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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가는 길 ㅣ 쏜살 문고
강신재 지음 / 민음사 / 2019년 11월
평점 :
2분 퀵서비스
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해방촌 가는 길> 시작합니다.
짧고 흥미진진하다는 점에서 소설로서의 미덕을 갖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욕은 할 수 없고, 상상해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아닌데 샤방샤방한 느낌을 주는, 어딘가 아주 묘한 작품들이 모여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단편인 <황량한 날의 동화>가 여러모로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욕망’입니다. <해방촌 가는 길>을 비롯해서 이 책에 실린 네 권의 단편은 1950년대 전후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이 시기를 표현할 가장 적당한 말을 찾다보니 처음엔 “폐허”라는 단어에 이르렀는데요. 이런 폐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측면 중에 이 책에 실린 소설은 무엇에 주목했는가 생각해보니 “욕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고요.
1950년대 한국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 내부 갈등으로 인한 폭력과 한국전쟁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게 사라져 버렸고, 그만큼 사람들의 신념체계 또한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세상에 믿을 놈도 믿을 것도 하나 없는데, 몸은 살아있으니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지탱해야 했던 때로 이 시대의 분위기를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존 자체가 사람들에게 절대적 명령으로 간주되던 정신적 상황이 2020년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든 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쳐갑니다.
신념이 없으니 생존에 필요한 것은 욕망 뿐인 듯 합니다. 누군가는 이전 시대엔 결코 용납되지 않을 방법으로 사람들의 삶을 떠받치고, 그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동력이 그 잘못된 방법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못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욕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그 누군가는 더욱 대담하게 원하는 것을 갈망하고 요구하는데, 그게 사람들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정당한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쪽도 “진짜로” 원하는 최선의 삶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최선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세계는 사라졌다는 걸 모르진 않는 공통감각 같은 것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이전에는 억압과 은폐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행동과 욕망이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떠받치고 있다는, 자신을 주장할 정당한 ‘몫’이 생긴 것이니까요. 물론 이 시대 전에 여성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할을 정당하게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의 압력이 훨씬 더 셌던 것이죠. 반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고요. 어쨌든 사람들에겐 과거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고, 그에 비춰봤을 때 이전엔 용인받지 못하던 행동을 더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하기 때문에 눈에 더 띄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렇기에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 노동에 종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방촌 가는 길>의 기애나,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은밀한 소원을 지닌 <황량한 날의 동화>의 명순 같은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고, 부유층의 이복 남매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젊은 느티나무>의 설정 또한 이런 이른바 여성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어요.
2제 아이랑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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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콘텐츠는 손창섭의 단편 <비 오는 날>입니다. 우리가 읽은 강신재의 단편이 1950년대 여성의 욕망을 보여준다면, 손창섭의 단편은 1950년대 남성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비 오는 날>이나 <잉여인간>이 대표작일텐데, 강신재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 이를테면 고백했는데 까였다고 자살하는 <해방촌 가는 길>의 남성이나 아편 중독으로 자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황량한 날의 동화>의 남성 같은 이들의 자기고백이라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던 제도와 사회적 권력은 사라지고 전쟁에 나갔다가 몸이 다쳐서 돌아왔으니 언제나 누군가의 돌봄의 대상이 되어야 하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모두 무너져내려 “위기”에 봉착한 남자의 모습을 굉장히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정말 처절하게 찌질하고 비참하고 굴욕적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