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독일관념론 발표>
Hegel은 이미 자신의 책 『철학적 학문들의 백과사전(엔치클로패디)』에서 학문의 전체적 체계에 대해 대략적으로 밝혀놓은 바 있다. 법철학은 그 가운데 정신철학, 그 가운데서도 객관정신의 한 형태인 법의 체계와 그 속성, 그리고 그 지향점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다른 학문의 분과들과 마찬가지로 법철학 역시 엄밀한 사유의 과정을 밟아나가야 하고, 그 결과가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하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타당하다고 납득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는 학문적인 엄밀함은 분명히 지켜야함에도 불구하고, 법과 공동체를 연구하는 데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연철학의 근본적인 전제와 대비되어 나타난다. 인간은 자연철학을 하면서 인간의 의지가 전혀 반영될 수 없는, 그 자체로 완결된 체계와 구조를 갖추고 있는 자연에 대해 그 자체의 모습을 탐구하고 규명해야 한다. 하지만 법과 공동체, 나아가 정신에 대한 학문은 이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 학문의 대상에는 인간의 의지가 반드시 반영되어 있고, 따라서 인간의 정신과도 같이 끊임없는 변화를 겪으며 생성의 과정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철학의 목표는 현재 확립되어있는 형식적인 법의 근원과 구조에 대해 연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법의 지향점을 담고 있는 인간의 정신의 본질에 대해서까지 연구해야 한다. 더욱 궁극적인 것은 이 두 축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하여, 현실의 법의 모습과 그 변화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를 설명하고 그 변화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어야 한다. 법철학에 있어서 현자의 돌에 비유될 수 있는 직접적이고 전체적인 직관은 결코 주어질 수 없으며, 그것은 오로지 논리적 사유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법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엄밀한 사유가 동반되어야 함을 쉽게 잊어버린다. 논리를 포기한 채 직관이나 갑작스런 깨달음에 의존하여 법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내적 직관과 법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형식적인 법은 거부되어야 한다는 허황된 주장을 일삼고 있다. 그들은 체제를 비판하고 전복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이자 신으로부터 내려온 사명 정도로 여기고 있다. 또한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도하려고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선지자라고 평가하지만, 사실 법, 국가, 그리고 공동체에 대해 사고하는 학문을 포기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들이 지니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법과 국가의 올바른 모습에 대한 사유를 이성에 맡기지 않고 형제애와 같은 감성적인 면, 그리고 이 감성이 상징하듯 개인적인 면으로만 설명하려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그렇게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조직체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이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온 여러 종류의 공동체와 그들이 보여주는 역사적 발전의 노선을 부정하려 하고, 그것에 법칙이 숨어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든다. 또한 이런 역사적 과정의 결과로서 등장한 현재의 형식적 법의 체계 또한 함부로 무시하며, 오로지 무시하는 태도로만 임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르지 못한 태도이며, 이 모든 법의 체계가 인간의 정신의 발전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나아가서는 진리를 향한 인간의 접근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