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영문판 2012년 2월 2면
굵은 글씨는 해석이 잘 안되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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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소말리아의 문제들을 수입한다
발상은 좋아보인다 : 체포 뒤에(after capture) 잡혀있는 곳에서 해적들을 재판에 부쳐라. 그러나 소말리아인 한 그룹에 대한 재판은 군사 투입의 결론이 정치적인 쇼였다는 점을 제기하였다.(But the trial of a group of Somails brought in at the conclusion of an army raid was a political show)
36살 압둘라히 아흐메드 구엘레는 2011년 11월 30일 석방되었다. 그 바로 전날 자정에, 그가 몇 달 동안 갇혀있던 파리의 상테(La Sante) 교도소 교도관들은 그를 밖으로 내던졌다. 그는 내쫓겨졌으며, 그리고 내버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에 대해 매우 조금 알고, 심지어 소말리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해적특별법(acts of piracy)" 에 연루되어, 3년 이상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의 석방 이후로, 구엘레는 파리 교외의 (프랑스에 사는 소말리아인들을 위해 지불된(paid))싸구려 호텔에서 지내고 있으며, 그의 좁은 방에서 쫓겨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는 완전하게 상실되었어요(lost). 모든 것이, 특히 언어가, 여기에선 그에게 외국적이지요." 그의 변호사 플로랑 뢰소 드 그랑메종이 말했다. 그가 상실감을 느낀다는 것은(feels lost) 거의 놀라기 어려운 일이다 : 프랑스에 대한 그의 유일한 경험은 교도소 벽과 교도관, 그리고 다른 수감자들의 폭력이다. "그의 상황은 선례를 찾기가 힘들고(unprecedented)," 그의 변호사는 말했다. "그는 아무런 타국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아무런 신분증이나 증명 없이, 그가 오기를 원하지도 않고 남을 수도 없는 국가에서 그 자신을 찾는다."
"이것은 당신이 사람들을 그들의 나라로부터 잡아다가 아무런 예비조사 없이 그들을 다른 데로 데려간 다음 그들을 재판하는 것을 군대에게 허락할 때 생기는 것이다." 이 사건을 맡아 일하는 다른 변호사는 말했다. 구엘레와 다섯 소말리아인들(동일국적자-compatriots)은 2008년 9월 16일 이른 시간 소말리 해역 안에서 16미터의 작은 범선(ketch)인 카레아4(Carred'As IV)호의 안(board)에서 프랑스 군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2주 전 프랑스인 커플인 장 입스 딜라느와 베나데트 딜라느는 해적에게 피랍당할 확률이 높은 구역(a high incidence of piracy)에서(1) 인질로 잡혔을 당시 프랑스를 향해 요트를 항해하고 있었다. 한 소말리아 인이 그 공격에서 죽임을 당했다. 다른 여섯은 1주일동안 프랑스 군대에 의해 불확실한 상황 속에 잡혔고, 곧 파리로 흘러들어와졌다.(2)
오직 그들 가운데 둘만이 카레아4호의 공격에 참여했다. 다른이들은 그들(해적들)이 선원을 바꾸고 있을 때, 그리고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늘어선 항구(stops)에서 그들에 가입했다. 구엘레는 그 기습작전 이틀 전에(the day before the commando raid)야 겨우 도착했다 : 그는 요트 습격자들(hijackers)이, 그를 배 안에서 밤을 보내라고 설득하기 전, 그에게 그들(해적들)에게 물고기를 조금 달라고 말했을 때 그 구역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힘든 38개월의 재구속상태(on remand)와(3) 지난 11월 파리에서 있었던 15일 동안의 재판 뒤에, 구엘레는 석방되었다; 그의 다섯 공범자(co-accused)는 검찰(기소-the prosecution)이 요구했던 것보다 많이 적은, 4년 내지 8년을 판결받았다. 재구속 기간은 특별히 길었다. : 벨기에는 비슷한 사건을 판결하는 데 8개월을 쓰고 있으며(has brought), 네덜란드는 18개월, 스페인은 19개월이다.
검찰은 이들이 위험한 테러리스트라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그러나 그 재판은 그들이 정체는 있지만 절대 알려질 수 없는 강력한 지역사람의 명령에 단지 따르기만 했을 뿐이라는 것을 밝혔다. 법정에서, 숙련된 선원인 딜라느는 그들의 미숙함(amatuerism)을 강조했다 : "그들은 배멀미가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그의 아내는 덧붙였다 : "그들은 모든 면에서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걸맞는(on them) 어떤 것도 가지지 않았습니다.[무기에서 떨어진]" 그들은 딜라느가 화를 냈을 때 그 요트습격자들이 얼마나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였는지를 함께 묘사했다. 그는 심지어 어떻게든 엄격한 규칙들(선실에서는 금연이라거나 갑판에서는 먹지 않는다)을 강제로 하게끔 하였으며(maneged to impose), 그들에게 고기잡는 기술들을 가르쳤다. 그들이 기름(pertol)을 찾았을 때, 그는 그들이 동네 낚시꾼에게 물어볼(ask) 것을 제안하였다.
그 재판의 끝은, 그들의 유괴자들에게 키스하고 그들이 "새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희생자들이라는 초현실적 상황이었다. 딜라느는 그의 고유한 평가(verdict)를 전달했다 : "나는 언제나 [구엘레는] 우리의 유괴아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유죄였는데, 그가 말하길, 그러나 단지 "그들의 죄과(their depth)를 벗어난 실없는 소리"였다.
당국(the authorities)은 그와 배심원의 관대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여론 검찰(the public prosecutor)은, "그들이 국제사회, 특히 프랑스가 주목할만한 군사 자원을 이동하게끔 이끌고 있는 해적특별법의 중대함과 같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며, 판결에 대한 반대와 구엘레의 석방에 대해 의견을 드러냈다. 그들의 변호사는 이것을 허가로서 바라본다 : "이것은 더 이상 정의에 대한 것이 아니며, 이 화제를 정치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대한 것인데," 드 그랑메종은 말했다. 소말리아 재판 동안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상황들은 적은 것이 말해졌다(Little was mentioned during the trial of Somalia's Social and political situations). 그러나, 그 변호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프랑스의 간섭을 찬양하는, 대통령 사르코지의 연설이 증거로서 포함되는 때에, 어떻게 그 재판이 정치적이지 않게 할 수 있는가? 구엘레의 석방은, 만약 그 여론의 표현이 확증된다면,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난은, 파리의 소말리아 영사 가운데 한 사람을 빌어, "그들이 그들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역으로 보일 것이다. - 영문번역 스테파니 어빈, 한글중역 박효진
각주-
(1) 필립 레이마리(Philippe Leymarie), "펀들랜드의 해적들(Pirates of Puntland)",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영문판, 2008년 12월
(2) 그 변호사들은 이것이 불법이며, 게다가 유럽인권법정(the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에 세워져야 할 사건이라고 말한다.
(3) 그들은 얼어붙을 듯 추운 프랑스에 도착해서, 각자로부터 분리되었고, 다른 수감자들에 의해 맞았으며(beaten), 그들의 변호사로부터 격리되어 아무런 방문자도 가질 수 없었고, 그들의 가족에 대한 아주 적은 뉴스만 주어졌으며, 다른 소말리아인들과 같은 방에 넣어지고 덜한 외로움을 느끼기 위해 2년을 기다려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