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없는 사람들 - 헤겔 역사철학 비판
라나지트 구하 지음, 이광수 옮김 / 삼천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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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지적 전통 발제문>

  라나지트 구하 개관

 

  라나지트 구하(1923~현재)는 지식인과 엘리트 등 특권계층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연구로 명성을 얻은 인도의 역사학자이다. 그는 사회 하층부를 일컫는 개념인 ‘서발턴subaltern’에 대한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이며, 잡지 『서발턴 연구』(1982~),  『서발턴과 봉기』(1983),  『헤게모니 없는 지배』(1998), 『역사 없는 사람들』(2002), 『역사의 작은 목소리The Small Voice of History』(2009)등을 썼다.


  그는 서발턴 연구를 통해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민중운동의 흐름을 발굴했다. 이를 통해 기존의 학계가 설명하던 인도 역사의 흐름 – 식민지배에 맞선 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이념에 기반한 엘리트주의적인 서사를 해체하였다. 또한 역사적 운동의 주체로, 민족주의나 자본주의라는 이념, 그리고 이념을 수입-전파하는 엘리트들 대신 민중의 자발적 행동을 강조하였다. 사상적 측면에서는, 반식민지 투쟁으로서의 민족주의 이념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민족주의적 서사라는 서양의 역사서술 방법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하는 식민지배자와 민족주의자는 자신들의 지배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 일종의 공모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런 비판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연구대상인 서발턴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아주 복잡하고 다양하여, 실제로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 등으로 동일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운동의 주체로서 이러한 특징은 근대적 의미의 정치적 운동과 조직의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이 자체가 서발턴의 특징이면서, 동시에 서발턴들의 정치적 운동의 동력이기도 하다. 구하의 연구 속에서, 그들은 식민지배와 엘리트들의 지배, 물리적 폭력과 이념적 훈육 속에서도 여기에서부터 자유로운, 현실의 정치체제로부터 이른바 ‘탈주할 수 있는’ 주체들로 그려진다.

 

 

  구하의 헤겔 역사철학 비판

 

  이렇듯 역사학자인 구하가 헤겔의 역사철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가능하게 해준 많은 기술과 학문들이 있지만, 그것을 가장 추상적이고 완결된 형태로 제시해주는, “이성이라는 준거 아래 식민주의와 연계된 모든 다층적인 행위와 이데올로기를 조합하고 배치할 수 있”(p.15)는 체계가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특히 헤겔이 대상이 되는 이유는,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기에 ‘세계사’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수립하고 그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구하는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영어제목에서 보듯이 ‘세계사의 경계’, 즉 헤겔이 세계사로 선포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의 사이에서 헤겔의 세계사 개념을 통찰해보도록 권하고 있다.


  이 경계에 대해 사유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계사’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서유럽-영미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에 아직 등장하지 않은 집단, 또 곧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되어야 할 집단이었다. 구하와 함께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역사가로 평가받는 월터 미뇰로 Walter Mignolo(1947~현재)는 이들을 ‘역사 없는 민족’으로 개념화한다. 여기에는 “기록이 없는 사람들은 열등한 민족이고, 역사가 없는 민족은 열등한 인간이”(p.25)라는 사고관이 깔려있다. 헤겔 또한 이런 점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인도(를 비롯한 비유럽세계)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으므로”(p.26) 결핍된 민족, 열등한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헤겔은 역사와 국가(민족국가)의 상호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역사는 민족국가에 의존적이다. 역사가 진정한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민족국가에 의존해야 한다.


  구하는 이 지점에서 영국 식민지배자의 기획에 따라 쓰여진 람람 바수의 인도 역사를 언급한다. 그의 역사서술은 단순히 연대기, 전설, 신화에 준하는 그 이전의 서사와 다르다. 그 핵심은 “지속성과 완전함”(p.31)으로, 따라서 “바수에게는 분명히 근대주의적인 면이 있었다. 이런 지속성과 완전함은 제대로 된 역사 이야기를 이루는 토대가 되었기에 전근대적 연대기와는 완전히 달랐다.”(p.31) 구하가 보기에 이 역사책은 인도가 헤겔이 말하는 ‘세계사’를 확립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반증이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람람 바수의 인도 역사를 포함해, 헤겔이 체계를 갖춘 유럽의 근대적인 역사서술방법 그 자체다.


