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독서 동아리 - 책이 금지된 시대, 만화로 보는 1980년대
김현숙.라이언 에스트라다 지음, 고형주 그림 / 이데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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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퀵서비스


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비밀 독서 동아리> 시작합니다.

1983년, 현숙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국립대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합니다. 첫날부터 정문에서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마주치고,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대학생활을 시작합니다. 잘생긴 학보사 편집장 오빠 훈의 손에 이끌려 탈춤 동아리에 가입하고 그의 소개로 독서모임에 참여했는데, 실제로 그곳은 정부에서 금서로 지정한 책을 몰래 공수해와서 읽는 동아리였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의 진실에 관한 비디오를 보고, 전단지를 만들고 시위용 화염병을 제조하고, 동아리에서 함께 읽는 다양한 책에 푹빠져 캠퍼스의 나날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을 정부가 그냥 내버려둘 리 없겠죠. 경찰과 안기부의 요원들은 교내에서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체포하고, 고문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동아리 선배 지후가 체포당해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통일을 위하여”라는 김일성의 글을 읽고 있었단 사실까지 발각돼 해체될 위기에 처하고, 주인공 현숙도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됩니다. 이에 맞서 동아리원들은 지후를 석방하라는 시위를 준비합니다. 동아리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나라는 독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요? 저자의 직접 경험을 배경으로 1980년대 한국 대학의 풍경을 그려낸 영문 그래픽노블, 김현숙과 라이언 에스트라다의 <비밀 독서 동아리>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의식화’입니다. 1980년대 대학에는 탈춤반, 풍물반 등 ‘전통문화’를 잇는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정부가 금서로 지정한 책을 읽는 동아리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공연도 많이 하고요. “대학에 와서 서양의 학문과 사회이론만 공부해서는 민중을 이해할 수 없고, 민중의 생활을 이해해야 우리가 그들과 함께 혁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시작된 일종의 문화운동이었다고 합니다. 뭐, 이렇게 하던 게 진짜 “민중문화”를 체득하는 활동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죠.

흔히 이런 동아리를 “의식화” 동아리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 신문과 뉴스에서 보여주는 것만 보고 들어서 “부르주아적” “반민중적” 사고에 세뇌된 정신을 털어내고 혁명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는 공간? 이렇게 표현하면 너무 과격하려나. 내가 알던 것과는 죄다 반대되는 것만 선배들이 알려주니까,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고 내가 주변 친구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과정이에요.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너무 몰입하면 한쪽 시각으로 쏠리기 쉽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 찾기도 어려워져서 친구도 잃고 그런 부작용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1980년은 형식적으로는 실질적으로든 독재자의 통치였다는 게 명백했고, 그래서 실제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금서를 지정하고 사람들을 탄압했으니, 그에 반대하는 “의식화”의 세계관이나 사고방식이 옳은 구석이 많았죠. 단순히 현재 정부와 그에 영합하는 사회의 꼰대들이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하고 반대해도 나름 건전한 사고방식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지금은 어떨까요? 그 때 “의식화”를 통해 시대정신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이제 50~60대로서 사회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세대는 아래 세대 답게 “주류”를 싫어하고 그들이 하는 모든 것에 반대하죠. 요새 이른바 “보수 우파” 유튜버라고 불리는, 채널 구독자수가 막 50~60만씩 되는 사람들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의식화”를 시도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이 사람들의 서사가 1980년대의 “의식화” 과정과 비슷해보인다는 게 제 눈에는 매우 흥미로워요. “386 부모 밑에서 태어나 전교조 선생들 밑에서 좌파적 시각만 보고 배워서 생각없이 민주당 찍는 너님들에게 내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게!”가 이런 사람들의 전형적인 멘트입니다. “민주화”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어감으로 쓰는 용법이나, 정당한 민주적 절차를 거쳐 쫓아낸 과거의 집권자를 찬양하는 태도에는 이런 심리적 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시민의 권리를 되찾는 과정과 정치구조의 발전을 이렇게 단순하게 이해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더욱 복잡해질수록 단순함은 해악이 됩니다. 꼰대들이 입에 민주주의를 달고 산다고 해서 나의 정치적 미래를 독재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정말로 더 나은 사회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 우리의 초점을 맞추고, 그에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골라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학생 청취자들에게, “너네가 모르는 새로운 걸 알려줄게”라고 누군가 다가온다면 일단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의식화’ 사기꾼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스스로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교육진담 제작진 모두가 여러분이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하는 책은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입니다.

주인공이 속한 동아리에서 읽는 많은 “금서”들 목록을 보면서, 현재도 의미있을 만한 것을 꼽자면 이 책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원래 고전인 존 로크의 <통치론>은 논외로 하고, 김일성의 저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냥 정치 팸플릿이고요, 이제 약간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 것 같은 김지하, 중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쓰였던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김정환의 시는 이제 시대적 사명을 다 한 것 같고요. 촘스키는 학자로선 훌륭하지만 정치비평가로서는 잘 모르겠고. 행정가로서의 논란이 많은 데다가 이제 그 이미지가 완전히 소진돼버린 체 게바라도 그렇고. 지금 봐도 선동적이라 약간 머뭇거려지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나, 교육학 분야의 고전이긴 하지만 라틴아메리카라는 배경 때문에 무작정 우리 교육현장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도 빼면, 남는 게 이것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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