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도시 - 대규모 전염병의 도전과 도시 문명의 미래
스티븐 존슨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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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퀵서비스


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감염도시> 시작합니다.


콜레라는 인류보다 더 오래 생존해온 세균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으로,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인도와 아시아에서 큰 강을 끼고 발달한 몇몇 도시에서만 가끔 발생했을 뿐, 전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은 아니었죠. 하지만 1500년대 이후 유럽의 대외정복사업에 따라 인력과 자원의 국제적 이동이 활발해졌고, 콜레라 또한 이 흐름을 따라 유럽과 미국 땅을 밟습니다. 마지막 안전지대였던 영국마저 1800년대 초에 첫 감염자가 발생했고, 아주 짧은 시간에 진행된 도시화로 인해 높아진 인구밀도와 비참한 수준으로 떨어진 위생환경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원인도 해결책도 오리무중인 채로 시간은 흘러가죠.


1854년 8월 런던 뒷골목 브로드 가의 한 아이가 전형적인 증상을 보인 뒤, 콜레라는 하루에 수십 명의 사망자와 수백명의 감염자를 발생시키며 삽시간에 런던을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콜레라의 원인을 잘못 진단한 보건당국의 조사와 정책이 모두 헛수고로 돌아가는 가운데, 마취가 전문분야인 의사 존 스노우는 보건당국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콜레라 환자들을 조사하고, 감염자들의 분포를 나타내는 지도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교구 목사였던 헨리 화이트헤드는 사망자들을 위한 장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다니던 도중 스노우를 만나게 됩니다. 스노우는 콜레라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방역에 도움을 주는 정책을 제시하게 될까요? 의사 스노우와 목사 화이트헤드의 만남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854년 발생한 콜레라 감염사태를 배경으로 1800년대 런던의 풍경, 도시화의 진행과정과 양면성, 의학과 역학의 발달 등 다양한 주제를 압축해 꿰어놓은 책, <감염도시>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패러다임”입니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나오는 단어라는 건 너무나 유명합니다. 견본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파라다이그마’에서 온 단어이면서 동시에 이 단어의 고대 그리스어 용례가 지식을 뜻하는 단어 ‘에피스테메’와 거의 같다는 것도 언급해두고 가면 좋겠네요.


저는 학생들이 패러다임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알고 그 개념을 논술이나 기타 필요한 곳에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단계 자체는 이제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개념의 의미는 심지어 토마스 쿤 스스로도 엄밀하게 정의하는 데 실패했어요. 이게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에 가장 많이 가해진 비판 중 하나일 정도입니다. 또 이제 어느 곳에서나 패러다임이라는 단어가 다 쓰이기 때문에 대강 어감만으로도 “특정 시대에 다수의 사람들이 따르는 신념체계”정도로 다들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이 단어를 쓴다는 것 자체로 멋있어보이는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차별화하려면, 실제로 과학의 어떤 영역에서 어떤 시기에 어떻게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관해 구체적인 정보를 습득하고 그걸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이 바로 패러다임의 교체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패러다임이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는 걸 계속 보고 있는 이 때에 시의성까지 갖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질병의 “나쁜 공기” 원인설과 물 원인설의 대립입니다. 질병에 관해서 당시에 존재했던 두 가지 패러다임입니다. 보건당국을 지휘하는 사람들은 “나쁜 공기” 원인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고, 반면 존 스노우는 물 원인설을 지지하는 사람이죠. 화이트헤드 목사는 나쁜 공기 원인설 지지자였다가 존 스노우를 만나서 설명을 들은 뒤 물 원인설로 돌아서고요. 존 스노우가 나쁜 공기 원인설을 믿지 않았던 이유는 기체로 진통효과를 내서 수술을 하게 하는 마취 기술의 전문가여서 공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마치 지금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가 하는 것처럼 감염자 및 사망자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정리한 결과 브로드 가 펌프에서 나온 물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진 않습니다. 사람들이 패러다임의 변화에 관해서 흔히 두 가지 도식을 떠올리는 것 같은데요. 하나는 틀린 옛것과 맞는 새것의 대립이라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입증할 수 없는 것 두 가지 사이의 대립이니 맞고 틀린 걸 가릴 수 없다는 무책임한 상대주의의 관점입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패러다임 교체 상황에서 이 두 도식은 거의 들어맞지 않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양쪽 다 맞지만 어느 한 쪽이 더 잘 맞고, 더 잘맞는지 검증하는 실험을 거쳐 실용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면 그걸 사실로 간주해도 무방하다는 겁니다.


나쁜 공기 원인설과 물 원인설은 각각 맞는 면과 틀린 면을 모두 갖고 있고, 오히려 새로 등장한 이론인 물 원인설이 입증 논리와 증거가 훨씬 더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나쁜 공기 원인설을 지지한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이가 나이팅게일인데, 실제로 나이팅게일은 나쁜 공기 원인설에 기반해서 군병원 시설을 개선하고 간호체계를 수립함으로써 크림전쟁에서 영국군 측 말라리아를 퇴치한 것으로 유명해진 사람이거든요. 그렇다면 나쁜 공기 원인설을 알아서 거부할 이유가 없어지죠. 실제로 말라리아는 위생환경이 좋지 않아 생긴 모기가 옮기는 질병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후대의 사람인 우리는 다 알고 있듯이,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에선 옳았고 런던 콜레라 사태엔 틀렸던 것일 뿐입니다.


콜레라 사태에 옳았던 사람인 존 스노우조차 실제로 원인균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애초에 펌프를 잠정적으로 원인으로 짚은 상태에서 조사에 들어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마치 보건당국이 공기를 원인으로 찍어서 그에 관한 조사를 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럼에도 존 스노우는 자신의 가설을 입증할 자료, 반대사례처럼 보이는 것을 가설 안에서 설명한 근거를 충분히 준비해서 가설이 믿을 만한 것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보였고, 정책에 반영해 실용적 목적에 봉사한다는 점을 증명한 것입니다. 결국 콜레라에 관해서는 물 원인설이 옳다는 가설에 대한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냈고요.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꼽은 책은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입니다.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은 크게 철학, 역사, 사회학 등 여러 관점에서 이뤄지고 이들을 보통 묶어서 “과학사/과학철학”, 또는 과학기술학(STS)이라고 부릅니다. 패러다임 개념은 이 분야의 최고 히트 상품인 것 같지만 막상 <과학혁명의 구조> 직접 읽는 거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또 패러다임 이야기 할 때 천동설/지동설 이야기 주로 하는데 이건 쿤이 직접 한 얘기고 오해 많이 샀고요, 조금 잘난 척하고 싶으면 뉴턴역학/상대성이론 얘기를 꺼내곤 하는데 상대성이론이 뭔지 이해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함정입니다. 이마저도 옛날 공부를 하신 어른들에겐 신기한 내용이지만, 학생들에겐 식상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꼽은 책이 <과학, 철학을 만나다>입니다. 일단 쉽습니다. EBS에서 했던 TV강연을 그대로 책으로 내서 그렇습니다. 최고의 장점. 또 화학 분야의 논쟁에 중점을 둬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 좀 더 밀접한 주제들로 꾸며져있어 신선합니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이후에 진행된 여러 논의도 담고 있고요. 책으로 읽기 지루할 때 유튜브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인데요. EBS 채널에 전편이 모두 올라와 있어서, “장하석”으로 검색하시면 다 볼 수 있습니다. 편 당 1시간씩 14편으로 조금 길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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