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윤리학사』(로버트 L. 애링턴 씀, 김성호 옮김, 서광사, 2003)에서 칸트 부분 요약. 윤리학의 주제와 문제들 발표문.>

문 : 우리는 결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가? 이에 대한 칸트의 답변과 논증을 재구성해보고, 그 타당성을 평가해보라.

답 : 

  칸트는 행위가 도덕적인 영역에 속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는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가 다른 목적이나 대상에 대한 고려가 그 행위의 동기가 아니라 그 행위를 해야겠다는 의지 자체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가언 명법과 정언 명법의 차이를 가르는 기준이다. 둘째, 그 행위의 동기를 보편화시키는 사고실험을 해보았을 때 아무런 모순도 이끌려 나와서는 안된다. 이는 그 내용이 실현되는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지 검토해볼 수 있는 기준이다. 셋째는 인간을 수단과 목적으로 동시에 대우하라는 요청이 수반되는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인간 또한 물리적인 세계 안에 위치하는 존재로서, 다른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데, 이러한 요청만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는 위와 같은 세 가지 기준에서 인간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첫째, 거짓말은 정언 명법의 형식을 띄지 않고 가언 명법의 형식을 띈다. 즉, 거짓말은 구체적인 상황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이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둘째,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세계는 불가능하다. 만약 어떤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진실과 거짓말을 구별하는 기준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 세계에는 거짓말이 없는 세계일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세계는 모순에 빠져버리며, 그러므로 불가능하다. 셋째, 거짓말은 인간을 거짓말을 하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른 대우를 하는 행위인 것처럼 보인다. 거짓말이 가언 명법의 형식을 띈다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와 인간을 비교하여 인간의 위치를 상대화시킨다. 

  거짓말 논증에서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도덕성을 이루는 기초라는 점에서 이 문제에서 역시 인간 스스로의 요청과 자각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 요청은 실천적인 요소로서 매 순간, 모든 구체적인 상황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은 불가능하며, 이에 따라 도덕과 비도덕을 나누는 모든 기준이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이 ‘요청’ 이라는 말의 의미는, 순수하게 이론적인 차원 즉 윤리 형이상학의 차원에서 도덕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매우 벗어나 있다. 즉, ‘~이다.’와 ‘~해야 한다.’ 는 형식을 오가는 다른 기준(정식)들과는 달리, 요청은 언제나 ‘~해야 한다.’는 형식을 띈다. 다시 말해 ‘요청’에는 이성의 기능인 ‘판단’이 결여되어 있으며, 따라서 인간 스스로의 이성에 대한 반성만을 통해 도출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이 진정으로 그렇게 살 수 있는지 혹은 그렇게 살고 있는지는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현대사회는 인간을 수단으로서만 대하라고 이념적으로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인간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간들은 스스로를 동물화하는 데, 즉 수단으로서만 대하는 데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고, 그런 요청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를 잊어가는 듯이 보인다. 몸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에게 위장을 한다는 이유로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동물로서의 인간에게는 거짓말이란 무의미한 단어이다. 이는 칸트 스스로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사태인 듯 보이기도 한다. 그 때문에 이 ‘요청’을 도덕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지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