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심리학 - 사소한 우연도 놓치지 않는 기회 감지력
바버라 블래츨리 지음, 권춘오 옮김 / 안타레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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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노력하면, 운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 문장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이 펼쳐 보이는 정도의 빌드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겉보기에 모순이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사람이란 아마도 운 좋은 사건 즉 행운을 많이 겪은 사람을 가리킬 텐데, 행운이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다. 의지에 따른 노력으로 행운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있다면, 그는 신이거나 악마임에 틀림없다. 책을 읽기 전까지 저 문장에 대한 내 해석은 이랬다.


이 문장을 의미 있는 말로 만들기 위한 이 책의 첫 번째 단계는 ‘운이 좋다’는 말의 뜻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책 제목과는 사뭇 다르게 이 책의 앞부분, 범위를 조금 더 넓히면 거의 1/3은 ‘운’에 대한 인문학적 배경 설명이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운이 좋다는 말을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그에 대한 현대적이고 수학적인 접근법까지. 이 부분을 잘 따라가면, 운이 좋다는 것은 사건의 특성이 아니라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의 문제라는 결론에 이른다.


사건은 무작위로 벌어진다. 누군가에게 많이 벌어지거나 적게 벌어지는 것 자체가 사건이 무작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김씨가 두 번 로또 1등이 되는 동안 이씨와 박씨는 2등은커녕 5000원조차 못 받는 것이야말로 진짜 무작위의 결과라는 뜻이다. 이걸 잘 보여 주는 자연 현상이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와이토모의 반딧불이’다. 불을 내는 생명체들이 정말로 무작위로 있었다면, 오히려 간격은 일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김씨의 로또 당첨이 행운인 이유는 행운이 김씨에게 일어나서가 아니다. 이씨와 박씨가, 우리가 김씨를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정반대의 방향에서 해석의 문제를 다시 보여 주는 실험도 등장한다. 두 종류의 카지노 룰렛 판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하나는 흰색, 검은색, 회색이 3등분돼 있는 판이고, 다른 하나는 18등분된 조각에 차례로 흰색, 검은색, 회색이 배치돼 있는 판이다. 최씨는 3등분 판에서 검은색이 나와 돈을 땄고, 황씨는 18등분 판에서 검은색이 나와 돈을 땄다. 누가 더 운이 좋을까?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의 2/3가 운이 더 좋은 쪽은 황씨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도, 이 부분을 읽을 때 ‘당연히 황씨 아냐?’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설명에서 알 수 있듯, 두 룰렛 판에서 검은색이 나올 확률은 똑같이 1/3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나는) 황씨가 더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어쨌든 그 사람들(내)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점에서, 해석의 문제다.


두 번째 단계는,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라는 내면의 문제를 생물학적, 신경생리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과학적인 접근이다. 이 부분에서는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심리학 실험이나 일화가 등장한다. 머리에 쇠파이프가 관통해 뇌가 망가진 뒤 성격이 바뀐 사람이라든가, 우리가 ‘○○의 저주’라고 부르는 사건들의 실체라든가, 덧셈과 뺄셈을 할 줄 아는 것으로 유명해진 당나귀 등등.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간단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잡식으로 알아 두면 좋을 신기한 실험들도 등장한다. 글자와 색깔을 헷갈리게 배치해서, 예를 들어 파란 글씨로 ‘빨강’이라고 적어 놓고 ‘글자는 무슨 색인가요?’라거나 ‘뭐라고 써 있나요?’라고 물어보면서 인지 능력을 시험해 보는 실험 같은 것은 직접 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 결과, 해석의 차이가 신경생리학적 차이로 드러난다. 어떤 사건이 행운이라고 생각할 때 활성화하는 뇌의 부위와, 불운이라고 생각할 때 활성화하는 부위가 다르다. 같은 부위라고 해도 활성화하는 정도가 다르거나, 다른 식으로 반응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를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신경생리학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으로 넘어간다. 물론 이 차이를 알아 보기 위해 동원하는 도구인 뇌파나 자기공명영상(MRI) 등이 아직 뇌에 관해 우리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책의 지은이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해석이라는 불투명한 과정을 신경생리학적 결과물이라는 그나마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형태로 전환해 관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훌륭한 성과다.


이렇게 신경생리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스스로를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특징은 이렇다. 첫째,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극에 목표 의식, 이 책의 용어를 따르자면 기대를 갖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둘째, 무작위로 일어난 사건을 감지하면 그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유형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셋째, 자신이 구성한 유형에 근거해 그 사건을 자신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통제가 아니라면 최소한 이해하기는 했다고 믿는다. 넷째, 자신의 통제 방법이나 이해가 실제 세계와 잘 들어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그 틀을 버리고 다시 유형 모색을 시작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운이 좋은 사람의 특징이다. 스스로를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와 정반대다. 자극에 둔감하고, 유형을 찾아내지 않고 그냥 일어난 사건이라 치부하며, 세계는 근본적으로 통제불가능한 것이라고 믿으며 불안해한다. 이런 면모 각각이 신경생리학적으로 증명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운 점이다.


세 번째 단계는, 운이 좋은 사람의 신경생리학적 특성에 가깝도록 우리 스스로를 바꾸면, ‘운이 좋은 사람’이 된다는 주장이다. 뇌의 구성은 해석의 경향과 연결돼 있으니, 해석의 경향을 바꾸려는 노력으로 뇌의 구성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우리(내) 뇌의 구성 자체가 내 삶 속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수많은 해석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기에 단숨에 이를 재조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래서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까지 쌓아 온 많은 해석에 대항할 새로운 해석을 쌓아 나가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뇌의 가소성(유연함)이라는 흥미로운 성질 때문에 이런 일은 사람에게서 일어날 수 있다.


신경생리학적 근거를 동원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려는 책의 상당수가 가소성을 마지막 열쇠로 내세우고 있기에, 이 책의 결론에 다소 맥 빠지는 면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운이라는 가장 비과학적인 단어를 해석하는 이 책의 접근법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첫 번째 덤이고, 운이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이런 실험 설계까지 했구나 하는 다채로운 실험 이야기는 두 번째 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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