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뚝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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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잃은 엄마는 오빠를 데리고 송도를 떠나 경성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엄마가 이제는 나까지 서울내기를 만들겠다며 데리러 오셨고, 그렇게 나의 서울 생활이 시작됩니다. 오빠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좋은 집에 살며 서울사람이 된 것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판자촌에서 근근이 먹고 살며 집주인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신세를 면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빠와 나에겐 단정한 옷을 입혀 학교를 보내고는 공부해야 출세하고 신여성이 된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엄마. 주변 사람들을 상것이라고 내리보면서도 직접 만나서는 굽신거리는 엄마. 그런 엄마와 함께 억척스럽게 살아간 끝에 집에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작으나마 집이라도 마련한 게 다행이긴 합니다.

그러나 곧 전쟁이 터지고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던 오빠는 전쟁통에 사망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자식과 손자들이 잘 자라준 덕분에 서울에서 그럴듯한 연립주택과 아파트를 옮겨 다니며 어느덧 나는 중년이, 엄마는 할머니가 됐습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들어온 어느날 밤 엄마가 빙판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골반뼈가 부러져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뼈를 붙이는 큰 수술을 마친 그 날,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으로 엄마는 헛것을 보고는 헛소리를 내지릅니다. 오빠가 죽던 그날 밤의 일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대한민국과 조선 양쪽이 서울을 뺏고 뺏기는 와중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도망자 신세가 된 오빠는 공산당 간부의 총에 맞아 사망했고, 엄마는 수술을 끝낸 와중에 그 날의 기억을 꺼낸 것입니다.

수술 뒤 엄마는 재활에 성공하고 약간을 더 살았지만, 끝내 임종을 맞이합니다. 더 이상 삶을 이어나가야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와중에 맞이한 죽음이었습니다. 가족을 그렇게까지 많이 힘들게 하지는 않은 순탄한 죽음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앞에서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맏조카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느라 분주한데, 화장해서 뼛가루를 강화도에 뿌려달라는 엄마의 소원과는 달리 매장을 진행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가매장한 상태에서 엄마의 묫자리를 표시한 말뚝에 새겨진 엄마의 이름, 나 기자에 잠잘 숙자로 새겨진 엄마의 이름을 보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말뚝입니다.

사실 소설은, 특히 박완서 선생님같은 대가가 쓴 소설은 직접 읽어보는 것이 참맛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와 나와 오빠와 그 주변을 둘러싼 여러 인물과 환경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을 하나하나 풀어서 이야기하기엔 제 능력도 부족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죠. 그럼에도 짧게 생각해보자면, 말뚝의 의미만큼은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문학지문 독해하듯 상징이 어떻고 숨은 뜻이 저떻고 하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니, 편하게 들어주세요.

엄마의 말뚝에 등장하는 엄마는, 적어도 제가 보기엔 계속해서 둥둥 떠다니고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음의 고향이 없다고나 할까요? 처음엔 그곳이 송도였고, 그 이후엔 서울에 와서 처음 자리를 잡은 현저동이었습니다. 소설 속의 나는 엄마의 말뚝이 현저동이었다고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엄마의 삶에서 겪은 가장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그곳이기도 하죠. 그래서 오히려 심리적으로 탈출하고 싶은 장소겠지만, 동시에 자신을 얽어매는 장소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후엔 집을 사고 또 딸과 손자들이 성공해서 잘 부양하고는 있지만, 수술 이후에 보여준 발작처럼 그 기억은 언제나 엄마의 기억과 인생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엄마가 여성이라는 점도 이렇게 둥둥 떠다니는 삶을 만든 요인인 것 같습니다. 남편에 얽매이는 삶, 자식에 얽매이는 삶, 그밖에도 사회가 자신에게 강요하는 여성으로서의 역할에 얽매이는 삶, 자신은 그것을 벗어던질 수 없지만 딸은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면 하고 바라는 삶, 하지만 그렇게 얽매인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이는 삶. 그런 의미에서 엄마의 삶이 고정과 유동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는 말뚝으로 형상화될 수 있을 것 같고, 삶에서 벗어나 안식을 찾은 순간에야 그 이름이 온전히 새겨진 비석으로 교체될 것이 된 그 말뚝으로 표현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앞에 놓은 이 책은 박완서 전집의 11권입니다. 표제작은 엄마의 말뚝이지만 그 이외에 다른 단편, 특히 또 다른 대표 단편으로 불리는 ‘꿈꾸는 인큐베이터’도 실려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번 기회에 엄마의 말뚝을 처음 접하셨다면, 이 전집에 실린 다른 작품을 함께 감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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