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소녀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김명환.김엘리사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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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만나 독재 시절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온 헤라르도. 집에 오는 길에 차가 고장났는데 다행히도 길에서 선의를 베푼 운전자인 의사 로베르토를 만나 함께 집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라르도의 아내인 파올리나는 로베르토가 감옥에서 자신을 고문하고 성적으로 학대했던 의사라는 사실을 기억해냅니다. 그가 잠든 사이에 때려눕히고 기절시켜 의자에 묶어놓고는 “나를 고문했다”고 자백하길 강요하죠. 반면 로베르토는 파올리나가 정신병에 걸려 헷갈린 것이라며 풀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헤라르도는 위원 자격을 상실하고 아내의 사적 복수를 방관했다는 비난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아픈 기억을 무작정 묻어두라고만 할 수는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합니다. 헤라르도는 로베르토에게 거짓으로라도 진술하고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합니다.

이 세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로베르토는 정말 고문관이었을까요? 파올리나의 복수는 정당한 것일까요? 헤라르도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요? 어두운 역사를 정리하는 방법에 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희곡 <죽음과 소녀>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진상’입니다.

칠레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사진상규명은 첨예한 정치적 문제입니다. 일제강점기나 전쟁 시기 각종 민간인 학살과 며칠전 헬기 사격 관련 판결이 내려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해 군부독재 시기에 있었던 각종 사건 중 일부는 아직까지 그 진상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정치적 문제로 부각되면, 한쪽은 아무 사건에나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들이밀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래를 바라보자는 틀에 박힌 말만 반복하며 덮고 가는 데 급급하죠. 특정한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태도는 유리하냐 불리하냐에 따라 어느 쪽에서나 보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덮고 가자는 쪽이 더 뻔뻔하고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사람들이 사건의 진상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몸에 남은 상처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엄연히 존재한다면 우선은 그 상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 귀를 기울여 들어봐야 할 것입니다. 없는 사람 취급하고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다고 해서 피해가 사라지진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태도야말로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보다는, 우리가 이 책에서 보는 파올리나의 행동처럼 사적으로 복수하겠다는 열망만 더 강하게 만듭니다. 요새 인터넷에서는 이런 걸 ‘사이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더라고요. 통쾌하긴 하지만, 사이다의 설탕이 혀에 뒷맛을 남기는 것처럼 뭔가 텁텁하죠.

파올리나가 그렇고 모든 사람이 그렇듯 자신의 피해에 대해서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피해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정리하는 것. 이게 ‘진상’을 밝히는 일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에 호소하지 않아도, 그 사건에 지대하게 관심을 쏟지 않더라도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되겠구나’라는 느낌을 줄 수 있게끔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 이 목적이 달성됐을 때야말로 ‘진상’이 규명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콘텐츠로 제가 가져온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인빅터스>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분리 시절 백인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진 스포츠 럭비를 흑인들도 함께 즐기는 온국민의 스포츠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오늘 읽은 책 <죽음과 소녀>가 과거사 청산이라는 주제에 대해 사적 복수를 상징하는 파올리나와 갈등을 상징하는 헤라르도를 보여준다면, <인빅터스>에서는 그것과 완전히 정반대에 있는 ‘조건 없는 용서’를 상징하는 인물인 넬슨 만델라를 보여줍니다. 럭비에 신경쓰는 대통령 만델라에 대해서 “고통받았던 흑인을 외면하고 백인을 그대로 우대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이 나라의 흑인 중에 내가 가장 많은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니 내가 용서하는 것도 가장 큰 용서가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을 보면, ‘도덕적 지향점이 뚜렷한 위대한 정치인의 모습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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