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현대철학연습 발제. 프랑크 하르트만, 『미디어철학』(강웅경, 이상엽 옮김) 8장 요약.>

 

1. 설명 대신에 기술

 

   분석철학적 경향은 19세기 말 독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경향을 띄는 철학자들은 반형이상학적 경향을 보였고, 철학은 전적으로 과학적이어야 하며 또 그만큼 엄밀한 학문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철학에서 다뤄온 여러 주제는 여기에 부합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시에 수학철학, 과학철학 등의 연구에 의해 이런 엄밀함은 갖춰지기 힘들다는 견해가 등장했다. 세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사실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화두는 세계의 확실함과 과학의 엄밀함 즉 '설명'에서, 이들을 설명할 때 동원되는 명제들의 유의미함 즉 '기술'로 넘어갔다.


   이 속에서 철학은 학문의 논리
Wissenschatslogik이 된다. 철학의 과제는 새로운 진리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각 분과학문들이 내놓은 주장들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밝히는 것이 되었다. 철학 또한 한 분과학문으로서 스스로를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전통적인 철학에서 다뤄왔던 주제들이 포함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개념들이다. 이들을 학문에서 추방하는 것은 일종의 개혁운동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뭉쳐서 비엔나 학파를 만들었고, 이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모든 분과학문들이 하나의 체계 아래 놓인 통일과학Einheitwissenschaft이었다.


   이들은 통일과학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분과학문 사이의 소통을 위해 통일된 표기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이런 요구는 매체철학적인 의미에서, 각 분과학문들에 고유하게 사용되던, 다시 말해 그 분과의 역사에 지배당하는 언어로부터 벗어나 탈역사적인 미디어 추구라는 과제와 연결된다. 만약 고유하고 역사적인 언어들이 우리의 사고를 흐릿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면, 탈역사적 언어들은 내 생각을 명료하게 표현해주며 나아가서 의사소통의 불투명함도 없애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의 요구는 매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깨끗한 매체, 해방된 상징에 대한 요구로 이해할 수 있다.

 


2.
시각적 방법의 도입

 

   이런 요구가 채택한 방법은 시각적 방법의 도입이었다. 당시 새로 등장한 미디어 기술은 활자인쇄 이외에 다른 형식의 미디어들(영화, 음반 등)이 대량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는 이런 점에 착안해 과학의 성과들을 공유하는 데 이들을 이용하면 훨씬 더 그 목적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비엔나식 방법에 따른 그림통계학Bildstatisik nach Wiener Methode>이라는 논문에서 시각매체로 문자를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실험결과를 이미지로 재현하면, 보는 사람은 활자로 재현한 것보다 훨씬 더 보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시각매체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수많은 재구성이 개입하는 활자 매체와는 달리, 실험과정과 결과를 거의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시각매체는 처음에는 과학자들 사이에서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되며
,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급되어 과학의 성과를 직접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해주는 수단 즉 계몽의 도구로 활용된다. 또한 활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교양Bildung 중심의 계몽주의, 데카르트와 칸트의 세계로부터도 벗어난다. 체코의 신학자인 코멘스키(코메니우스)는 그림으로 이뤄진 백과사전(<세계도회>)을 만들려 했는데, 노이라트는 이를 인용하며 자신의 기획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그의 다른 면모들보다 매체철학적 이론과 공헌이 더욱 부각된다
. 그는 새로운 매체의 발견을 통해 분석철학적 목표와 계몽의 꿈을 동시에 실현하려 했다. 그는 1924년 비엔나에 사회경제박물관을 세우고, 미래의 박물관에 관한 구상을 현실화시켰다. 그가 생각하기에 박물관은 옛것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닌 지식의 교량이 되어야 했다. 그런 지식은 세대를 막론하고 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시각매체들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나타낸 것은 각종 통계 및 평가자료였다.

