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 1 - 교회국가 및 시민국가의 재료와 형태 및 권력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241
토마스 홉스 지음, 진석용 옮김 / 나남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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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정치사상 숙제> 

문 : 홉스는 주권자(리바이어던)의 권위와 판단에 따르는 것이 자연상태보다 평화롭고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홉스는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며, 홉스의 주장을 평가하시오. 

답 :  

  홉스가 말하는 평화와 안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상태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는 세 가지 측면에서 자연상태를 추론해낸다. 첫째는 인간에 대한 그의 견해이다. 그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을 이성(reason)과 정념(passion)을 지닌 존재로 상정하고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그에게 이성이란 계산하는 능력이다. 정념이란 계산하는 능력 이외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마음의 여러 상태를 뜻한다. 정념은 선호하는 것 또는 혐오하는 것을 결정해주며, 이 두 가지가 각각 도덕적인 선(good)과 악(evil)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둘째는 자연권(right of nature)이다. 자연권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이다. 자연권에 대한 홉스의 정의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기 뜻대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liberty), 즉 그 자신의 판단과 이성에 따라 가장 적합한 조치라고 생각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이다. 여기에 따르면 인간에게 허용되는 행동의 범위에는 제한이 없다. 강제력을 발휘하는 법뿐만 아니라, 특정한 정치공동체(commonwealth)에서 규범적으로 강조되는 도덕률 또한 없는 상태인 것이다. 

  셋째는 인간은 결코 혼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타인(들)은 자신과 똑같이 이성과 정념을 지닌 존재들이며, 능력에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 즉 소유하려는 것이 자신과 겹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분쟁을 벌여야한다. 또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형태로 자신에게 피해를 입힐 지 알 수 없으므로 항상 경계하거나 상대의 존재를 먼저 제거해버려야 한다. 이런 분쟁을 벌여야하는 대상은 인간 전체이며, 모든 인간이 이런 행동방식을 취해야한다. 이것이 바로 홉스의 논의에서 논리적 기초가 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자연상태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인간을 이완된 상태로 이끌어줄 수 없기에 인간의 본성과 어긋난다. 인간에게는 편안하게 지내고자 하는 욕구 또한 있기 때문인데, 이는 정념이 아닌 이성의 명령에 따라 나오는 명령이다. 이것이 자연법(natural law)이다. 이런 이완된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 개개인은 다른 이들이 자신의 자연권을 똑같이 양도한다는 전제 아래 자신의 자연권을 특정한 대표자 즉 리바이어던에게 양도하는데, 이것이 사회계약이다. 이 계약을 통해 사람들은 사회상태, 시민사회(civil society)로 진입한다.

  따라서 홉스에게 사회상태란 자연상태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자연상태는 전쟁, 혼란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으며, 사회상태는 이런 요소들이 제거된 상태이다. 이론적으로는 하고 싶은 것을 실행에 옮길 권리가 모두 양도되었으므로, 사람들은 타인에게 마음대로 행동을 취할 수 없다. 또한 실천적으로는, 그렇게 하려고 시도한다 하더라도 그 사회에서 리바이어던은 유일하게 자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이런 피해를 입히는 체계가 규범 혹은 법률이다. 리바이어던은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인 동시에 그 사회를 규정하는 도덕적 규범 혹은 실정법적 법률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이성에 따라 피해와 이익을 계산해보았을 때 자신에게 올 피해가 더 크기 때문에 다른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되고, 이것으로서 사회 전체가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을 홉스는 평화 혹은 안전한 상태라고 보았다. 그에게 자연상태란 분쟁이 극에 달한 상태이며, 따라서 위와 같은 논리적 구조에서는 어떤 사회상태도 자연상태보다 더 분쟁이 심할 수 없으며, 안정을 보장받지 못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홉스는 자연상태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평화와 안정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홉스에 따르면 사회상태는 위와 같이 자연상태와 날카롭게 나누어진다. 그러나 리바이어던의 출현이 ‘실제로’ 그가 말하는 사회상태의 평화와 안전을 향한 이행을 보장해주는지는 의문이 많이 남는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경험적으로도 ‘여행갈 때는 무장하고, 여러 사람과 같이 가려고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문단속을 한다. (중략) 집안 아이들과 하인들을 어떻게 여기기에 금고 문을 잠가두는 것’이 확인되는데, 그가 예로 들어보인 이 모든 사례들은 리바이어던 - 규범과 법률을 지닌 정부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관찰된 것들이다. 자연상태 자체가 역사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례를 보여주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가 자연상태로서 지적한 사례들이 모두 엄연히 리바이어던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한다. 

  또한 리바이어던이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물리적 강제에 국한된다. 계약의 내용은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지만, 이 계약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물리적 압력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추어볼 때, 리바이어던의 출현은 상대방의 권리나 심리적 동기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연권에 입각해 행사하는 물리적 힘(능력)을 그와 똑같은 힘 또는 더 큰 힘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리바이어던은 그의 힘이 현실적으로 가해질 때에 출현할 뿐, 그 이외에는 공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순간은 모든 개인에게 자연권에 의해 보장되는 심리적 동기가 다시 출현하는 시간으로서, 논리적으로 자연상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다시 말해 리바이어던의 영향력은 연속적이지 못하고 분절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리바이어던의 존재론적 위상은 심각할 정도로 애매하다. 우선 그것은 정치공동체를 대표하고 그 안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는 타자이다. 홉스에 따르면 대표자는 독립된 인격을 지니며, 리바이어던은 정치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에게서 권리를 양도받은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정치공동체 내부의 존재이기도 하다. 홉스는 ‘자기 자신과 맺은 계약이기 때문’에 리바이어던의 판단과 집행을 거부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타자인 리바이어던은 모순적이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존재가 어떻게 정치공동체를 규합하고, 단일화시킬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결정적으로, 리바이어던을 둘러싼 모든 개념들은 비어있다. 리바이어던 자체도 인공적인 인격인데, 규범과 법률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유명적 정의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리바이어던이 실제로 어떤 내용인지는, 즉 정의(justice)와 불의(injustice)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사회상태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기준 - 평화와 안전이라는 말도 결국 리바이어던이 내리는 규정에 따라 그 의미가 유동적이다. 그러므로 리바이어던의 권위와 판단에 따르는 것이 평화롭고 안전하다는 주장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실제 어떤 모습일지 평가할 수 있는 메타적 기준은, 적어도 홉스의 체계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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