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연습 발제>
지식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 개인적인 의식의 사적인 자료들보다는 공적인 세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으로부터 무엇이 결과로서 일어나게 되는가?
데카르트가 ‘명석하고 판명한’ 것을 지식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제시한 이후, 인식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는 표상이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은 외부 세계가 실제로 어떤 식으로 생겼는지는 알기 힘들다.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감각이 여러 조건에 의해서 올바르지 않은 정보를 전달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 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진술은 정당화하기 힘들다. 그러나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우리에게 ‘명석하고 판명하게’ 보인다. 마음은 외부 세계의 모습이 아니라 나와 언제나 함께하는 것의 특정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게 보인다’ 라는 진술은 정당화하기가 쉽고, 마음에 떠오르는 표상은 지식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인식론의 역사 전체를 걸쳐서 드러났듯이, 표상을 지식의 대상으로 삼을 경우 우리가 지식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외부의 대상에 관한 명제가 아니다. 표상은 외부 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그렇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근대 인식론에 의해 생겨난 이러한 틈은 위와 같은 질문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마음의 존재론적 지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마음이 몸으로 환원된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의 존재가 부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티는 『철학과 자연의 거울』에서 마음과 몸 사이의 관계를 논하는 여러 입장을 검토하면서, 표상이 지식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특정한 시기에 등장한 특정한 설명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른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마음과 관련한 표현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실천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논증한다. 이런 표현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론적, 실천적으로 일관된 설명의 체계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마음과 관련된 표현들과 관련한 또 다른 이론적인 문제(예를 들어 인식론적 틈 같은 것)에 부딪히지 않을 뿐이다.
또한 그는 오히려 마음을 동원해서 우리의 지식과 실천을 설명하려 할 때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도대체 ‘표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더욱 복잡한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인지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로티는 이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은 다양하고, 그 방식들은 각각이 사용하는 단어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이론들 자체를 상호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방식을 다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단 마음 개념을 동원해 이 과정을 설명하는 데 친숙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철학적인 문제가 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방식이 발견되면, 마음을 이용하는 방식 대신에 그 방식을 차용한다. 로티는 사실 마음 개념을 동원한 설명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데카르트가 살았던 당시에는 그의 주변을 둘러싼 다른 설명 방식에 비해 철학적인 문제가 덜 발생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마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직관적인 현상들, 즉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안다거나, 직접적으로 드러난다거나 확실하다거나 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로티는 이에 대해 제한된 몇 가지 방식을 자주 사용해서 생겨난 친숙함의 다른 표현이라고 답한다. 즉, 데카르트가 제시한 ‘명석-판명’한 표상을 통해 생겨난 지식이란 단지 자주 접했기 때문에 ‘명석-판명’하지 않은 다른 표상에 비해서 좀 더 자신과 가깝다고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로티의 입장에서 지식을 정의하는 것은, 인식주체를 둘러싼 인식적 환경이 어떠한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그 환경이 인식주체에게 어떤 것을 얼마만큼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무엇이 지식이 되는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인식적 환경이 지식으로 제공해주는 것이 어떤 것일지는, 그 환경 속에서 특정한 인식주체보다 이전에 살아왔던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지식으로 인정했느냐에 의존적이다.
그러므로 그의 논증은 ‘지식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철학 특히 인식론이 답해야 할 질문이 아니라 (로티의 표현에 따르면) 지식사회학이나 과학사 연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들 학문의 연구 대상이 바로 특정한 시공간에서 어떤 사람들이 지식으로 간주해던 것의 내용이나 특징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공간을 넘어서 모든 시대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지식의 조건을 탐색하는 분야인 인식론의 의미도 퇴색된다. 지식사회학이나 과학사 연구의 성과들을 조망해보면, 그런 초월적 조건이 과연 있을지 의문을 일으키는 너무나도 다른 지식의 목록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은 일반적으로 지식으로 간주되는 믿음들의 객관성을 떨어뜨리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