 


3.
과학적 표현의 전달 능력

 

   노이라트는 언어와 활자화가 더 이상 대중적인 의사소통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짚어냈다. 아날로그 기술이 등장한 이후 활자가 아닌 다른 매체들을 통한 대중적 의사소통이 급격히 확산되었고, 새로운 형태의 시각적 논증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그는 이것을 활자를 대체할만한 과학적 성과의 보급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시각매체의 모양이 메세지 전달에 핵심적인 요소이므로, 이를 잘 고안한다면 효과적으로 과학의 결과들을 널리 알릴 수 있다. 그는 매체에 관심을 쏟으면서 언어의 명료함이라는 이론적 문제와 계몽이라는 실천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계몽에 걸맞는 지식세계의 구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가 직접 만든 인공언어를 유포시키는 것도, 사회의 전체적 수준이 과학적인 단계로 올라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 사회는 공학적 접근을 통해서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기존에 신뢰하고 있던 여러 체계들도, 특정한 사회적 전환기에 가해지는 급격한 충격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이다. 또 그 자리를 기획된 다른 체계가 차지한다. 그는 전쟁을 겪으며 이런 순간을 경험했으며, 그러므로 이런 사회공학이 가능하다 믿었다.


   계몽은 이런 사회공학의 목표다
.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각매체를 중심으로 지식세계 전체가 재편되어야 한다. 지식세계의 재구성에 기초한 사회개혁이 바로 계몽이며, 이는 애매모호함 없는 의사소통에 의해 과학적 지식이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사회를 지향한다. 과학자 사회에서 통일된 언어를 구축하고 이들을 그림언어로 표현해 대중에게 보급하는 두 단계를 거치면 노이라트의 계몽의 기획이 완료된다.


   이런 사회공학적 노력이 한데 모인 것이 백과사전이다
. 그러나 근대의 계몽 기획과 달리, 매체의 문제에 주목하면서 백과사전에 대한 관점이 변화한다. 근대에 백과사전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이 축적된 장이었다면, 노이라트의 관점에서는 당대에 통일과학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다. 근대의 계몽은 백과사전의 편찬으로 결실을 맺지만, 노이라트는 계몽적 노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지식을 전달하려고 백과사전을 편찬한다. 그렇다면 우리와 다른 역사, 그리고 그에 따라 다른 언어를 소유하게 될 후세대들이 어떻게 지금 우리의 백과사전을 이해할 수 있을까? 노이라트의 계몽 기획에서는, 이 대목에서 다시 의사소통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탈맥락적, 탈역사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파벳 활자가 아닌 다른 수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4.
그림통계의 '비엔나학파의 방법'

 

   "현대인은 무엇보다도 시각적인 인간이다. 광고, 계몽포스터, 극장, 삽화, 신문, 잡지 등은 대중을 교육시키는 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조차도 그림이나 삽화에서 보다 많은 자극을 받는다. 피로한 인간들은 읽어서는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는 쉽게 알아낸다. 이뿐만 아니라 그림교육학은 많이 교육받지 못했지만 시각적으로는 잘 수용하곤 하는 성인들이나 혜택받지 못하고 별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 오토 노이라트, <비엔나식 방법에 따른 그림통계학>


   노이라트는 그림언어가 활자와 숫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총체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 그리고 탈역사적이고 편견에서 자유롭기에 과학을 설파하는 데 매우 적절하다. 이것은 '말은 분리시키고 그림은 결합시킨다'는 표현에서 압축되어 드러난다. 이런 노이라트의 생각을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매체가 단순한 중간자로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접하는 세계의 질서와 그에 관한 사실을 구현한다는 현대적인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과학의 전파 매체로 그림을 택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매체에 관한 관점에서 노이라트는 현대적이다.


   이 두 측면은
, 노이라트의 관점에서는 결국 매체 자체에 관한 연구와 매체의 혁신을 통해 해결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아이소타이프ISOTYPE, 즉 일종의 다양한 아이콘 모음을 개발해 기존의 어휘를 대체하고자 했다. 이 아이콘들은 그것이 표상하려고 하는 바를 즉각 나타낸다. 그의 말에 따르면, "네 번, 다섯 번째 볼 때도 아직 계속해서 정보를 주는 그림은 비엔나학파의 입장에서는 교육적으로 부적합한 것으로 비판된다." 이런 그림문자는 관계적으로 사용되고, 규격화-축약이 필요하며, 일관되게 항상 동일한 기호를 사용하고,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자기지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규칙 아래 제작되었다.

