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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대의
지젤 알리미 지음, 이재형 옮김 / 안타레스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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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프랑스에서 최초로 임신중절 합법 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사.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운동가 지젤 알리미의 이력에서 가장 잘 알려진 두 가지 사건입니다. 지난해 7월 28일 그가 사망했을 때 프랑수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메시지를 냈을 정도로, 프랑스 역사에서 그가 남긴 발자취는 매우 뚜렷합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1970년대에 쓰였고 1992년에 새로운 서문과 함께 다시 출판됐습니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자라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피해자로서 성장한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그 사회적 차별이 집약된 제도로서 ‘낙태금지’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잘 요약해서 설명합니다. 국제사회에서도,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오랫동안 고민하고 다뤄온 사람의 견해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우리의 시선을 넓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임신중절입니다.
퀵서비스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의 지은이 지젤 알리미는 프랑스에서 최초로 낙태죄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사로 유명합니다. 이 재판을 보비니 재판이라고 하는데요. 임신중절을 한 산모와 임신중절 수술을 한 의사, 그 의사에게 수술을 의뢰한 산모의 어머니 모두가 재판정에 섰지만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죠. 이 책에서 지젤 알리미 자신도 원치 않는 임신으로 여러 차례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태아를 인간으로 간주해 임신중절 수술을 살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성적 방종의 증거라며 수술한 여성을 매도하기도 합니다. 지젤 알리미가 활동했던 시기는 주로 1970년대지만, 결코 옛날 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낙태죄’가 수차례 헌법재판소에 올라간 결과 불과 2년 전인 2019년에야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져 법을 수정하고 있고, 미국 텍사스주는 지난달부터 의료상 위급상황을 제외한 모든 경우에 임신중절 수술을 금지하는 법안을 시행했다가 연방 법원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젤 알리미는 이 책에서 임신중절이 여성의 건강 문제와 직결돼있다고 경험을 통해 주장합니다. 그는 의학적으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사람에게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가 자궁에 염증이 생겨 며칠을 앓아누운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의학적으로 안전한 방식으로 수술을 받는 게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데도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이를 범죄/불법으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보비니 재판에서도 알리미는 여성의 보건과 건강 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는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죠.
게다가 알리미는 사회도 국가도 임신중절을 그 자체로 나쁘게 보지 않는다는 증거를 여러 군데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전적으로 이상이 있는 아이에 대해서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것이죠. 알리미가 한창 투쟁하던 1970년대 프랑스도, 관련 법을 처음 제정하던 당시 독일도, 낙태죄가 합헌이던 우리나라에도 이 조항은 삽입돼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리미를 포함한 여성주의자들은 ‘국가가 재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임신중절 수술의 법적 지위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모로 논쟁적인 주제라, 제 개인적인 입장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밝히진 않으려 합니다. 다만 책을 좋아하고 읽는 독서인이라면, 임신중절에 관한 여러 주장 가운데 어떤 게 설득력 있는지 곰곰이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개인의 경험을 여성주의적 입장과 결합시켜 다양한 논점에 대해 잘 정리된 입장을, 다소 편하게 읽어볼 수 있는 에세이 형식으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우리나라의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에 관한 헌법재판소 판결문입니다. 다름 아닌, 2019년 4월 11일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내린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임신중절에 관한 논의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헌법재판소에 올라간 것도 여러 번입니다. 하지만 낙태를 죄로 처벌하는 조항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죠.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임신중절에 관한 논쟁의 양쪽에서 어떤 근거를 내세웠는지, 각각의 의견에 대해 우리 사회에 현재 합의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알려고 한다면 이 판결문이 가장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