  헤겔의 역사서술방법론에 따르면, 역사를 구성하는 것은 두 가지, 즉 서술의 형식과 서사의 내용이다. 서사의 내용은 국가이다. 서술의 형식은 산문이다. 민족을 막론하고 인간의 모든 언어적 표현은 시로 시작된다. 산문은 그 뒤에 나온 형식이다. 헤겔에 따르면, 뒤에 오는 것은 앞에 오는 것보다 진보되고 발전된 것이다. 산문은 경험에 기반한 사건을 기술하는 데 더욱 용이하고, 사건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문은 시보다 발전된 형식이며, 그러므로 역사는 산문으로 쓰여져야 한다.


  이 산문도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세계의 산문이다. 세계의 산문은, 단적으로 말해 이것은 시간에 따라 이 세계에 일어나는 사건 전체를 뜻한다. 헤겔에 따르면 세계의 산문은 그 자체로 역사성을 띄고 있다. 세계를 살아가는 개인은 그 사건들 가운데 일부를 자신의 역사로서 의식한다. 그러나 이런 의식은 다른 개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사건들이며, 따라서 모든 사건은 개인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관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모든 사건이 역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모든 사건이 인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구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의 산문은 근원적으로 역사성을 띈다.


  하나는 역사의 산문이다. 세계의 산문은 역사성을 띄지만, 그 자체로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세계의 산문은 역사의 산문이 되어야지만 역사가 된다. 하지만 헤겔은 세계의 산문들 가운데서 어떤 것이 역사의 산문이 될 수 있는지 기준을 설정하고, 역사의 산문을 조직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그 역사적 사건들이 최종적으로 ‘자유의 실현’을 향하여 나아가는 ‘정신’의 작용이라고 선포함으로써 ‘세계사’, ‘보편사’, 즉 역사를 설정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역사철학은 일종의 역사서술방법론이다. 역사서술방법론은 “첫째, 역사화의 수단으로서 일련의 기초적 ‘원리들’에 대한 선택을, 둘째, 자연과 역사의 변화에 대한 몇몇 일반적인 고려를, 셋째, 역사라는 것으로 인정해야 하거나 또는 인정해서는 안 되는 여러 조건들의 공식화를 필요로 한다.”


  문제는, 특정한 방법론에 따라 도출된 특정한 ‘역사’의 서사를 헤겔이 ‘보편사’의 위치로 끌어올린 것에 있다. 그 역사는 결국 역사서술의 방법론을 벗어날 수 없다. 방법에 의해, 그 방법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것들은 역사의 밖으로 밀려난다. 다시 말해, “세계는 절대정신이 진보에 대한 이야기를 실현시키는 것을 입증해주는 동시에 결국 그 자체의 서사를 위한 근거를 제공해준다.”(p.71)는 순환에 빠져든다.


