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의 진화
홍성욱 지음, 박한나 그림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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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은 과학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인슈타인? 파인만? 이상한 공식들? 어쩌면 대부분은 책상머리에 가만히 앉아서 수학 문제를 푸는 너무 지루한 과목이라는 너무 나쁜 기억 같은 것이 먼저 생각날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넓은 범위의 과학자들 대부분은 실험을 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과학적 활동’의 80% 이상은 실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이미지들은, 실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지, 과학에서 실험을 너무 간과해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죠.

거의 주방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중세 유럽 연금술사들의 실험실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최첨단 장비와 기술을 다루며 온갖 연구와 발명품이 쏟아져 대학과 기업에 부설된 실험실로 바뀌기까지, 실험실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한번 확인해보시죠.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실험실입니다.

우선 실험실의 어원부터 설명해야겠네요. 실험실은 영어로 laboratory입니다. 라틴어 laboratorium에서 온 말이고요. 앞에 labor라는 단어가 붙어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일하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과학 실험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는 않았죠. 이 단어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문헌이 1592년에 쓰인 것이라고 하는데, 이 때는 우리가 아는 이른바 근대과학이 아직 성립하기도 전이기 때문에 ‘과학 실험을 위한 공간’이라는 뜻을 아예 띨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대체 16세기, 17세기의 실험실은 어떤 공간이었을까요? 연금술사들의 개인 공간이었다는 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입니다. 금속을 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보니 금속을 다룰 열을 내는 화덕과 금속에 첨가할 화학약품을 다루는 증류기가 기본으로 갖춰져 있고, 금을 만드는 ‘비법’을 들키면 안 되니까 연금술사의 집안 깊은 곳에 몰래 마련해놓는 게 보통이었다고 하네요. 뉴턴이나 보일 같은 우리가 아는 유명한 근대과학자들도 이런 실험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시설에서 연구했기 때문에 ‘최후의 연금술사’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하네요.

실험실을 ‘과학적 연구의 공간’이라고 부를 수 없었던 데는 철학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자연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자연을 연구해야 하는데, 실험실의 환경은 사람의 손길이 미친 것이 너무나도 분명해서 ‘자연’이 아니라는 사고방식도 실험실과 과학이 연결되는 데 걸림돌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오히려 실험실 속 실험이야말로 변인을 통제함으로써 자연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게 우리가 교과서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이야기 아닌가요? 이런 사고방식의 전환을 이끌어내기 위해 연금술사들은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화학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는 방식을 모사하고 있기 때문에 실험실도 또 하나의 자연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이것 조금 웃기지 않나요?

이런 실험실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변화합니다.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작업이 연금술에서 화학으로 바뀌고, 실험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공개된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실험실을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하는 주체도 연금술사 개인에서 과학에 관심이 많은 귀족 후원자로, 여기서 다시 대학과 국가와 기업으로 바뀝니다.

이 책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서, 과학철학자 브루노 라투르가 프랑스의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인용하면서 ‘세계 전체를 실험실화’한다는 다소 문학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을 소개합니다. 약간 무리해서 단순하게 얘기하면, 과학자 본인의 명성을 드높이거나 또는 국가나 기업처럼 과학적 연구를 하는 기관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 자연상태로 놓여 있던 여러 사물을 마치 실험실에 있는 도구들처럼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라투르에 따르면 파스퇴르는 세균과 백신에 대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증명하기 위해 병에 걸리지 않고 멀쩡한 소와 닭에게 병균을 주사하거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백신을 사람에게 투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를 잘 내놓게 만들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파스퇴르를 지원하고 대변해주기도 하고요.

이밖에도 이 책은 실험실을 둘러싼 여러 과학사적, 사회학적, 철학적 쟁점들을 우리에게 부드러운 문체로 소개합니다. 저자 홍성욱 교수 또한 시민을 위한 글쓰기나 강좌와 학술적 연구논문을 넘나들며 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오랫동안 들려줘 온 이야기꾼인 만큼, 책의 재미만큼은 보장드릴 수 있습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함께 추천드리는 책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입니다. 베이컨은 수능 윤리와 사상에서도 항상 문제로 나오는 단골 철학자인데, 책에서 소개된 것처럼 실험을 ‘과학’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하기도 했습니다. 실험의 철학적 기초를 놓았다고나 할까요?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그의 대표작이고, 자신의 철학적 입장에 입각해 구상한 이상 사회의 모습을 그려놓은 책입니다. 실험실의 진화 에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실험 조직에 대한 구상 부분을 소개했는데, 그 부분이 아니더라도 책 자체가 이상향을 그리는 ‘유토피아 문학’의 고전 중 하나로 꼽히니 읽어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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