 대항하는 운동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것은 시장경제가 품고 있는 근본적 한계에 대한 저항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계획(을 포함한 경제정책 전반)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에게 동등한 참여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방향은 생산된 상품을 올바르게 분배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것마저 확보되지 않는다면, 소비의 주체인 경제주체들이 소비의 수단이 될 소득재분배를 올바르게 받지 못할 것이 뻔하다. 경제주체들의 소비감소는 곧 경제의 왜곡과 붕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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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있었으나 이 이상 진행시키지 못하고 일단 스탑.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뒤의 이야기인데,
그것은 경제 이야기가 진짜 관념적인 수준의 이야기이므로
일단 떼어놓고 쓰기.
태클 및 첨언부언 대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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