 


5.
민중의 계몽으로서의 그림문자

 

   우리는 이미 이런 그림문자가 일반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노이라트의 아이디어는 성취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세계의 모든 사물들은, 각각 아이콘 제작자 만큼의 아이콘을 가지고 있다. 같은 대상을 보고 있더라도, 각각 다른 아이콘 제작자들이 같은 아이콘을 만들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이라트의 계몽 구상은 기본적으로 과학자 집단과 그 이외 집단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콘 제작의 권위는 과학자 집단에게 주어진다. 이들이 통일성을 유지한다면 아이콘 또한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고, 이 통일성은 방송 환경을 통해서 과학자 집단 이외의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 노이라트의 구상은 당시의 매체환경에 대한 반응이며, 동시에 계몽주의적 공공성(공지성)에 대한 응답이 된다.


   그림문자의 고안은 그를 근대적 계몽을 성취하려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근대적 지식세계를 벗어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시킨다
. 스스로 '말하는 기호'들로 적절하게 옮겨진 세계는 사람들에게 이 세계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정보들을 공공적으로 소유한다. 이것이 과학적 인식과 과학적 결과의 전달의 최종 목표다. 여기에서는 정보의 전달이 목표가 되고, 세계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인식론적 물음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이 점에서 그는 근대적 지식세계를 벗어난다. 반면 매체를 바꿔 의사소통 환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 즉 더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장을 만들어야 계몽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근대적 계몽의 기획은 그에게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6.
보편코드는 기능하는가

 

   또 다른 측면에서, 계몽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줄 그런 언어(또는 기호)가 가능한지를 물어볼 수도 있다. 노이라트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림문자를 고안해보았다. 그러나 그림문자는 실제로 노이라트가 생각한 것처럼 작동할까? 그는 시각매체를 혼란이 덜하고 깨끗한 매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것으로 활자언어를 대체하고자 했다. 그러나 시각매체를 충분히 접하는 우리는 많은 반박을 가할 수 있다. 착시 등의 요소 그리고 그래픽 기술은 과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세계를 창조해낸다, 기호를 이해하려면 맥락이 필요하다, 특정한 기호에 관한 이해는 그 기호가 만들어지고 통용되는 공동체를 넘어서면 불가능하다 등등이 이런 반론에 해당한다. 특히 기호는 "행위, 동사의 시제, 부사, 전치사를 표현해야 할 경우에는 매우 어렵다." 설령 보편언어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단지 그림만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분명하다.


   그러나 노이라트의 그림언어 구상은 분명 매체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 그는 시각매체의 중요함을 통찰했고, 인간의 의사소통을 언어와 활자 중심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런 매체에 관한 통찰을 계몽이라는 철학적 실천과 분명하게 연결시켰다. 그러나 이 둘을 연결시키려는 과정에서 '기호''그림'을 혼동한 것은 큰 실수였고, 그의 한계점이다. 그림이 기호가 되려면, 즉 의미를 지니거나 무언가를 가리키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는 무언가를 가리키는지 계속해서 가르쳐져야 한다. 이것이 기호가 공동체 밖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이유다. 그림이 아무리 특징을 잘 잡아서 나타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호가 아니다.


   반면 이 글에서 지금까지 계속 언급한 것처럼
, 미디어이론의 측면에서 그의 의의는 분명하다. 그는 문자와 그림 사이의 위계를 뒤집어서 현대를 예견했다. 그리고 이런 그림이 사람들 사이의 정보교환, 의사소통의 중심이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나타냈다. 노이라트 당대에는 이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기술이 그만큼 발전하지 못했지만, 노이라트의 예언은 현대에 들어서야 딱 맞아들어가고 있다. , 그는 '읽기'가 단순히 책 매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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