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화와 예술 숙제> 

  『어린 왕자』는 자신을 벗어나서 다른 사람을 알게 되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그래서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은 자신의 세계 밖으로 언제나 내쫓아버리는 존재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순수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순수함으로 덧씌워진 가장 근원적인 이기심이다. 이야기의 중심인 어린왕자가 거쳐온 여러 별의 독특한 존재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춘 듯이 보게 되고, 그것이 결정적으로는 지구에 다다라서 완성된다.

  등장하는 존재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읽어보면, 어린 왕자를 포함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와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만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전달할 뿐이다. 글쓴이의 질문에 어린 왕자는 전혀 대답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증거이다. 또한 지구 이전의 다른 행성을 여행하며 여러 존재들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도, 사실은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할 뿐 대화라고 보기엔 힘든 수준이다. 강조되는 것은 오로지 어린왕자의 느낌, 그리고 그 느낌에 의해 비친 그들의 모습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철저하게 소통이 부재된 세계의 모습이다. 대화를 배우기 전까지의 아이들은, 설령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타자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데, 이것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안되는 페이지에 압축해놓았기에 그 여행이 길어보이지는 않지만, 사실 어린왕자는 정말로 먼 거리를 돌아서 온 것이다.

  따라서 어린 왕자가 ‘어른들’이라고 표현하는 많은 존재들은, 사실 어린 왕자와 구별된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 왕자 자신의 거울들이다. 자기 생각, 자기 말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이들은 어린 왕자와 동급이다. 그래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여러 수단들은 왜곡되며, 어린 왕자와 꽃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랑조차도 그 마음을 그대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들은 몸은 자랐지만 마음은 아직 어린 왕자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그래서 어린 왕자처럼 자신의 별에서는 자기 이외의 그 누구도 살 수 없다. 이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말은, 소통을 배우지 못한 왜곡된 성장들, 실제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정신적 아이들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자면, 어린 왕자가 그토록 싫어하는 숫자에 대한 집착 또한 이해할 만한 것이다. 숫자란, 다름 아닌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표준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은 두번째 별에서 보듯이 허영심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충족적이지 않으며, 상대적 격차에 따라서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에 화폐-숫자와 같은 공통된 표준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자와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의 방점은 소통에 찍혀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서로 같은 것들 속에서 다른 것을 찾아내고, 그것의 의미를 마음에 새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타자를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해내야만 한다. 그것이 숫자로는 환원되지 않는 그 사람의 진정한 정체성이다. 물론 이것은 영원 - 즉 보편을 찬양하는 지리학자의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정체성은 개별적이며 순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오롯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만, 우리는 타자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타자를 이해하고 그것을 나의 일부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더 이상 예전의 아이와 같은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온전히 자신을 보전하는 것에서, 자신을 세계로 - 타자로 확장시키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진짜 ‘자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성장 뒤의 어린 왕자는 더 이상 어린 왕자가 아닌 ‘그’라고 지칭된다. 어른이 되는 것이란, 어린 왕자가 어른들의 세계라면서 배척했던, 하지만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아이들의 세계를 가만히 고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의 표현처럼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술주정뱅이이고 왕이며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고 지리학자로 살아가는 지구라고 할지라도, 결국 어린 왕자가 그랬듯이 지구에서 어른이 되는 이유는 혼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사막에서조차도 왕자는 글쓴이를 만나지 않았던가! 어린 왕자가 배운 것이란 바로 그 공존, 그리고 그들과 말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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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2011-07-1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아이/숫자-어른의 구도로 뻔하게 읽는 법을 택하지 않기 위해 무리한 해석을 감행.

육호수 2011-08-26 0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명/

박효진 2011-08-28 02:35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