  이 순환의 허점은, 헤겔의 역사적 편향에 의해 메워지는 것으로 보인다. 구하는 그 증거로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비유럽 지역의 철학과 사상, 문화에 대한 헤겔의 전반적인 평가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그들의 의견을 ‘확정 내용’이 결여된 추상이라고 혹평하였다.”(p.82) 또한 인도의 서사시가 그리스-로마의 비극시처럼 발전하지 않고 인간을 신에게 종속된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혹평한다. 다른 하나는 비유럽지역과 유럽지역의 서사에 대해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보편사’ 서술에서, 유럽지역을 중심에 놓기 위해 자신의 역사서술방법론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자유’의 개념마저도 유동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 모든 사람은 아닐지라도 일부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유에 대한 규정이 조절되었고, 발전된 자유에 대한 규정에 의거하여 그리스와 로마는 포함되었다.”(p.89) 자신이 자유가 가장 확대된 정신사적 형태로 제시한 게르만-기독교문화에서도, 그 안에는 수도 없이 많은 ‘비게르만-기독교’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헤겔에 따르면 게르만-기독교 문화는 인간의 정신이 완전히 발현된 역사적 ‘단계’이다. 이 ‘단계’ 개념은 이러한 차별적 역사서술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이다. 단계 개념은 단계와 단계 사이가 질적으로 다르며, 그 발전의 양상이 불연속적이라는 것을 내포한다. “끊임없이 진행하는 운동을 중단시키는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절대정신이 이 세계 안에서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동하는 것이라면, 한 단계는 이전에 얼마나 멀리까지 갔는지, 아니면 얼마나 더 멀리까지 갔어야 한 건지, 또 어디에서 멈추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갔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념 아래, 비유럽적 지역은 보편사의 발전단계에서 인도-중국적 ‘단계’라는, 저발전 단계로 묶이고 말았다. 이런 보편사적 이념이 식민지배의 이념적 기초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도의 서사 전통과 대안적 역사서술

 

  이러한 유럽중심적 역사서술에 대비해, 구하는 인도의 전통적인 역사서술 ‘이띠하사’를 거론한다. 이것은 ‘서사’라는 개념에 가까우며, 따라서 인도인들은 영어의 역사(history)를 이 말로 번역하였다. 또한 그들은 이 개념을 통해 유럽인들이 사용하는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였다. 이띠하사에 이미 유럽인들이 사용하는 의미와 비슷한 역사 개념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번역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이띠하사는 히스토리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구하의 분석에 따르면, 이띠하사는 더욱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이띠하사의 특징적인 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서사의 줄거리가 고정되어있다는 점이다. 이띠하사와 비교했을 때, 유럽의 역사가들이 역사를 이야기할 때에는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일회적인 이야기를 본 그대로 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서술에서 중요한 요소는 직접적 경험의 명확성, 역사적 사건의 일회성, 그리고 그것의 정확한 재현이다. 그러나 이띠하사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고려되지 않는다. 줄거리는 고정되어 있고, 따라서 그 이야기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또한 실제 있었던 사건인지 아무도 증명해줄 수 없으므로, 정확한 재현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그리고 기억이 나는 대로 이야기를 수시로 재구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재구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띠하사의 두 번째 특징이다. 즉, 이띠하사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서사가 재구성된다. 이띠하사가 시행되기 전,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또한 이야기 중간에 듣는 사람이 내용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자기 의견을 말할 수도 있다. 이 자체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띠하사는 서사의 화자조차도 단일한 인격체가 아니다.


  위와 같은 두 가지 특징에서 자연스럽게 세 번째 특징이 도출되는데, 그것은 서사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점이다. 이띠하사에는 원본이 없으며, 따라서 복사본도 없다. 말하는 사람을 둘러싼 맥락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또한 말하는 사람은 이야기의 구체성을 높이기 위해 서사 속에 자신의 경험을 결합시키기도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실제 서사와 말하는 사람의 경험을 구분한다는 것이, 이띠하사의 특성상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이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 이띠하사 속에 결합한다. 따라서 이띠하사는, 헤겔의 역사성 개념을 그 자체로 드러내주는 산물이며, 그러므로 더욱 본질적인 의미의 ‘역사’이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말년의 비평에서 이러한 역사의 개념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역사서술에서 나타나는 식민주의적 특성, 즉 역사서술방법론에서의 헤겔적 경향을 극복하고 창조성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역사는 공식적인 역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분인 문학에서도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공식적인 역사와 문학은 상호보완적 관계로, 서로가 서로에게 ‘세계의 산문’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서술된 역사는, 당연하게도 구체적인 개인들의 일상성이 창조적으로 표현된다. 타고르는 실제로 역사비평을 수행하는 데 있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읽어왔던 인도의 기념비적 신화와 전승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구하는, 이런 태도로 역사에 접근한다면 역사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좀 더 풍부하면서 동시에 단순한 재현이 아닌 역사적 체험의 표현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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